[단비인터뷰] 독립출판물 전문 ‘도어북스’의 박지선 디렉터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안타깝게 헤어졌던 제시(에단 호크 분)와 셀린느(줄리 델피 분)는 속편 <비포 선셋>에서 9년 만에 우연히 재회한다. 프랑스 파리의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다.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이 서점은 스콧 피츠제럴드, 제임스 조이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영미문학의 큰 별이 된 작가들이 파리 여행 중 숙식하며 서점 일을 돕고 글을 썼던 장소로 유명하다. 

대전시 중구 대흥동에 있는 도어북스(door books)는 ‘한국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지향하는 서점이다. 책 제작부터 유통까지 작가가 도맡아 하는 독립출판물을 전문적으로 파는 곳인데, 문을 닫으면 마니아들이 찾는 독립적 공간이 되고, 문을 열면 모든 사람이 교류하는 사랑방이 된다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지난 5월 21일 도어북스에서의 만남과 지난 22일 전화인터뷰를 통해 디렉터 박지선(31)씨와 ‘사람 냄새 나는 서점’ 이야기를 나누었다. 

‘행복을 찾아’ 사표 던지고 낸 서점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디자인을 전공한 박 디렉터는 2년 전까지만 해도 대전의 문화예술 잡지인 <월간 토마토>에서 편집 디자이너로 일했다. 또래가 많은 직장에서 즐거울 때도 있었지만 업무에 치이다 보니 금세 지쳤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 친오빠(34)가 한마디를 던졌다. “네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인지 생각해봐”

“저는 가족과 뭔가를 같이할 때 행복이 배가 됐었어요. 회사에 다니다 보니 그런 일들이 줄어들고 에너지를 얻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걸 마련하자, 공감을 만들자 해서 여동생(29)과 서점을 차리게 됐죠.”

박 디렉터가 서점을 생각한 건 대전의 젊은 창작자들과 뭔가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외부에서 볼 때 대전은 심심한 도시, 재미없는 도시다. 대전 토박이인 그가 봐도 그랬다. 뭔가 재밌는 걸 하려면 서울로 가야 했다. 그러던 중 알게 된 지역의 젊은 예술가들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지역에서 기획하고 창작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부럽고 대견했어요. 그런 친구들이 더 늘어나면 좋겠다 생각했고, 그들에게 생각의 쉼과 아이디어를 줄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 서점을 차리게 됐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책을 읽으며 공감하고 위로받는 게 생각의 쉼이라 생각했어요.” 

▲ 도어북스를 ‘마니아들의 독립된 공간’이자 ‘모두가 소통할 수 있는 사랑방’으로 만들고 싶다는 박지선 디렉터. ⓒ 박성희

‘사람 냄새’ 나는 조용한 동네에 자리잡다 

서점을 내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마땅한 장소를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박 디렉터는 ‘사람 냄새’ 나는 대전의 구도심에 서점을 내고 싶었다. 고층건물이 들어선 신도심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조용한 동네에서 마음에 드는 건물을 찾았다. 하지만 건물주가 임대를 내놓지 않아 포기했다. 다른 건물을 찾아 서점을 차리기까지 거의 1년이 걸렸다. 다행히 대전시 청년창업지원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임대료를 해결했고, 나머지 자금은 직장 다니며 모은 돈을 보탰다. 

“원래 이 동네가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거리는 아니에요. 서점에 온 손님들이 책을 사고 동네 구경도 하면서 ‘골목골목이 좋다’는 얘기를 많이 해주세요. 어떻게 보면 낯선 장소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거죠.”

지난해 6월 서점을 연 뒤 박 디렉터는 많은 사람을 만났다. 사무실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던 편집 디자이너 시절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한 50대 남성은 ‘서점 앞에 내놓은 의자에 직접 앉아보고 싶다’며 서울에서 대전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지난해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다룬 한 TV프로그램에서 박 디렉터가 가톨릭 청년대표로 교황에게 질문한 뒤 관련 화면으로 도어북스 앞 의자에 할머니가 앉는 장면을 봤다고 한다. 군인 2명은 부대 복귀 후 읽을 책을 사가려고 휴가 때마다 찾아온다. 지역 주민과도 친해졌다. 칼국수를 만들어 나누어 주는 슈퍼 아주머니, 머리하고 기다리는 동안 서점에 들르는 미용실 손님들, 서점 앞을 지날 때마다 인사해주시는 80대 할아버지까지. 

▲ 도어북스앞 의자에 할머니가 앉는 장면을 보고 한 50대 남성은 '서점 앞에 내놓은 의자에 직접 앉아보고 싶다'며 서울에서 대전까지 찾아왔다. ⓒ KBS 화면 갈무리

작가와 독자의 교감이 이뤄지는 공간  

도어북스에서 책을 산 손님들이 꼭 거치는 과정이 있다. 입구 쪽 벽면을 배경으로 구입한 책을 들고 사진을 찍는 일이다. <단비뉴스>와 인터뷰하던 날도 30대 여성 두 명이 책을 산 뒤 사진을 찍었다. 박 디렉터는 독립출판물에 대해 모르고 온 손님들이 “이런 책도 있었느냐”거나 “책의 이 부분이 좋았다”고 말한 것에 착안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실 제가 만든 책은 아닌데 저만 좋은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까요. 기분은 좋지만 ‘나만 듣는 것보다 책을 만든 작가에게 이런 얘기를 전하면 좋겠다’ 싶어서 시작하게 됐어요. 책을 산 손님 사진과 간단한 에피소드를 적어 작가분에게 메일을 보내요.”

▲ 이곳에서 찍은 독자 사진과 간단한 에피소드를 작가에게 전달한다. ⓒ 박성희

메일을 받은 작가들은 “이런 피드백을 받아본 건 처음”이라며 기뻐한다고 한다. 독자가 많지도 않고 독자의 반응을 알기도 어려운 독립출판물의 성격상 작가에겐 감동적인 경험이 될 수 있다. 도어북스에서 파는 책들은 사랑을 주제로 한 시집인 태재의 <애정놀음>, 시 109편을 묶은 엄지용의 <시다발>,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문화다방의 <엄마, 친정엄마, 외할머니> 등 주제와 장르도 다양하다. 가격대도 3000원부터 8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이외에 엽서, 수첩, 휴대폰 케이스 등 아기자기한 소품도 판매한다. 

파리의 작은 서점 같은 사랑방 되길 

박 디렉터가 유럽 여행 중 찾아갔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책만 파는 서점이 아니라 영감이 오가는 ‘사랑방’이었다. 배고픈 손님들을 위해 늘 수프를 끓이고, 책을 살 형편이 못 되는 사람들을 위해 책을 무료로 빌려주기도 했다. 낡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널찍한 테이블과 낡은 타자기, 푹신한 소파와 낡은 담요가 깔린 침대가 있었다. 그곳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고 사상을 교류하며 소통하는 장소였다. 박 디렉터는 도어북스 역시 사상을 교류하고 공유하는 사랑방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공사할 때부터 지금까지 서점 앞을 지나며 인사하는 아이가 있어요. 도어북스가 그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줬으면 해요. 물론 서점에 들어와 책을 읽는다면 더 좋겠죠. 훌륭하게 자란 아이가 ‘도어북스가 많은 영향을 줬다’는 말을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아요.”

가장 보람 있던 순간을 묻자 박 디렉터는 “어떤 책을 만든 작가가 가게에 찾아온 날, 마침 그 책을 사려는 손님이 있었다”며 “작가와 손님이 책을 매개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제3자의 시선으로 지켜봤다”고 말했다. 

“뿌듯했어요. 이때까지 서로 몰랐던 사람들이 책을 통해 알아가며 교류하는 거잖아요. 저 없이 그들끼리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뭉클하기까지 해요. 이 공간이 사랑방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알게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서 좋아요.”

▲ 도어북스에서 파는 독립출판물. ⓒ 박성희

책을 전시한 벽면 외에 10여 평(약 33㎡)의 공간이 더 있는 도어북스는 워크샵이나 전시, 공연도 개최한다. 독립출판물 판매와 워크샵 등만으로는 서점 운영이 어렵기 때문에 외주를 받아 편집 디자인도 하고 있다. 지난 17일부터는 서점 운영을 잠시 중단하고 다음달 3일까지 충남도청에서 열리는 ‘아티언스 오픈랩’에 참가하는 작가 9명을 인터뷰한 소책자들을 전시하고 있다. 오는 11월에는 프리랜서 기자가 하는 글쓰기 수업(6주)과 지역 작가와 박 디렉터가 참여하는 셀프 퍼블리싱(Self-publishing) 2기 수업(6주)도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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