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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네 청춘이 간첩을 만나면
[씨네토크] 문제적 감독 이상우의 여덟번째 작품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2016년 01월 13일 (수) 21:48:52 김재희 기자 allthatk@gmail.com
   
▲ 간첩의 눈으로 산동네 세 청년을 관찰한 영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포스터. ⓒ 네이버 영화

헬조선. 이제는 식상해진 단어. 지옥 같은 현실은 그나마 현실 같은 지옥으로 바꿔 불러야 버틸 것 같다. 누군가 "한강 수온을 재러 가자"고 말한다. 갑자기 한강에 관심이 생겼다거나, 강물이 언제쯤 얼기 시작할지 궁금해서가 아니다. ‘일이 잘 안 돼가니 자살해도 좋을지 확인하자’는 말이다.

지옥과 자살이 현실을 대변한다. 풍요와 안락을 꿈꾸기란 몽상일 뿐, ‘불행배틀’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모두가 불행하다. 이상우 감독의 여덟 번째 작품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는 유황불이 날름거리는 헬조선을 제3자의 눈으로 그렸다. 얼마나 남한이 안타까우냐며 우리 처지를 동정하는 간첩의 시선이라니.

“남한이든, 대한민국이든 나한텐 다 X같아요!” 

18세 북성(김영건 분)은 고등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태식’과 싸우고 나서 ‘태식’이 요구한 돈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태식’은 북성의 담임선생 이름이다. 북성은 벽돌로 지었지만 당장 쓰러져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단칸방에 산다. 아버지, 그리고 정신지체가 있는 형 북남(김영훈 분)과 함께다. 형은 북성의 전부다. 아프고 모자란 형을 지키느라 북성은 산 아래 번화가로 아르바이트하러 가지 못할 정도다.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것이 일과다. 방구석에 쭈그려 앉은 북남을 가끔씩 발로 찬다. 북성에게는 지금까지 키워줬으니 돈을 벌어오라고 강요한다. 비좁은 집구석에서 북성은 갑갑하지만, 형을 돌보며 살아간다.

가족의 유일한 벌이는 빈 술병 모으는 일이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남이 마시고 버린 병을 주워 슈퍼에 가져다주면 한 병에 40원을 쳐준다. 그 돈은 아버지의 술과 담뱃값밖에 안된다. 마을 슈퍼 앞을 마음 놓고 다니지 못할 만큼 많은 외상을 졌다.

"헐벗고 굶주린 남한 주민들은 추운 겨울이면 연탄 살 돈도 없어 강제로 동원된 학생들에 의해 연탄을 배급받고 있습니다.”

아직도 공동변소를 쓸 만큼 궁핍한 이 동네에 간첩이 나타난다. 간첩은 ‘지도자동지’에게 보고하기 위해 동네 여기저기를 카메라로 찍기 시작한다. 낡고 더러운 북성의 동네는 북한 주민에게 선전도구가 되기에 적절하다. 

북성의 맞은 편 집에 사는 우석(서현석 분)은 '간지'가 난다. 족발 배달을 위해 오토바이를 몰기 때문이다. 습관처럼 ‘바쁘다’, ‘늦으면 안 된다’는 말을 달고 다닌다. 전단지, 배달 알바 등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돈을 모으는 우석은 번화가에 공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 친구 중 ‘미래’나 ‘희망’이라는 단어와 그나마 가깝다. 우석이 이렇게 열심히 사는 이유는 하나뿐인 가족, 형과 같이 살고 싶어서다. 형은 군에 입대했지만, 자신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이유로 대문 앞에 커다란 태극기를 걸어놓았다. 그만큼 우석은 큰형을 끔찍이 생각한다.

간첩의 카메라엔 영림(신원호 분)도 등장한다. 세 사람 중 유일하게 엄마와 살지만 그 역시 변변찮다. 영림은 구질구질한 모습이 싫어 엄마에게 떼를 써 ‘노스페이스’ 패딩을 사 입는다. 분수에 맞지 않는 옷은 남의 눈에 금방 띈다. 동네 양아치들에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털리고 알몸이 된다.

영림의 엄마는 폐품을 모은다. 일하는 틈틈이 우석에게는 밥을 먹이고, 북남을 씻겨주고, 북성의 팬티를 빨아주는 아이들에게 ‘엄마’같은 존재다. 사람의 온기가 그리운 북성은 영림의 엄마에게 치근대고, 이 장면을 본 영림은 발끈한다. 엄마에게 막 대하는 영림에게 북성은 “돈 있으면 내가 사고 싶다, 니네 엄마”라고 말한다.

가난은 이들의 탓이 아니다. 가난한 동네, 무능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제외하면 세 친구는 가난의 원인이 되는 그 어떤 선택도 하지 않았다. 간첩은 세 사람에게 “영웅으로 만들어준다”라며 북으로 가자고 꾀어낸다.

"고마운 내 조국이 없었다면 행복한 오늘은 없었을 것이다." 감독이 중간중간 넣은 북한 선전 동영상은 환상 같다. 더럽고 지저분한 세 친구의 동네보다 깨끗한 공간과 온기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영상으로 보이는 북한에는 적어도 웃음이 있고, 꿈을 꿀 수 있는 여유도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집과 가족은 의미를 잃은 지 오래다. 산동네 판잣집을 버리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이들의 18세는 산동네의 겨울처럼 혹독하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북성의 형 북남이 죽고, 그토록 기다린 우석의 친형은 첫 휴가를 나와 자살을 하며, 영림은 패딩점퍼를 뺏어간 양아치에게 엄마마저 빼앗긴다. 지긋지긋한 산동네에서 내려와 보통 사람들로 가득한 번화가를 하염없이 헤매지만 어디에도 이들의 자리는 없다. 사람들에게 이들은 갈 곳 없는 노숙자들일 뿐이다.

헬조선 청춘의 초상화

“그런데 왜 저희들을 북한에 데려가려고 하시는 거죠? 저희같이 별 볼일 없는 아이들을 데려다 뭐하시려고요.”

북에 함께 가자는 간첩에게 아이들은 반문한다. 절망스러운 상황은 오히려 이들에게 희망을 느끼게 한다. 적어도 이들을 괴롭히는 현실에선 도망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 대한민국의 품'이 더 따뜻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말로 세 사람을 북으로 가지 못하게 막을 수 있을까. 과연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시든 청춘을 다시 피워내려면, 식상하지만 복지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아무도 복지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 한국은 그 누구도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는 국가처럼 느껴진다. 방황하는 아이들을 아무도 보살펴주지 않는다. 냉혹한 현실은 이들을 벼랑 끝까지 내몬다.

   
▲ 참 갑갑한 인생을 사는 세 친구는 북으로 가자는 간첩의 제안을 뿌리칠 수 있을까. ⓒ 이상우 필름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는 2016년의 청춘영화다. 그러나 영화에는 반짝거리는 젊음도, 미래와 패기도 없다. 희망, 행복, 기쁨 같은 아름다운 단어들은 학교조차 제대로 다닐 수 없는 이들에게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사치다. 가족은 한 명씩 사라져 가고, 자신을 지탱할 돈도, 여유도 뭣도 없다. 단지 몸뚱어리만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시대가, 그리고 청춘이 변했다면 청춘영화의 구색도 마땅히 바뀌어야 한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은 오늘 헬조선의 청춘영화가 이러하다고 보여준다.

이상우 감독은 <엄마는 창녀다>, <아빠는 개다> 같은 ‘기괴한 가족극'을 만든다고 알려져 있다. 슬프게도 이 감독의 잔혹극과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 사이의 괴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영화 주인공에게 깊은 절망감과 공감을 동시에 느낀다면 그만큼 영화가 현실에 가깝다는 증명일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와 현실, 어느 쪽이 더 문제일까.


편집: 김민지 기자

[김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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