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병맛코드와 호소력 짙은 음악이 돋보이는 ‘프로젝트 패기’

용기라도 다 같은 용기가 아니다. “내 재능을 평가해 줄 사람에게 무시당했을 때 달려가서 한 대 쳐 주는 것은 객기다. 반면 그에게 무릎 꿇고 자신의 재능을 한 번 더 보일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패기다.”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에 소개된 이근우 감독의 <프로젝트 패기>에 나오는 대사다. 실패를 거듭하던 가수 지망생이 진정한 음악인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담았다.

영화는 주인공인 보컬트레이너 ‘하시용’이 미사리 라이브카페 가수 ‘도밍게즈 남’을 만나 우여곡절 끝에 ‘패기’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완성하는 과정을 그렸다. 감독의 전작 <577 프로젝트>(2012)처럼 하정우·공효진을 비롯한 18명의 연예인이 국토대장정을 하는 참신한 소재가 등장하지 않는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꿈을 성취하는 진부한 성장물의 구조를 따르는데 완성된 뮤직비디오가 상영될 때쯤 관객석은 잠시 숙연해진다. 객기든 패기든 두 인물의 용기에 감동하고 성장에 위로받았기 때문이다.

▲ 이근우 감독의 장편영화 <577 프로젝트>와 <프로젝트 패기> ⓒ 필라멘트픽쳐스, 부산국제영화제

패기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어떤 패기가 필요할까? <프로젝트 패기>에서 남도민은 ‘도밍게즈 남’이라는 예명으로 미사리 카페에서 노래한다. 노래에 대한 대가는 파스타 한 접시와 테킬라 한 잔, 교통비 조금이 전부다. 남도민이 빨간 재킷에 화려한 레이스, 금빛 장식이 달린 투우사 복장을 하고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면 미사리 카페를 찾은 ‘아줌마’들은 열광한다. 누군가는 그를 보며 ‘무슨 가수가 저래?'하고 의아해할 수 있지만 어디서 노래를 하던 ‘음악은 진정성’이라고 믿는 그는 시종일관 진지하다.

▲ 남도민은 미사리 라이브카페에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춘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그의 태도가 가벼운 것은 아니다. ⓒ 부산국제영화제

남도민은 엉뚱하긴 하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악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좋은 가사를 쓰기 위해 정기적으로 도서관에 가서 ‘유혹의 기술’이나 ‘이성에게 호감을 사는 법’ 등의 책을 읽는다. 아줌마들이 수강하는 에어로빅 수업을 들으며 대중문화 최신 트렌드를 따라간다. 수영을 하며 폐활량을 키운다. 그는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좋은 가수가 되기 위해 소속사에 들어가야 하고 앨범을 발매해서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들의 시선에 자신을 가두지 않기에 순수하게 능동적인 삶을 살아간다.

남도민의 긍정적인 삶의 태도는 하시용에게 전염된다. 극 초반 하시용은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도 예선 탈락하자 한강에 투신하겠다며 객기를 부린다. 모든 것을 포기했던 그가 남도민과 함께 운동하며 폐활량을 키우고 시장으로 공연 하러 다닌다. 음악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노래하는 즐거움을 깨닫는다. 마침내 뮤직비디오를 통해 하시용은 유튜브 스타가 되고 여자 친구를 되찾으며 극은 마무리된다.

병맛이 살아있는 음악 다큐의 매력

영화 속 캐릭터인 남도민과 하시용은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가족, 건강 등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를 희생해 꿈을 이루는 인물도 아니다. 두꺼운 콧수염에 긴 머리를 정 가르마로 탄 남도민은 과도한 손동작과 감탄사를 사용한다. 목소리를 낮게 깔고 표정 변화 없이 극 중 인물들과 대화를 나눈다. 하시용은 여자 친구와 싸우고 직장을 잃었을 때 자신의 문제를 돌아볼 줄 아는 성숙한 인물이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찍고 있던 감독과 연락 두절하고 잠적한다. 본받고 싶은 구석이 없는 인물 설정이 영화의 강점이다. 괴상하고 찌질한 이들이 가식 없는 친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기대가 낮았기에 남도민과 하시용이 영화 마무리에 뮤직비디오를 완성했다는 사실 자체가 관객에게 감동으로 다가온다.

▲ 괴상하고 찌질해서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는 하시용과 남도민 ⓒ 부산국제영화제

단순한 줄거리와 어우러지는 주제곡들은 관객의 마음을 다잡을 정도로 호소력 있다. 영화 속 음악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음악감독 미누(MiNU)가 담당했다. 과장되지 않은 음악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감정을 전달하여 호평을 받았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영화가 감정의 과잉으로 치닫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고 하시용의 마음을 대변한다. 하시용이 속해있는 연예기획사의 실장은 남도민의 공연을 ‘쓰레기’라 평한다. 자신이 스승으로 모시며 동경하는 남도민이 많은 사람 앞에서 모욕을 당하자 하시용은 실장을 찾아가 멱살을 잡는다. 함부로 욕하지 말라며 소리를 지르고 울부짖는다. 그 장면 뒤를 흐르는 담담한 음악은 오히려 관객을 울컥하게 한다.

이근우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GV) 시간에 영화 시나리오를 구상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작년에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분위기가 우울해 유쾌한 이야기를 써보자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자전적 이야기냐는 질문에 “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참가해 본 적은 없으니 전부 내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 경험이 녹아들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고 답했다. <577 프로젝트>에 이어 이번에도 ‘프로젝트’를 제목으로 사용한 영화를 만들었다.

▲ 관객과의 대화중인 이근우 감독, 배우 박종환, 강희만, 정의혁(사진 왼쪽에서부터) ⓒ 김민지

영어 단어 프로젝트(project)의 어원을 분석하면 ‘앞으로 던지다’는 뜻이 된다. 이근우 감독의 영화는 공기저항을 뚫고 날아가는 공처럼 어려움을 이겨내고 목표를 향해 즐겁게 나아가는 인물을 다룬다. 감독의 유쾌한 에너지가 관객에게 전달된다. 결혼, 인간관계 등 포기할 게 많은 이 시대의 청춘에게 ‘패기’는 허무맹랑한 단어이기에 영화 속 주인공의 도전은 판타지에 가깝다. 하지만 영화는 패기가 힘차고 유쾌한 단어였음을 상기시킨다. 헬조선이라 불리는 우리 사회가 패기라는 단어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패기는 허무맹랑한 단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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