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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나라’ 국민으로 살아가기
[씨네토크] 세월호 유가족의 1년 담아낸 '나쁜 나라'
2015년 12월 31일 (목) 17:48:23 김재희 기자 allthatk@gmail.com
   
▲ 영화 <나쁜 나라> 포스터. ⓒ 시네마달

코끼리는 왜 도망치지 않고 서커스단을 따라다니는 걸까. 코끼리가 어렸을 때 발에 쇠사슬을 채워 말뚝에 묶어두면 된다. 처음에는 도망가려고 하지만,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두꺼운 말뚝을 뽑을 수 없고, 쇠사슬을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스스로 포기하게 만든다. 코끼리가 성장해 충분한 완력을 가진 뒤에도 도망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학습된 무기력’이라 부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실패나 부정적인 자극을 여러 번 경험하면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겨도 다시 시도하지 못한다.

학습된 무기력은 통제력이 강하다. 국가가 만들어낸 무기력은 자연재해나 운명처럼 압도적인 힘을 발휘한다. 역사에서 보더라도 독재자뿐 아니라 많은 국가, 정부들이 국민에게 학습된 무기력을 심었다. 자신이 가진 힘 아래 복종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며 국가정책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가는 자녀를 막아서는 부모는 무력감에 노출된 보통 사람이다. 국가권력에 도전했던 기업과 개인이 망가지는 모습을 오랫동안 보면서 권력이 가진 위험한 폭력성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힘의 실체를 보면 권력을 향하게 된다. 

국민을 투사로 만드는 나라

역사적으로 혁명가가 등장했던 때를 기억한다. 우리는 이들을 ‘투사’라 부르기도 한다. 혁명가는 세상에 팽배한 압도적인 무력감을 떨쳐버리고 싸워 자신의 권리를 쟁취해내기 때문이다. 투사들 중에는 복종의 고리를 끊는데 성공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자신들 앞에 놓인 벽의 크기만 확인하고 쓸쓸하게 사라진 이들도 많다.

“지금까지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아서 아들이 세상 공부 시켜주나 봐요.”

세월호 유가족들은 ‘투사’가 되었다. 순진했던 엄마 아빠들은 혹독하게 사회공부를 하고 있다. 법조문 하나 몰랐던 사람들이 이젠 눈 감고도 국회의원 앞에서 관련 법조문을 줄줄 읊을 만큼 전문가가 되었다. 목은 쉬어가고, 눈물이 말라버린 만큼 체력도 떨어져갔다. 국회와 청와대 앞 시위장에는 살림이 점점 늘어나 내 집처럼 되었다. 임시로 만들었던 손팻말은 점점 튼튼하고 두터워졌다. 

영화 <나쁜 나라>는 사고 발생 후 50일째인 지난 해 6월 5일, 진도 팽목항에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도착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영화 내내 정부는 비겁하다. 아무도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다. 국회는 이전투구의 현장으로 변한지 오래다. 국회의원 한 명 한 명은 독립적인 헌법기구지만, 당의 입장 앞에서는 나약하다. 그렇기에 합의가 도출됐다거나, 특별법이 통과되는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현장에 유족은 없었다. 유족의 무기력은 더해간다.

유가족은 세월호 특별법안으로 진상조사기구를 설치하고, 이 기구에 수사권·기소권을 줄 것을 요구한 바 있다. 강력한 권한이 법으로 보장되어야 첨예한 쟁점과 풀리지 않은 의혹을 철저하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은 유가족이 낸 안이 다른 사건을 위한 특별법보다 많은 권한을 요구하고 있으며, 법으로 주어진 권력이 남용될 것을 우려한다. “(세월호 특별법으로) 선례를 만들면 안된다”는 이유를 들어 유가족을 설득한다. 국회 앞 농성장에 유가족을 찾아온 김영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우리 가족 대책위 분들이 원하는 것을 우리가 제대로 하려면 대통령이 우리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자신의 무기력함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세월호침몰사고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기관보고에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출석한 장면은 또다른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김 실장은 방청 온 유가족에게 “대통령은 분명히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크게 통감하고 국민에게 사과를 했다”고 말한다. 자신들을 향한 비난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김 전 실장에게서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라고 지시하는 선원이 보였다. 큰소리 치는 정부와 할 수 있는 것이 분노뿐인 유가족, 침몰하는 세월호 선실 속 선원과 피해자와 다른 공간 같은 모습이었다.

영화는 거친 목소리와 두꺼운 손팻말 뒤, 뜨거운 현장이 가라앉고 난 뒤의 유족을 비춘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전국 순회’를 하는 동안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인 버스에서 유가족들은 잠들지 않고 자신들을 응원하는 시민들의 편지를 소리내어 읽으며 힘을 충전하기도 한다. 지난해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때도 유족 대표로 교황을 만났던 유민아빠 김영오씨는 감격의 순간이 끝나고 “준비한 거 그대로 다 말했다”며 함께 긴장하며 도와준 유가족의 염려를 달랬다.

   
▲ 교황 방문 때는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줄 것을 고려해, 유가족들이 머리를 맞대고 단어 하나하나 교황에게 전달할 말을 골랐다. ⓒ 시네마달

세월호 사고 이후 유족들은 하루 피로를 풀어주는 따스한 방바닥이 있는 ‘집’을 버렸다. 국회로, 청와대로, 부산, 광주, 대구 등 특별법 청원 용지에 서명해줄 사람 있는 곳 모두 유족들의 집이 됐다. 이들에게 집이었던 공간은 ‘자녀들이 죽은 이유를 알기 위해 투쟁하다가 남은 것들을 확인하러 가는 곳’이다. 가뜩이나 무거운 삶에 투쟁까지 추가한 부모들은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는 돌아오지 못했지만, 언니와 오빠였던, 그리고 사춘기를 맞이한 동생이었던 아이도 보살펴야 한다. 그러나 서로에게 새로운 가족이, 고난을 버틸 동료가 되었기에 끈끈하게 버틸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국회 찬 바닥에 누워도 혼자가 아니며, 함께 이불을 덮는 ‘엄마’가 있고, 병원에 입원해도 찾아와서 함께 담배를 피워줄 ‘아빠’가 있다. 

누가 피해자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억울함을 호소할 것이라고 상상했겠는가. 언제나 찾아오라던 대통령은 유가족의 외침에 반응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방문은 <나쁜 나라>의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 경찰은 굳은 얼굴로 유가족을 향해 벽을 쌓는다. 카펫을 밟고 입장하는 대통령과,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피해자 사이에는 우리가 모르는 다른 차원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마지막 유가족이 되기 위해  

2014년 4월 16일 이후, 모두에게 아픈 4월이 되었다. 아프다 못해 이제는 입에 그날을 담는 것을 꺼리기까지 한다. 유가족은 냉담과 무관심에 맞서야 하는 숙명에 있다. 현실은 영화보다 유가족을 향한 위로보다 더 많은 힘과 품이 드는 전투가 시작될 것임을 암시한다. "잊지 않겠다"는 맹세는 잊혀지고, ‘특별법이 통과됐고, 정부도 너희 말을 들어줬는데 무엇때문에 싸우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비극은 늘 그렇듯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우리가 마지막 유가족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유 위원장의 말은 세월호 유가족이 이 땅에서 투사가 된 마지막 부모가 되고 싶다는 것처럼 해석된다. 단원고 2학년 교실에 놓인 과제 게시판에는 마치지 못한 과제가 적혀있다. “꼭 돌아오기” 지켜지지 못했기에 유가족은 ‘진상규명’이라는 자신들의 과제를 끝내려 할 것이다.

‘진상규명’은 거래나 설득의 대상이 아니다. 세월호 침몰은 사고로 시작했지만 사건으로 끝났다. <나쁜 나라>에서 수많은 증언과 증거는 이 사건이 사람에 의한 재난(人災)임을 증명하고 있다. 유가족은 왜 내 아이가 구출되지 못하고 바다 속으로 사라졌는지 국가에 묻고 있다. 세월호 사고는 그날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는 한, 국가권력이 방조해 일어난 의문사로 남을 것이다. 정부는 사고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는 오명을 역사에 남길 것이다. 모든 결과는 <나쁜 나라>가 시작된 작년 6월 5일부터 정부가 지금까지 ‘선례’를 핑계로 직무를 유기한 대가다.

<나쁜 나라>는 잘 만든 영화라고 할 수 없다. 화면은 거칠고, 소리는 매끄럽지 못하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유려함만으로 살아지는 것인가. 생쌀을 씹어가며 고통스럽게 살아내는 사람들도 있다. 꼭꼭 씹다보면 미세하게 퍼지는 단맛이 느껴지듯, 세월호 유가족들은 영화관을 찾은 관람객을 보며 희망을 얻는다고 말한다. 한홍구 교수는 건국 이래 발생한 모든 의문사 사건을 다룬 <오마이뉴스> ‘죽음을 죽인 한국현대사’에서 "수십만 명의 죽음을 50년간 외면해온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는 학살 그 자체 당사자는 아닐지라도 학살·은폐의 방조자가 됨으로써 사람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기사같이 건조하게 쓰여진 영화를 보며 투사들의 지리한 싸움이 끝날 때까지 학습된 무기력에서 벗어나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동참해야 할 의무를 깨닫는다. <나쁜 나라>를 사는 시민이 할 당연한 일이자 도리이다.


편집 : 유수빈 기자

[김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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