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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국정화' 보도와 에펠탑 효과
[미디어 비평] 프라이밍으로 본 '조선일보'의 국정화 교과서 보도
2015년 11월 23일 (월) 00:12:47 전광준 기자 kooka88@naver.com

10월 중순, 사람들이 대통령을 새로운 기준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바로 ‘국정화 교과서’다. 10월 첫째 주 갤럽 설문조사에서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를 물을 때만 해도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측은 ‘외교/국제 관계’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측은 ‘경제정책’을 각각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10월 둘째 주, 부정적 평가기준 1위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등장한다. 셋째 주에는 그 비율이 22%로 오른다. 덩달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 비율(47%)이 긍정적 평가 비율(41%)을 넘어서게 된다. 첫째 주까지만 해도 없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갑자기 새로운 기준으로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프라이밍 효과 때문이다. 프라이밍은 특별히 강조되거나 시간상으로 먼저 제시된 특정 자극이 두뇌 속 연산망을 점화시켜 추후의 다른 정보를 특정한 방향으로 처리하도록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언론은 프라이밍을 통해 특정한 사안을 부각시켜 대중으로 하여금 그 사안을 기준으로 다른 사안을 판단하게 만들 수 있다. 아젠다 세팅이 ‘무엇을 생각할지’, 프레이밍이 ‘어떻게 생각할지’ 제시해 여론을 움직이는 것과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프라이밍은 누적효과를 만들어 낸다. 히틀러는 라디오를 염가에 보급한 후 반복적으로 연설을 방송해 대중의 지지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터키어와 중국어를 미국인에게 노출한 결과 많이 접촉한 나라에 더 호감을 느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프라이밍 효과는 ‘에펠탑 효과’라고도 불린다. 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건설한 에펠탑이 초기에는 시민들의 강한 거부감으로 철거 위기까지 몰렸지만 오랜 노출로 이제는 프랑스의 상징으로 사랑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언론은 프라이밍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기사 수로 ‘물량공세’를 하거나 칼럼이나 사설로 뒷받침해 논조를 강화한다. 1면에 내보내거나 톱으로 올리는 등 편집을 통해 프라이밍 효과를 노리기도 한다. ‘교과서 국정화’라는 사안에 대한 보도도 프라이밍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10월 1~24일 동안 <조선일보>의 국정화 교과서 관련 기사를 분석했다.

   
▲ 10월 1일부터 24일까지 <조선일보>의 국정화 교과서 보도 기사 횟수 추이를 나타낸 그래프다. ⓒ 전광준

<조선일보>는 21일 동안 총 99개의 국정화 교과서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하루 평균 4.7개씩이다. 본격적으로 보도가 시작된 10월 6일부터 계산할 경우 하루 평균 기사는 6.1개에 달한다. 가장 많은 기사가 보도된 10월 13·14일에는 각각 10개의 기사가 나왔다. 더 쉽게 보기 위해, 신문이 가장 중요시하는 사안을 담는 종합면(1~8/10면) 내 비율로 계산해봤다. 21일 동안, 평균 비율은 16.1%다. 아까처럼 6일부터 계산할 경우 종합면 내 국정화 기사 비율은 21.2%. 종합면 기사 5개 중 하나가 국정화 기사인 셈이다. 또한, 1면에 국정화 기사가 등장한 횟수는 13번이며 전면보도 횟수도 15번에 달한다. 적어도 이틀에 한 번씩은 국정화 기사로 면을 꽉 채운 것이다.

사설과 칼럼 등 오피니언이 차지하는 비중도 높다. 총 99개의 기사 중 일반 기사는 80개이며 사설은 9개, 칼럼 6개, 외부칼럼은 4개로 오피니언은 총 19개다. 즉, 일반기사와 오피니언 비율은 4.2:1, 일반 기사 4개 당 사설이나 칼럼이 하나씩은 꼭 뒷받침됐다는 뜻이다. 특정 관점을 제시하는 사설과 칼럼은 프라이밍 효과를 최대화함에 있어 일반 기사보다 효과적이다. 높은 비율의 사설과 칼럼은 <조선일보>가 여론에게 자사의 관점을 심기 위해, 즉 프라이밍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강력한 증거다.

사설과 칼럼에서는 <조선일보>의 ‘관점’, 즉 프레임이 특히 두드러진다. 제목을 살펴보자. 10월 2일, 이선민 여론독자부장은 칼럼 ‘국사 교과서, 국정·검정보다 중요한 것’에서 ‘본질은 역사 교육 정상화’라 주장했으며 23일, 박종세 사회정책부장은 ‘교과서, 날림 집필이 더 문제다’라고 말한다. ‘너무 급히 진행하면 안 된다’는 조언도 나온다. 13일, 사설 ‘제대로 된 역사 교과서, 정권 임기 내 완성 집착 말아야’와 24일 ‘교과서, 천천히 서두르라’는 강천설 칼럼이 대표적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대통령이 직접 설명할 필요 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대통령 설명 아직 부족하다’며 대통령에게 국민과 소통하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위에 나왔듯이 <조선일보>는 교과서의 질을 걱정하며 대통령에게 국민과 소통하라는 합리적 주장을 펼친다. <조선일보>는 ‘국정화 교과서 찬성’을 주장하지도, 명시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를 전제로 깔아 숨긴 후 모든 논지를 전개한다. <한겨레>나 <경향신문> 등 진보언론은 국정화 교과서 도입 반대 의견을 논거를 들어 명확히 주장한다. 주장이 선명한 만큼 다른 진영의 반대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굳이 찬성 의견을 명시하지 않아 반대 진영의 논리적 공세를 피하는 동시에 진보 진영에서도 요구할 수 있는 교과서의 질과 대통령의 소통 문제 등을 제기한다. 스스로 ‘합리적 보수’의 포지션을 취해 자신의 진영뿐만 아니라 반대 진영에까지 프라이밍 효과를 퍼트릴 수 있는 것이다.

국정화 교과서가 이슈화되기 직전, <조선일보>는 ‘안심번호 공천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10월 1·2일에는 최대 7개의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안심번호 공천제에 대해 청와대와 김무성 대표는 입장을 달리했다. 10월 1일에는 “당 대표 모욕, 오늘까지만 참는다”는 김 대표의 발언이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3일, 김무성 대표의 “안심 번호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발언 보도가 나오고, 6일에는 “미래세대 위해 국정교과서 전환 불가피”하다며 김 대표가 발표한다. 다음날인 7일, <조선일보>는 첫 국정화 교과서 기사를 1면 톱으로 실었다. “여권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본격적인 ‘드라이브’ 걸기에 들어간다”로 시작하는 기사다. 다음날에는 “‘단일 국사 교과서’ 박 대통령이 결정했다”란 제목의 기사가 1면 톱에 실린다. 그러면서 8일부터는 안심번호 공천제 기사가 하나도 보도되지 않는다. 그 전까지만 해도 치고받던 청와대와 여당이 차례차례 국정 교과서란 이슈로 '대동단결'하는 모양새가 연출된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최근 여론조사 결과, ‘교과서 국정화’ 사안이 박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주도적으로 견인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프라이밍 자체의 효과가 없다는 반증일까? 아니면 정치권과 보수언론이 프라이밍 기능을 잘못 사용했다는 증거일까? 판단은 아직 이르다.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토끼몰이식 집중보도가 여론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계속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알랭 드 보통은 <뉴스의 시대>에서 "(뉴스가) 우리 내면으로 얼마나 깊이 침투하기를 소망하는지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의 프라이밍 효과에 비춰봤을 때, 충분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언론이 대중에 침투하기 전, 언론에 침투해 여론을 원하는 대로 끌고 가려는 이들도 있다. 청와대 및 여당 정치인들이 그 주인공이다. 기득권 세력이 발언하고 보수 언론이 빅마우스로 이를 전파하는 보도하는 행태가 박근혜 정부 들어 계속되고 있다. 이번 건뿐만이 아니다.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 ‘노동개혁·노사정합의’, ‘정윤회 게이트’ 때는 물론 세월호 참사 때도 조선일보는 보수 정치인들의 시각과 목소리를 충실히 보도했다. 그렇다면 보통의 말을 조금 비틀어 이렇게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정치인이 뉴스에 얼마나 깊이 침투하기를 소망하는지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편집 : 이명주 기자

[전광준 기자]
단비뉴스 전략부, 청년팀 전광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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