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응답하라 1988'을 통해 본 대중의 요구와 니즈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연예인들의 기부 행렬이 이어졌다. 소개기사에는 거액을 투척하는 연예인들을 칭찬하는 댓글이 달렸다.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네티즌들도 있었다. 이미지 홍보를 위한 기부로 순수한 선행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의도가 어찌되었든 기부 행위 자체를 폄훼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지난 6일 방영을 시작한 tvN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세월호 연예인 기부 기사 댓글 설전을 떠올렸다.

<응답하라 1988>은 서울 쌍문동의 한 골목에 이웃해 사는 다섯 가족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전작들인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시리즈와 트레이드마크는 여전하다. 철저한 조사와 고증을 통해 과거를 재현해내 시청자에게 짙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여주인공의 남편 찾기 설정으로 시청자를 드라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응답하라 1988>엔 시리즈 전작들과 달리 추가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가족이다. 신원호 PD가 가족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1988년도를 배경으로 선택했다고 할 정도로 드라마는 이웃사촌을 포함, 가족이라는 가치에 중점을 두고 사람들이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그려낸다. 성동일이 둘째라는 이유로 양보만 하는 딸 덕선(혜리 분)의 생일파티를 챙겨주고, 김선영이 아버지 없이 자란 아들 선우(고경표 분)에 대한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거나 어머니 장례를 치른 성동일과 어릴 때 어머니를 잃은 택(박보검 분)이 슬픔을 공유하는 장면은 시청자의 마음을 울린다.

▲ 가족은 때로 우리에게 상처를 주지만, 상처를 보듬어 주기도 한다. ⓒ <응답하라 1988> 화면 갈무리

상업방송으로서 시청률을 중시해왔던 tvN이 이른바 공영방송이나 추구할 법한 가족이라는 가치를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신원호 PD의 말대로 시청률 욕심을 버리고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가족 드라마를 만든 걸까? tvN의 그동안의 행보를 보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중이 원하는 콘텐츠와 대중에게 필요한 콘텐츠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은 편성의 중요전략이다. 방송사가 대중이 원하는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자극적 콘텐츠를 편성해 시청률을 쫓다보면 대중에게 유익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공익적 역할을 소홀히 하게 된다. 방송드라마도 방송의 공공성을 살펴야 한다. 그동안 tvN은 대중의 니즈보다 대중이 원하는 콘텐츠를 편성하는데 주력해왔다. 화제성이 있다는 이유로 물의를 일으킨 강용석 변호사를 섭외한다거나 <뇌섹시대 – 문제적 남자>나 <집밥 백선생> 등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해 대중에게 가장 잘 팔릴 콘텐츠를 만들어온 tvN이다. 그런 tvN이 왜 ‘가족’을 선택했을까.

한국에서 개인을 보호하는 울타리 역할을 해 온 것은 가족이었다. 가족은 혈연공동체로서 개인을 물질적으로, 정서적으로 지원해왔다. 안전장치였던 가족이 빠르게 해체되었지만 국가의 제도적 사회안전망은 제대로 구성되지 않은 현재 개인들은 각종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응답하라>가 그리는 1988년 식 전통적 가족 드라마의 메시지는 분명 대중의 니즈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가족은 현재 대중이 가장 원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가족은 위로와 힐링, 안식처로서의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tvN이 돈보다 가족이, 이웃이, 사람이 중요했던 80년대를 지금 와서 불러낸 건 대중에게 필요해서일까, 아니면 대중에게 가족이라는 가치가 잘 팔릴 것이기 때문일까.

가족을 내세운 기존드라마들이 출생의 비밀과 불륜, 시어머니가 반대하는 결혼 등 막장드라마로 치닫는 상황에서 <응답하라 1988>은 빛난다. 돈 때문에 조강지처를 버리는 남편이 수도 없는 TV세상에서 싫은 기색 하나 없이 가난한 옆집에 선뜻 돈을 빌려주고, 밥 한 공기 빌리러 온 윗집에 깍두기 한 그릇도 얹어주는 사람들이 사는 드라마. 시청자는 <응답하라 1988>에서 용기와 희망을 얻는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고 세상은 살만하다는 위로를 얻는다. 연예인들의 기부는 사회를 진정으로 생각하는 마음일 수도 있고 자기 홍보를 위해일 수도 있다. 응답하라 제작진에게 가족은 이 시대가 절실히 요청하는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선택일 수도, 그저 가족애가 이 시대에 가장 잘 팔릴 상품일 수도 있다. 의도가 불순한들 어떠랴. <응답하라>는 지금 가슴 뭉클한 대사와 진한 감동의 영상으로 우리를 울리며 가족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깨우치고 있는 중인 것을.


편집 :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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