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신화론적 관점에서 본 '신서유기' 기호학적 비평

▲ 배지열 기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제일 재미있는 것이 불구경과 싸움구경이라고 한다. 싸움구경이 재미있는 것은 구경꾼의 본성에 내재된 경쟁심리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어느 한 쪽의 승리를 바라는 방향으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경쟁 포맷이 꾸준히 활용되고,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원동력인 이치와도 같다. 최초의 인터넷 예능으로 주목받은 <신서유기>도 경쟁구도를 차용하고 있다. <신서유기>는 문제 있는 각각의 캐릭터들이 협동하고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대중에 투영시켜 ‘1등 우월주의’라는 우리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비판한다. 기호학적 비평을 통해 <신서유기>속의 숨은 의미를 분석해보자.

<신서유기>는 모바일콘텐츠 제공 플랫폼인 tvNgo에서 제작했다. 지난 9월 4일부터 약 한 달 간 포털사이트를 통해 평균 10분 내외 길이로 총 23화가 제공됐다. 한국방송(KBS) <1박2일>을 연출했던 나영석 PD가 초기 멤버들인 강호동, 이승기, 은지원, 이수근을 서유기 컨셉으로 중국 서안에서 벌이는 미션과 대결을 담아냈다. 최초의 웹 기반 예능이라는 점과 한동안 방송활동이 뜸했던 유명연예인들이 출연했다는 사실이 화제에 올랐다. 한국과 중국에서 총 1억 뷰의 조회 수를 기록, ‘나영석 신화’를 다시 쓰며 성공적인 콘텐츠라는 평가를 받았다. 단순히 웹 예능이라는 새로운 형식과 인기출연진들에 대한 향수만을 인기요인으로 삼기에는 파급효과가 예상보다 컸다.

▲ 최초의 웹 기반 예능 <신서유기> 포스터. ⓒ tvN <신서유기> 누리집

<신서유기>는 중국 명나라의 고전소설 <서유기> 속 캐릭터들을 차용했지만, 그들의 성격이나 서열은 기존과 다르다. 기호학적 미디어 비평에 따르면 ‘기표’가 의미하는 ‘기의’를 다시 해석해 새로운 ‘기호’를 만들어낸 것이다. 기호학적 비평은 기호와 기호가 전달되는 시스템을 분석해 그 의미와 소통과정에 중점을 둔다. 여기서 '기호'는 우리가 직접 감지할 수 있는 신호나 자극을 의미하는 ‘기표’와 인지한 기표에 부여한 이미지인 ‘기의’를 더한 것이다. 다시 말해, 특정 대상에 의미를 덧씌우는 과정이다. 이 ‘기호’에는 해석하는 주체의 의도가 반영된다. <신서유기>의 손오공은 도박혐의로 자숙중인 이수근이 늘 붙이고 다녀야 하는 저주파 치료기로 고통 받는 모습만 보여주는 그저 그런 보통의 존재다. 삼장법사는 제작진이 제시한 음식을 맞추는 퀴즈에서 매번 틀린 답으로 신뢰를 잃어 리더가 아닌 평범한 존재에 그치는 이승기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은지원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고 강호동에게도 대드는 무식한 4차원 캐릭터를 사오정에 입혀 또 하나의 비정상적인 캐릭터로 승화했다. 처음부터 닮은 생김새로 저팔계를 선점한 강호동은 인터넷방송에 적응하지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과 내복을 입고 심부름을 한다든지, 쉬운 ATM 현금인출 미션을 실패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이전 프로그램에서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해왔던 그가 이번에는 약하고 모자란 모습으로 비춰진다. <서유기>는 불경을 얻는 삼장법사와 부처의 반열에 이르는 초능력을 가진 요괴들이 고난을 극복하면서 마무리된다. 하지만 <신서유기> 속 캐릭터들은 어딘가 부족한 소위 ‘B급’ 기질을 안고 있으면서 결국 미션 달성에도 실패하는데, 한 가지 다른 점은 끝까지 함께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기존의 <서유기>와 비교해 <신서유기>는 연출진이 부여한 캐릭터들의 새로운 기호를 통해 현재 우리 사회의 신화를 비판하고 있다. 프랑스의 평론가 롤랑 바르트는 기호학을 바탕으로 <신화론>을 집필했다. 그에게 신화는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고 의심하지 않는 지배적인 사상이나 이데올로기를 의미한다. 바르트가 제시한 신화는 당시 프랑스의 부르주아 계급이었다. 그는 이미 존재하는 개념이나 현상을 우리가 신화라고 믿는 것은 지배계급의 숨겨진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신화론>은 이 허위를 파헤치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것으로, 그는 지배계급이 설정해 놓은 신화의 겉모습과 숨겨진 의도를 폭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신서유기>는 사람들 사이의 우열을 매기는 현실에 하자 있고 모자란 사람들이 협동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출신성분이 삶을 결정한다는 ‘수저론’이 상징하듯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계급을 인정하고 있다. <신서유기>는 출연진이 프로그램 내에서 미션을 해결하는 모습을 계급사회 현실을 극복하려는 대중들의 모습으로 그려내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낸다. 인기가 없어지면 잊히는 연예계에서 이제 관심에서 한 발짝 멀어진 출연진들이 서로 협력하고 미션에 도전하는 모습을 끝까지 유지한다. 4명의 출연진이 함께 도전하고 미션에 실패했을 때 서로 미안해하고, 성공했을 때 같이 기뻐하는 모습을 부각시켜 협동과 조화가 이상적이라는 것을 그려내고 있다.

▲ <신서유기> 속 출연진들의 모습에서 대중들의 신화를 찾아야 한다. ⓒ tvN <신서유기> 화면 갈무리

경쟁에서 뒤처지는 사람을 응원하고 동정하는 것을 ‘언더독 효과’라 한다. <신서유기> 속 출연진들이 아직까지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전에 비해 연예계에서는 언더독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함께 어려움에 대처하는 모습은 대중들에게도 개인보다 협동의 위력이 강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현실 속에서 언더독의 처지에 있을 다수의 사람들이 스스로 신서유기 속 인물들을 자신의 처지에 빗대어 공감하면서 깨닫게 만들고 있다. 각각의 개인들은 약점을 안고 있고 한계에 부딪힐 수 있지만 많은 개인들이 모이면 방향은 달라질 수 있다. <신서유기>는 지배계급의 우월주의에 기반을 둔 현실에 의문을 제기하고 해법을 제시했다. 지배계급의 신화를 부수기 위한 대중들의 신화를 찾으면서.


편집 : 문중현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