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니] 심야 예능의 생존전략

표절 논란과 저조한 시청률로 종영했던 <인간의 조건>이 ‘도시농부’라는 부제와 함께 시즌3로 돌아왔다. 옥상에서 짓는 텃밭 농사라는 소재로 돌아온 <인간의 조건>이 이번에는 시청자들의 주목을 끌 수 있을까. 방영 2달이 지난 지금 시청률은 문화방송(MBC) <마이리틀텔레비젼>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콘텐츠파워지수(CPI) 상위 20위권에서 찾기도 힘들다. 본격 농사 예능 <인간의 조건>에 무엇이 필요할까?

▲ 인간의 조건이 도시농부로 돌아왔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성광, 윤종신, 정창욱, 정태호, 최현석, 조정치. ⓒ 인간의 조건 누리집

<인간의 조건3 - 도시농부>(이하 도시농부)가 경쟁력을 얻으려면 시즌2의 실패 요인을 극복해야 한다. 먼저 예능에 적합하지 않은 출연진 조합이 문제였다. 은지원을 뺀 다섯 출연진을 모두 배우로 채워 재미를 잃었다. 이런 지적을 의식했는지 <도시농부>는 최근 반응이 좋은 예능 대세이거나 예능으로 잔뼈가 굵은 출연진으로 채웠다. 우선 시즌1부터 함께했던 개그맨 정태호와 <개그콘서트>에 출연 중인 개그맨 박성광이 출연한다. 여기에 예능프로그램의 감초 역할로 뮤지션이자 MC로 활약 중이 윤종신, 조정치가 가세했다. 방송가 셰프 전성시대를 이끌고 있는 최현석, 정창욱의 출연은 그 자체로 화제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최근 예능 대세로 떠오르는 두 셰프는 대세 아이템인 쿡방과 먹방을 보여주기에 최적인 멤버다. 최근에 유명한 셰프들이 직접 요리재료를 기르고 있는 트렌드에도 부합할뿐더러 길러낸 식재료의 요리법도 알려줄 수 있다. 다만 둘 다 나란히 출연하고 있는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보여준 허셰프(허세+셰프, 허세 부리며 요리하는 셰프)와 맛깡패(맛으로 다른 이들을 제압한다는 뜻) 이미지가 겹치는 면을 해소하는 건이 관건이다. 출연진들은 무엇보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틈나는 대로 옥상 텃밭을 찾는다. 농사를 배우려 경북 봉화까지 내려가거나 하와이에서까지 농사에 관심을 놓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틈틈이 보여준 멤버들의 호흡은 시청자들의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화려한 출연진들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이 부진하다면 제작진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도시농부>는 촬영 시작부터 사전준비가 부실해 프로그램의 제작에 차질을 빚었다. 애초에 촬영장을 만들려 했던 곳은 영등포구청 별관이 아니라 여의도 한국방송(KBS) 연구동이었다. 안전진단 결과 이상은 없었으나 1층에 있는 어린이집 학부모들의 항의로 장소를 옮겨야 했다. 기존 촬영분은 전량 폐기됐고 방송 일정도 2주 미뤄졌다. 이런 이유로 초기 방영분은 방송 내내 중복되는 장면이 많았고 억지로 분량을 늘린 장면이 반복됐다. 사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방송이 9회까지 나간 지금까지도 맥락 없는 편집이 계속되고 있는 건 제작진의 역량부족이다. <도시농부>는 짧게는 70분이지만 80분이 넘게 방송되기도 한다. 긴 방영시간을 감안한다면 속도감 있게 타이트한 편집으로 시청자를 끌어들여도 부족한데 오히려 축축 처진다. 동 시간대 프로그램인 <마리텔>이 감각적인 편집으로 호평을 듣는 것에 견준다면 <도시농부>의 편집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자기 콘텐츠에 힘 실어야

출연진이 농사를 짓고 수확하는 일상을 다루는 예능프로그램의 대표작은 tvN의 <삼시세끼>를 꼽을 수 있다. <삼시세끼>는 도시를 벗어나 강원도 정선과 서해 만재도에서 2박 3일간 자급자족하는 전원생활을 담는다. <도시농부>가 ‘농사 예능’을 표방한 이상 <삼시세끼>의 그늘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도심 속에서 벌이는 <삼시세끼>의 변주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생활’이 아닌 ‘농사’에 방점을 둔 <도시농부>는 아류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도 있다. 정작 문제는 중점을 둔 ‘농사’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제작진은 출연자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농부로 거듭나는 모습을 그려내야 했다. 그러나 ‘농사’에 진정성을 보여준 멤버는 집에서 조그마한 화분에서 작물을 길러본 조정치, 사전 촬영에서 농사를 공부하는 모습을 보였던 최현석 정도였다. 방송에서 농사를 본업으로 하거나 도시농업을 하는 농부들 모두 자신이 재배할 작물과 농사법에 대해 충분히 공부를 한 뒤 농사를 시작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도 정작 출연진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짬을 내서 방송에 출연해 농사를 짓는 연예인들에게 완벽한 농부가 되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농사에 땀 흘리는 진정성이 없다면 부제로 내건 <도시농부>는 무색해지고 만다.

▲ 최현석 셰프가 봉화 해오름 농장의 최종섭 대표에게 작물 재배법을 배우고 있다. ⓒ 인간의 조건 누리집

<도시농부>가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으려면 지난날의 영광에 기대기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콘텐츠로 승부해야한다. 2013년에 시작한 <인간의 조건 시즌1>은 현대인에게 사람답게 살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어 좋은 반향을 거뒀다. 2015년 현재의 <인간의 조건>이란 이름은 시즌2의 실패로 빛을 바랬고, 시즌3 <도시농부>는 어색하기만 하다. 9회를 방송하는 동안 여전히 프로그램 구성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은 과거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보여준다. 3화부터 추가된 내레이션은 다음 화에서 갑자기 빠져 버리기도 했다. 프로그램의 시작을 시민인터뷰로 시작하고 출연진 인터뷰로 마무리하는 구성은 이전 시즌을 답습했다. 그마저도 회 차마다 구성이 들쑥날쑥 이었다. <인간의 조건>의 옛 영광을 극복하지 못하다 보니 프로그램이 보여주려 했던 ‘도시농부’는 온데간데없고 논밭에서 소일거리를 하는 연예인 그 이상 이하도 아닌 프로그램이 되어 버렸다.

방송시간도 문제였다. <도시농부>는 9화까지 빠를 때는 10시 45분에, 늦을 때는 자정이 넘어서 방영되었다. 콘텐츠도 약한 프로그램이 방영시간까지 오락가락하니 입지를 다질 수가 없었다. 경쟁 프로그램인 <마리텔> 역시 최고 시청률 10%를 제외하면 한 자릿수이듯이 주말 심야시간은 시청률이 저조한 시간대다. 결국 방영 후 시청자들의 호응에 기대어 프로그램의 파급효과로 콘텐츠의 영향력을 키워야 하는데 도시농부는 이 점에서도 실패하고 있다. 방송 중 소개한 실제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처럼 도시농업을 하고 있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리얼리티로의 전환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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