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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 없는 사회(Barrierfree)를 향해
[미디어비평] 일본 NHK <바리바라>로 본 한국의 현주소
2015년 04월 15일 (수) 20:17:20 정성수 기자 un2ru2re2@naver.com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앞으로 찢어진 청바지와 흰색 운동화 차림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섰다. 얼굴이 까맸고 이목구비가 평범했다. 한마디로 멋을 낸 ‘촌놈’ 같았다. 열차를 타고 좌석에 앉았는데 내 왼쪽 앞 건너편 자리에 앉은 그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는 몸을 내 쪽으로 향했다. 나의 바로 앞자리에 앉은 자신의 친구와 얘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청년은 수화(手話)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청각장애인이었다. 나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는 때때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도 뒤돌아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그들의 조용한 대화는 내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학교후배처럼 친근감이 느껴졌다. 이전까지는 장애인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측은한 마음부터 들었다. 내게 장애인은 늘 도움이 필요한 대상이었다. 그러나 기차에서 만난 청년은 청각장애인이 아니라 여느 학교후배와 같이 활기 넘치는 20대였다. 평소에는 느껴본 적 없는 새로운 감정이었다.

   
▲ 장애인을 소재로 한 영화 <도가니>와 책 <닉부이치치의 허그>. ⓒ CJ엔터테인먼트, Randomhouse

미디어는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청각장애인학교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는 장애인의 성폭력 피해를 그린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은 6살 지능을 가진 용구(류승룡 분)에게 억울한 죄를 뒤집어씌운다. 영화에서 장애인은 피해 받거나 나약한 존재였다. 감동을 주는 대상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영화<말아톤>과 <맨발이 기봉이>는 일반인도 하기 어려운 일에 도전하는 장애인의 꿋꿋한 모습을 보여준다. 일본과 한국에서 베스트셀러 열풍을 몰고 온 <오체불만족>은 팔다리가 없이 태어난 일본인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이야기다. 장애를 개성이라 생각하는 그의 긍정적인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느꼈다. 2010년에는 히로타다처럼 팔다리가 없는 호주인 닉 부이치치가 쓴 책 <닉 부이치치의 허그>가 인기를 끌었다. 미디어 속 장애인은 사회적 약자이거나 장애를 이겨낸 ‘감동적인’ 인물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영화나 책에서 다루는 장애인의 이야기는 일회성 화제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방송은 정규편성을 통해 장애인, 사회적 약자에 관련된 사회적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할 수 있다. 한국방송(KBS)의 <동행>(KBS1)은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 장애인, 다문화가정 등 소외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사랑의 가족>(KBS1)은 장애인들의 삶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장애인 전문 프로그램이다. 이들 프로그램 게시판에는 감동을 받았다는 소감, 출연자를 돕고 싶다는 의견, 응원의 메시지 등을 담은 글들이 줄지어 올라온다. 시청자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장애인들과 일반인이 함께 살아가는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들은 공익성이 높은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여전히 TV 속 장애인의 모습은 절망 속에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미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른 미디어에서 취급하는 방식도 그들의 삶을 오롯이 드러내기보다 부분적인 모습을 그려내는데 지나지 않는다. 장애인은 여전히 세상에서 소외받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 

   
▲ 2000년부터 방영중인 KBS 장애인 프로그램 <사랑의 가족>. ⓒ KBS <사랑의 가족> 누리집

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인간적 한계 시각(human limitation frame)과 인간적 다양성 시각(human variation frame)이 있다. 인간적 한계 시각은 ‘일반인들과 달리 장애인들은 한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일반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인간적 다양성 시각은 ‘장애인은 일반 사람들과 다른 조건을 가진 동등한 인격체’라는 입장이다. 장애인에게 관심과 도움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와 똑같이 능동적인 주체이고, 똑같은 권리를 가진 존재라는 인간적 다양성 시각이 중요하다. 보호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의 하나로 받아들여야 소외문제, 이동권 등 장애인 복지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일본의 NHK가 매주 금요일 방영하는 <바리바라(バリバラ‧ Barrierfree Variety Show)>는 장애인을 소재로 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장애인의 연애‧출산‧육아‧취업에서 지금까지 금기시되었던 장애인의 성문제까지 폭넓게 취급한다. 장애인이 속을 털어넣고, 일반인과 함께 웃고 생각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물리적‧심리적 장벽이 없는 사회(Barrier-free)를 목표로 한다는 기획의도를 밝히고 있다.

   
▲ '귀가 들리지 않아요' 명찰을 붙인 오카자키 씨. ⓒ NHK <바리바라> 누리집

4명의 고정출연자 중 3명은 장애를 안고 있다. 다른 장애인 프로그램에서 객체였던 장애인들은 화면 속 주인공이 되어 자신들의 고민과 생각을 당당히 털어놓는다. 올해 2월 방송에서는 레스토랑 홀 직원에 도전하는 청각장애인 오카자키(岡﨑)씨가 출연했다. 그가 명찰에 ‘나는 오카자키입니다. 귀가 들리지 않아요’고 밝히자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손님과 ‘대화’를 나눴다. 지난해 5월에는 실연을 주제로 고민과 해결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처음에는 장애인이 나오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대해 장애인을 구경거리로 만든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반응이 좋아 2012년부터 4년째 방송이 이어져오고 있다.

   
▲ 손님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오카자키 씨. ⓒ NHK <바리바라> 누리집

우리나라는 방송법에 장애인의 방송접근권을 규정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장애인방송 편성 및 제공 등 장애인 등 장애인 방송접근권 보장에 관한 고시’에 지상파 방송과 보도‧종합편성 채널사용사업자가 장애인방송 서비스(자막, 화면해설, 수화방송)를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아무리 법적 규정을 강화해도 방송이 장애인을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수동적 존재로 그리거나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다양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면 규정은 허울 좋은 치장일 뿐이다. 일본방송처럼 장애인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되고 그들의 현실적 고민을 다루는 방식으로 획기적 전환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식변화다. 방송에 출연한 장애인을 보면서 동정, 연민, 감동이 아닌 명랑함, 유쾌함, 흥겨움의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 내가 기차에서 만났던 청각장애인이 내 후배처럼 친근하게 다가왔던 것처럼. 


 

[정성수 기자]
단비뉴스 미디어팀
내 목표는 프로가 되는 것이다, 방송이든 삶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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