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세 개의 시선 ②

▲ 이정화 기자

독일의 집권당은 기독교민주연합과 사회민주당이 연합한 ‘기민당’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벌써 네 번째 연임을 하고 있지만 독일 정부 이름은 ‘메르켈 정부’가 아니라 ‘기민당 정부’다. 우리나라는 5년 단임 대통령제로 연임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데도 대통령의 이름을 딴 정부 이름을 쓴다. ‘새누리당 정부’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 ‘열린우리당 정부’가 아니라 ‘노무현 정부’ 혹은 ‘참여정부’란 식이다. 같은 정책과 정치성향을 공유하며 당 대표로 대선에 출마해 대통령에 당선되지만, 당선된 이후에는 당과 청으로 분리된다. 집권 5년 간 실정의 책임에 대해  정당이 아니라 대통령 개인을 내세운 정부에 묻는다. 정권교체 유무에 관계 없이 집권초기에 전 정권과의 구분짓기를 위해 ‘부패 척결’을 외치는 것은 그 방증이다. 박근혜 정부가 ‘사자방 비리’를 파헤치는 것을 주요 국정과제로 내세우는 점도 그렇다.  

이런 호명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정치’를 드러낸다. 막스베버는<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은 신념을 바탕으로 하되 그것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지금 한국정치에서 실정한 정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은 투표를 통한 정권교체 뿐이다. 비자금 조성 등 불법적 행위 이외의 실정에 대해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이나 법적 근거가 없다. ‘그놈이그놈’이란 식의 정치적 냉소가 극심하고 지역주의에 기반해 투표하는 지금의 한국 정치상황에서는 투표를 통한 간접적 책임추궁조차 어려운 현실이다. 물러난 대통령 개인이 기소되어 수감됐다가 특별사면되면 실정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게 된다. 어디에도 책임을 묻기 힘든 정치 구조 속에서는 생산적인 정책도, 진보적인 정권교체도 이루어지기 어렵다. 

▲ 정당이 아닌 대통령 이름을 내세운 정부 이름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정치를 드러낸다. ⓒ Creative Commons

책임지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정권이 교체되면 앞 정권의 실책을 비판하기 바쁘고, 여당이 정권유지에 성공하면 그것대로 꼬리 자르기에 여념 없는 ‘무책임한 정치’에서는 진보적인 정치발전이있을 수 없다. 의회는 일관된 의사결정을 하기 어렵고, 정당 역시 5년 마다 이른바 ‘선거 트렌드’에 휩쓸려 주요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일이 잦아진다. 오랜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진행해야 하는 정책에 대한 지속적 논의가 이루어질 수 없는 환경이다. 특히 연임이 불가능한 한국의 대통령제 안에서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한 복지국가 수립이 더욱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정당이 나서서 직접 책임져야 정권유지에 실패한 후 그 반성 위에서 새로운 정책구상을 할 수 있다.

‘매니페스토’는 당선 후 공약에 대한 책임을 확실히 물을 수 있는 제도다. 추진하게 될 입법 내용이나 정책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으로, 예산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언제쯤 시행할 것인지 등 아주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책임소재를 분명하게 밝힐 수 있는 매니페스토 정책을 도입하면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책임지는 리더십’의 등장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선거제도의 보완도 필요하다. 이념지형상 두 정당 모두 보수당에 속하는 양당제 안에서는 정책에 대한 타협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정권교체가 돼도 이념지형에 큰 차이가 없는 두 보수 정당 사이의 ‘정권 교환’에 가까워 큰 정책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매니페스토 제도를 통해 단기적으로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고, 정치 전반에서 연정을 통해 합의의 정치를 구현해 궁극적으로는 정치전반이 책임정치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책임이 있는 곳에 반성이 있고, 반성이 있는 곳에 발전이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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