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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후쿠시마, 그 다음은
[씨네토크] 원전참사 경고하는 영화 '후쿠시마의 미래'
2015년 05월 25일 (월) 07:27:52 배지열 기자 journalistbae@gmail.com

여기,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지만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치명적 문제가 있다. 영화 <후쿠시마의 미래>가 보여주는 ‘원전 밀집국의 운명’이 그것이다. 영화는 2011년 3월 14일의 다급한 무전으로 시작한다.

“본부, 큰일 났습니다. 3호기에서 수증기 폭발이 발생했습니다. 11시 1분 긴급연락입니다.”

이날로부터 3일전, 일본 후쿠시마 해역에는 진도 9.0의 강한 지진이 일어났다. 지진해일(쓰나미)이 후쿠시마 핵발전소를 덮쳐 전원이 끊기면서 원자로 냉각기능이 멈췄다. 일본 정부는 반경 20킬로미터(km) 이내를 경계구역으로 설정했다. 당시 주일특파원으로 일하던 <한겨레> 정남구 기자의 책 <잃어버린 후쿠시마의 봄>에 따르면, 후쿠시마 제1원전의 6개 원자로 중 1, 2, 3, 4호기에서 수소폭발이 발생했고, 방사능 오염이 심각하게 확산됐다. 이 사고는 노심용융(melt down), 폭발, 방사성 물질의 외부 방출 등을 포함하는 ‘레벨 7’의 최고등급 사고로 기록됐다.

   
▲ <후쿠시마의 미래> 공식 포스터. ⓒ 네이버 영화

구호품으로 지내는 어부들, 기형아 출산 걱정하는 산모

그로부터 1년 6개월가량 지난 2012년 가을. 영화 속 후쿠시마 지역 어부들은 물고기가 펄떡이는 그물을 끌어올리는 대신 각지에서 보내온 헌 옷과 담요 등 구호품으로 쌀쌀한 날씨를 견디고 있었다. 원전에서 200km 떨어진 치바현 시로이시의 아이 어머니들은 직접 방사능 측정기를 들고 다니며 ‘정부가 발표한 방사능 측정치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후쿠시마현 북부에 있는 미나미소마시는 전체인구 6만 명 중 아직까지 2만 명 이상이 피난에서 돌아오지 못한 채 방사능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오염된 흙을 긁어내고 깨끗한 흙으로 덮어씌우는 제염 작업이 한창이지만, 아직까지 지역 내 3분의 1이 사람이 살 수 없는 경계구역이다. 마을 이곳저곳의 방사능 수치를 측정하던 주민 요시다 씨는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니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정부가 시민들을 구제할 의지가 없어서 이런 상황을 초래했습니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을 정당화하려고만 하니 원상복구가 점점 어려워지는 겁니다.”

미나미소마시의 한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검사를 하던 임산부는 불안에 떨면서도 아기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녀는 “부모님이 어떤 아이가 태어날지 모르니 아이를 포기하라고까지 말씀하셨다”며 울먹였다.

   
▲ 일본 후지TV의 전 아나운서 오츠카 노리카즈(66) 씨가 후쿠시마 인근 농산물로 만든 음식을 시식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모습. ⓒ Fukushima-Diary

영화 마지막 부분에는 ‘정치가의 집’이라는 팻말이 달린 나무판자 건물이 클로즈업되어 등장한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를 살리자’는 구호 아래 이 지역에서 재배된 농산물을 먹자는 광고를 내보내고, 지원금을 준다며 정치인들에게 후쿠시마 현으로 이주할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일본 후지TV의 아나운서 오츠카 노리카즈(66)는 2011년 4월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후쿠시마 인근 농산물로 만든 음식을 시식한 뒤 7개월 만에 급성백혈병으로 방송에서 하차했다. 정치인들 중 후쿠시마 현으로 이주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주민들은 방사능 자체보다 올바른 정보를 알리지 않는 정부가 더 두렵다고 말한다. 비어있는 ‘정치가의 집’은 원전사고의 진실을 은폐하려는 아베 정권의 모습과 닮았다. 내레이션(해설)을 맡은 방송인 김미화(51)씨가 이 대목에서 힘주어 말한다.

“이 곳 후쿠시마에 오시면 그 진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홍기(55) 감독은 지난해 전남 순천만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6남매를 키운 할머니를 그린 <순천>을 통해 국내 다큐멘터리 영화 중 최초로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됐다. 이 감독은 지난달 15일 서울 신문로2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번 영화는 원전 사고가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초점을 두고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후쿠시마 사고를 보고 원전 다큐를 구상하게 됐다는 이 감독은 국내 원전 수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특히 계속 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련 당국 등으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얻기 힘들어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고 한다. 초기에는 제작비 조달에 도 어려움을 겪었는데 방송문화진흥원과 아리랑 TV등의 후원을 통해 만들 수 있게 됐다. 후쿠시마와 체르노빌 등 위험한 지역을 직접 취재하고 촬영하는 만큼 이 감독과 일행 한 명이 최소한의 장비만 가지고 2012년 가을부터 제작에 들어갔다. 약 70분 분량인 이 영화는 지난 2013년 일본에서 <0.23μSV(마이크로시버트)-후쿠시마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먼저 개봉돼 호평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독립영화관 등을 통해 지난달 9일부터 지난 6일까지 상영됐다.

   
▲ 이홍기 감독 (좌)은 지난달 15일 서울 종로구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있었던 관객과의 대화에서 다음 영화에 대한 계획을 밝혔다. ⓒ 인디플러그 제공

사고 30년 후에도 이어지는 우크라이나의 비극

영화는 일본의 40대 직장인부터 70대 노인까지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17명의 시민조사팀이 2012년 가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를 방문한 장면을 보여준다. 그곳으로부터 2시간 거리에 있는 체르노빌 원전에서 후쿠시마의 ‘미래’를 보고자 한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미래는 무엇보다 ‘아이들’이다. 조사팀은 우크라이나 국립 암연구소의 소아병동과, 체르노빌 원전사고 후 강제 이주당한 주민들이 살고 있는 코바린, 모자린 지역의 학교를 방문한다.

1986년 4월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당시 4개의 원자로 중 4호기에서 직원의 오작동 등으로 노심용융과 폭발, 방사능 누출이 일어난 것이다. 사고 이후 최근까지 인근 지역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 많은 수가 암으로 소아병동에 입원 중이거나, 학교에 다니면서도 머리와 몸 등 곳곳에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사고 초기에 비오염 지역으로 구분됐던 일부 마을의 학교에서도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다리와 머리에 통증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우크라이나에서 유일하게 태아에 미치는 방사능 피해를 연구하고 있는 로가노브스키 박사는 “체르노빌 사고 때 피폭당한 아이들을 20세까지 추적한 결과, 왼쪽 뇌 손상으로 지능이 떨어지고 감정적으로나 행동적으로 장애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일본 조사팀에게 말했다. 성인들 중에도 사고 초기에 원자로 인근에 있었던 사람들이 강제 이주지역에서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원전사고 6년 후 1000여명이 강제 이주된 코바린 지역에서는 이주민 중 280명이 심장마비나 뇌졸중, 암으로 사망했다. 현재 이 지역의 평균수명은 50세에 불과하다. 태어날 때부터 팔과 다리를 못 움직이는 아이들은 학교보다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하지만 당시 소련 정부가 사고를 은폐하려 했기 때문에 관련 정보나 통계가 제대로 남아있지 않다.

사고가 일어난 지 30년이 다 돼가지만 체르노빌 원전 일대는 여전히 높은 방사능 수치 때문에 인간이 살 수 없는 땅이다. 당시 폭발한 4호기 내부에는 아직도 250톤(t)의 방사능 물질이 보이지 않는 죽음의 연기를 내뿜고 있다. 조사팀은 사고 당시 연쇄 폭발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고비를 넘긴 뒤 1991년부터 가동중지 상태인 원전 2호기를 방문한다. 현재 이곳은 해체 과정에 있지만 여전히 높은 방사선량을 기록하고 있다. 2호기 제어실팀장 알렉산드 스테파노씨는 사용후핵폐기물 처리에도 근본적 해결책이 없다는 뜻에서 “원전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와 같다”는 조사팀의 지적에 공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실질적으로 현재까지 그 어느 나라에도 (완벽하게 안전한 원전가동을 보장하는) 폐루프 제어(Closed-loop control)시스템은 없습니다. 우라늄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안전한 폐기물을 얻는다고요? 그런 기술은 아직 세상에 없습니다.”

   
▲ 후쿠시마의 미래를 보고자 찾은 체르노빌 원전에서 그들은 어떤 미래를 보고 왔을까. ⓒ 네이버 영화

한국은 국토 대비 원전 수가 세계 최고인 나라

이 감독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미래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를 물었을 때 일본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일본의 30년 후 미래를 보기 위해 체르노빌을 갔는데, 사실 이것이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대형 원전사고가 난 나라들이 미국(쓰리마일), 구 소련(체르노빌), 일본(후쿠시마) 등 세계에서 가장 원전 수가 많은 나라 순서와 거의 일치했고, 우리나라도 5위권에 들어있다는 맥락에서다. 그는 국내 원전의 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파헤치는 다큐멘터리를 다음 작품으로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후쿠시마의 미래를 걱정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관객들에게 감독은 세 개의 문장을 제시한다. 자막을 읽다보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한국에는 지금 23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단위면적당 세계에서 원전이 가장 많은 나라인 셈이다.
2024년이면 총 42기로 늘어날 것이다.“

<후쿠시마의 미래>는 네이버 앱스토어에서 구매할 수 있다.


 

[배지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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