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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는 비를 맞으며 걸어보라
[상상사전] '비'
2015년 03월 31일 (화) 19:42:39 박동국 기자 journalist69@naver.com
   
▲ 박동국 기자

비는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며 사람들 기억 속으로 스며든다. 이별을 슬퍼하는 노래에 비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비는 저마다 추억을 되살리기 때문일 터이다. 비 오는 날은 내 마음 속에도 회상과 함께 비가 내리는 때가 많다. 해병대 복무 시절, 폭우 속에서 야전훈련을 할 때 몰래 반합에 끓여 먹던 라면도 그 중 하나다. 라면 국물을 먹는 건지 빗물을 먹는 건지 모르지만 그 라면 맛을 잊을 수 없다.

비 오는 날 내가 달콤한 향수에 젖는 것과 달리 할머니는 걱정에 휩싸인다. 할머니는 수해로 경기도 김포의 집을 잃고 강원도로 이주했다. 어렵게 마련한 공사현장 식당도 비만 내렸다 하면 인부의 발길이 끊기곤 해 없는 살림이 더 궁핍해졌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도 홍수로 집이 침수됐으니 우리 할머니만큼 '비'를 철천지원수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많은 수재와 함께한 삶이었다. 지금은 침수 문제가 없는 집에서 살고 있어 비 걱정은 다 옛일이 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비는 할머니에게 정신적 외상으로 남았다. TV에 수재민이 나오면 '불쌍한 사람들 도와줘야 한다'며 안절부절못하고, 비 오는 날이면 집에 물이라도 샐까 아픈 몸을 이끌고 곳곳을 살핀다. 비만 오면 내게도 조심하라는 당부 전화를 한다. 수해는 악몽이 되어 할머니 인생을 고달프게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 할머니보다 더 가슴 아픈 비의 기억을 내게 심어준 사람이 있었다. 지난해 7월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아 안산에서 서울까지 비를 맞으며 유족과 함께 걸었다. 유족들이 노란우산을 쓰고 걷는데 한 중년 남성은 우산도 없이 걷고 있어 사연을 물었다.

   
▲ 비 내리는 4월의 진도 해역. ⓒ JTBC 뉴스 화면 갈무리

”애가 그 추운 물속에 갇혀있는데, 제가 무슨 염치로 비 피하겠다고 우산을 쓰겠어요. 진도 앞바다에서 딸아이가 나올 때까지는 우산 쓰는 일은 없을 거예요.”

아이는 아직까지 나오지 못한 실종자 9명 중 하나다. 그 아버지는 봄비로 시작해 차가워진 가을비까지도 온몸으로 맞았을 거다. 유족들은 평생 비뿐 아니라 모든 물을 보면 잃어버린 가족이 생각날 터이다.

비는 내게 그냥 추억이지만 누구에게는 쓰라린 기억이고, 또 누구에게는 평생의 아픔으로 남을 것이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도 1년이 지났건만 아직 세월호참사특위 하나 작동시키지 못하고 있다. 어쩌다 한국은 이렇게 공감도 공분도 하지 못하는 사회가 됐을까? 

실종자 부모들은 답답한 가슴을 식히기 위해서라도 비를 맞고 다닐 것만 같다. 다시 ‘잔인한 달’ 4월이 오고, 뜨거운 눈물 대신 찬 비가 내린다. 잊지 않으려면, 4월에는 한번이라도 비를 맞으며 걸어보라.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박동국 기자]
단비뉴스 지역농촌팀, 세저리이야기 부편집장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리영희)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결심이 섰다. '기자가 되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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