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길’

▲ 강연우

길은 흙을 뜻하는 ‘딜(질)’이 다르게 분화돼 남은 말이라고 주장하는 국어학자가 있다. ‘땅에서 흙이 드러난 부분’을 ‘길’이라 했다는 것이다. 흙이 드러난 길의 모습은 전에 이미 지나간 사람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 박지원 의원이 최근 자기 사회관계망(SNS)에 과거 두 ‘길’을 언급했다. 하나는 누군가 전철을 밟아 흙이 드러난 길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 지나가면서 흙을 튀기고 있는 길이다.

박 의원은 문재인 의원이 “노무현의 길을 가지 않고, 박근혜의 길을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비판은 새정연의 변화를 기대했던 지지자들을 한숨짓게 만들었다. 여당과 보수언론은 야당이 언제 ‘친노’, ‘비노’라는 단어를 꺼내나 예의주시하고 있는데, 박 의원이 계파갈등의 치부를 스스로 침소봉대해서 드러낸 것이다. 겨우 남은 10% 지지자도 발길을 돌리게 만들 만한 발언이었다. 언론은 야당의 전당대회를 갈등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고 컨벤션 효과도 축소됐다.

박근혜 정부와 여당이 저렇게 정치를 못하는데도 야당 지지율이 더 낮은 것은 야당 스스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지 않은 탓이다. 과거 10년의 집권 경험은 ‘좋았던 시절’이 아니라 ‘반면거울’로 삼아야 한다. 당의 이념과 정책을 가다듬어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재집권의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빠르고 편한 새 도로가 뚫렸는데 옛길로만 가려고 하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야당은 '좋았던 10년'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선택해야 한다. 스스로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것만이 등 돌린 국민을 돌아오게 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 flickr

참여정부는 진보정당이라는 이름으로 집권했지만 이라크에 파병하고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신자유주의 정책과 타협하면서 지금 여당과 별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참여정부는 150번의 기자회견과 최대 기록물 보유에서 보듯 투명하게 정부를 운영하는 등 업적도 많이 남겼지만, 국민들은 결국 한나라당을 선택했다. 새정연은 노무현을 실패의 기억으로도 되새겨야 한다. 그들의 진로가 노무현의 길을 답습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박근혜의 길도 아니다. 박근혜 후보는 국민에게 탄탄대로를 기약했지만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과거 보수정권의 행태인 ‘책임지지 않는 정치’, ‘폐쇄적 국정운영’을 일삼으면서 지지자들의 삶마저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잇따른 인사 참극, 세월호 참사, 측근들의 국정농단 등 자욱한 먼지가 걷힐 날이 없다. 집권 3년째 접어든 지금 국민들은 ‘남은 3년이 두렵다’고 말한다. 

야당은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라고 해서 무조건 피해가면 안 된다. 지금까지 다닌 익숙한 길로만 가려 해서는 한국사회의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짐승들은 늘 다니는 길이 있지만 그 길에 덫이나 함정이 있는 경우가 많다. 역사의 갈림길, 뒤안길 등 역사는 자주 길에 비유된다. 여야 할 것 없이 갈림길에서, 편해 보이지만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그 정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제5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에서 우수작으로 뽑힌 이 글을 쓴 이는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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