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통과의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단다.”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벤 숙부가 주인공 피터 파커에게 해준 말이다. 이 대사는 미국 ‘히어로 무비’에서 다양하게 차용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우리가 즐겨 읽은 신화 속 영웅담에서 벤 숙부의 대사를 발견한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길가메시나 그리스의 헤라클레스도 처음부터 영웅은 아니었다. 통과의례로 주어진 고난을 겪은 뒤 영웅이 된다. 이겨내지 못할 것 같은 시련을 이겨내며 어떻게 힘을 써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영웅담의 주인공, 길가메시도 초야권을 갖고 오만을 떠는 사고뭉치였다. 그러나 신들은 길가메시를 견제하기 위해 엔키두를 내려 보낸다. 길가메시는 엔키두와 대결하며 잘못을 깨닫는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엔키두와 친구 사이가 되고, 본인도 영웅으로 거듭난다. 통과의례는 책임을 깨닫는 과정이다.
알다시피 ‘Responsibility’는 ‘책임’을 뜻하는 영어 단어이다. 어원인 ‘Response’는 ‘응답’의 의미다. 책임은 사실 관계에서 자기에게 귀속되는 부분을 명확히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학창시절, “이 답안지 누가 작성한 거야”라는 선생님 질문에 “제 것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다. “앞으로 이름 꼭 써”라고 선생님이 질책하면 우리는 이내 수긍한다. 다음에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다짐하고 주의를 기울인다. 우리가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의식도 그런 거 아닐까? 응답하고, 사과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일이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넉 달이 지났지만 한국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누군가의 질문에 응답하고 사과했는가? 희생자 10명은 깊은 바다 속에서 돌아오지도 못했다. 침몰 원인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사과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안전에 대한 경각심은 높아졌지만, 제도가 수렴하지 못하고 있으니 또 얼마나 갈까? 청소년수련원 같은 곳은 여전히 비정규직으로 가득하고 낡은 전봇대는 강풍에 쓰러질 듯 삐뚜름하게 서있다.
비교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추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신을 발견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을 밝혀내는 과정이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더 이상 남 탓만 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혹독한 통과의례가 영웅을 만든다. 자신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확실하게 학습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큰 사고가 날 때마다 ‘안전불감증’을 말하며 안일함을 비판해왔다. 끊임없는 참사로 많은 목숨을 잃었지만 그때뿐이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확실한 통과의례로 삼아야 한다. 사고의 원인과 책임질 사람을 명백하게 특정해야 한다. 유가족들에게 확실히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통과의례를 피해버리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교황이 다녀가면서 남긴 수많은 메시지에 한국 사회는 응답해야 한다.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힘없는 자에게 다가간 그의 겸손이 한때의 감동으로 끝난다면, 힘있는 자에게 반성을 촉구한 그의 용기마저 그냥 하나의 목소리로 잦아든다면, 우리는 어디서 희망의 싹을 찾을 수 있으랴.
|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