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박종훈 ‘세대 전쟁’

언제부턴가 ‘세대투표’라는 단어가 익숙해졌다. 멀게는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킨 16대 대통령 선거부터 가깝게는 6.4 지방선거까지. 전문가들은 지역과 더불어 세대별 투표 성향을 선거의 주요 변수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2030은 진보정당을, 5060은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게 이제는 당연한 것이 됐다. 그러나 세대라는 외피를 한 꺼풀 벗기고 나면 결국 경제적 양극화가 갈등의 실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 회복의 성과만큼 비정규직의 수가 늘어나는 경제적 양극화가 심해지자 2030은 야권대표 노무현을 당선시켜 존재를 과시했다. 그 후 이어진 지방선거, 총선, 대선에서 세대갈등은 계속 대립각을 세웠다.

전 세계에 걸쳐 진행중인 세대투표 양상은 세대 간 불평등에 근거한 갈등으로 봐야 하기에 생물학적 갈등보다는 계급갈등에 가깝다. 높은 대학등록금 탓에 빚으로 20대를 시작하는 청년세대에게 높은 실업률, 만연한 비정규직은 그들 삶을 비참하게 만든다. 하지만 정부는 청년세대를 위한 특별한 복지 구상도 없이 손을 놓고 있다. 이를 해결해야 할 정치권은 오히려 세대갈등을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한다. 고령화로 노년층이 많아진 인구구조 덕분에 그들의 이권을 대변하는 정책을 내세우면 쉽게 당선됐다. 막강한 인구수에 힘입어 기성세대의 정치적 힘이 커진 결과 노인복지는 강화됐지만 정작 미래세대에 대한 복지투자는 계속 외면당하면서 마치 세대간에 밥그릇 전쟁이 벌어진 듯하다.

▲ 박종훈 기자의 <세대전쟁> 표지. ⓒ 21세기북스

‘지상 최대의 경제사기극’ 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세대전쟁>이라는 책의 저자는 KBS에서 경제전문기자로 활약하는 박종훈이다. 그는 기성세대가 받는 혜택이 커질수록 미래세대의 부담이 가중되는 세대간 불평등을 세대전쟁의 원인으로 본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남유럽과 일본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은 경제위기 이후 국가재정이 위태로운데도 고령층을 위한 의료비∙연금 등 복지지출에 천문학적 돈을 지출한다. 그런데 복지비용을 '증세 없이' 해결하니 그것이 국가부채로 이어져 미래세대로 떠넘겨지는 빚더미가 된다.

게다가 한국은 국민연금 도입이 늦고 다른 국가에 견주어 상대적으로 노인복지가 열악해 노인빈곤율이 높은 상황이라 청년복지만큼 노인복지도 중요하다. 그러나 대부분 노후자금을 부동산에 의존해온 한국 중산층은 현재 유례없는 집값 하락으로 노후대비를 하지 못해 황혼을 아파트 경비원과 파출부를 전전하며 서럽고 고되게 보내고 있다. 즉 상대적으로 연금과 노인복지가 잘 돼있어 노인층은 유복하지만 그 빚을 청년층에 갚고 있는 외국과 달리, 우리는 노인과 청년 모두 경제적으로 곤궁한 처지다.

부정부패의 화신은 어떻게 재선에 성공했나

100번 넘게 기소됐고 2000번 가까이 법정에 선 베를루스쿠니 전 이탈리아 총리. 그는 10년 넘게 이탈리아 총리를 역임한 최장수 총리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그의 당선과 재선은 급속한 고령화가 불러온 이탈리아의 심각한 세대갈등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은퇴한 노인들에게 이탈리아는 천국이다. 이탈리아의 중산층 은퇴자들 중에는 300~500만원 정도 노후연금을 받으며 풍요로운 노후생활을 즐긴다. 그런데 우리나라 88만원 세대처럼 '1000유로 세대'라 불리는 이탈리아 비정규직 청년들은 한 달에 140만원 남짓한 돈을 받으며 힘겹게 살아간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도 국민연금 개혁을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그가 처음 총리로 당선됐던 때 이탈리아에선 1919년 시작된 국민연금을 두고 곧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베를루스코니의 전진 이탈리아당은 복지제도를 대폭 축소하겠다는 목표 아래 야심 찬 연금개혁에 도전했지만, 이미 연금을 수령하고 있거나 수령이 임박한 고령층의 반대에 밀렸고 때마침 터진 부패 스캔들로 실각했다. 하지만 6년 후, 그는 자신이 낮추려 했던 노후연금 수령액을 인상하겠다는 공약으로 다시 총리에 도전했다. 그 결과 각종 추문에도 불구하고 재집권에 성공했다. 연금 축소 우려가 사라지자 노년층은 환호했지만, 그가 총리로 취임한 2001년부터 이탈리아의 재정적자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청년을 버린 스페인, 청년이 버린 스페인

스페인 영화 <아마도르>는 아버지 연금을 대신 타기 위해 자식과 요양보호사가 노인의 썩어가는 시체를 숨기는 내용을 담았다. 이 영화는 연금수령을 두고 세대간 경제적 양극화가 얼마나 벌어져있는지 실감나게 보여준다. 스페인은 세계 최고 수준 실업률과 저임금을 달리는 나라여서 청년들은 비참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연금에 의존하는 은퇴세대는 은퇴 전 연봉과 비슷한 연금을 받으며 경제위기는 다른 나라 일인 양 여유로운 생활을 유지한다.

▲ 영화 <아마도르> 한 장면.

2차세계대전 후 태어난 베이비부머가 수적으로 우세한 스페인은 포퓰리즘 공약들이 늘 승리를 가져다 줬다.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는 취임 후 “재정적자가 아무리 커도 건드리지 않을 부문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연금”이라며 노후연금을 2% 올려주겠다는 공약을 강행했다. 청년의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스페인 정부는 노후연금을 계속 올려온 결과, 청년들은 나라를 버리기 시작했다. 사상 최악의 경기침체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은 계속되는 노인연금 증가로 노인부양 부담까지 져야 할 처지에 이르자 대규모 국외 이주를 감행하고 있다. 스페인 통계청은 2020년까지 해마다 50만 명의 스페인 젊은이들이 일거리를 찾아 해외로 빠져나갈 것으로 전망한다. 비슷한 경기침체와 노후연금 문제에 시달리는 포르투갈 역시 2011년 한 해에만 10만명이 국외로 빠져나갔다.

성진국의 나라 일본은 지금 섹스리스

성문화가 발달한 일본. 화려한 향락산업과 달리 일본 청년들 사이에는 섹스리스 풍조가 만연하다. 많은 일본 청년들은 실제 성경험은 해보지 못하고 자신만의 공간에 틀어박혀 성인비디오로 왜곡된 성의식을 체득한다. 2010년 기준 18~34세 남성 중 성경험이 없는 청년은 36.2%로, 청년 3명 중 한 명은 성경험이 전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젊은 층이 성관계를 기피하는 현상은 1990년 일본의 장기불황이 시작되면서 나타났다. 소득이 크게 낮아져 데이트 비용 없고 이성에 대한 자신감마저 사라진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쪽을 택했다. 이처럼 가족 없이 늙어가는 생애미혼이 급증하면서 일본 사회에서는 이들이 노후에 겪게 될 사회적, 경제적 고립 문제가 벌써부터 큰 걱정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 NHK는 혼자 죽는 사람이 늘고 있는 일본 사회의 그늘을 보여주는 <무연사회>라는 다큐멘터리를 기획해 자신의 죽음을 썩어가는 시체 냄새로 알리는 현실을 집중 조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죽어가는 경기를 살려보겠다며 남은 여력을 건설경기 부양책에 모조리 쏟아 부었다. 사회기반시설 투자가 지속적인 경기부양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나라는 경제발전 단계가 비교적 낮은 나라다. 이미 선진국인 일본은 사회기반시설이 포화상태여서 추가적인 사회간접투자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이득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런데도 일본 정치인들은 당장 자기들 임기 안에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 단기적 경기부양 효과가 큰 건설 투자에 매달렸다. 일본 경제의 미래는 아랑곳하지 않고 건설경기 부양 예산을 자신의 지역구로 끌어오기에만 급급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 장기요양보험에 해당하는 '개호보험'은 세금으로 충당되고 있으며 의료보험의 세대간 불균형도 심각하다. 후한 노인복지제도 덕분에 일본의 GDP 대비 국가부채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2013년 말 우리 돈으로 1경1000조원을 넘어섰다.

한국의 부동산, 신화에서 신기루로

한국의 부동산 불패 신화는 견고했다. 베이비붐 세대가 집을 매입했던 1980~2000년대 중반은 1인 당 국민소득이 세계 경제사에 유례 없을 정도로 빠르게 늘어난 시기였다. 이 때문에 베이비붐 세대는 자기 소득으로 감당하기 벅찬 비싼 집을 장만해도 나중에 소득이 늘어나니 큰 문제가 없었다. 집 값이 계속 뛰어올랐기에 일단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두는 것이 이득이었다. 강력한 계층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했던 부동산, 이 부동산은 지금 오히려 젊은 세대의 중산층 진입을 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

저자는 젊은 세대가 부동산을 보는 시각은 다르다고 말한다. 2012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집을 산 가구주의 나이는 평균 40.9세로 2010년보다 2.5세 높아졌다. 최초 주택구입 연령이 계속 올라간다는 것은 젊은 세대가 주택시장에서 배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높은 집값은 젊은 세대가 결혼을 포기하는 결정적 구실이 되고 있다. 그 여파로 출산율까지 낮아지며 생산가능인구 비중 감소로 한국 경제는 몸살을 앓고 있다.

이처럼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가 부동산 가격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언제나 집을 보유하고 있는 기성세대만을 대변한다. 대표적인 정책이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 지원정책’이다. 저자는 이 정책을 자칫 집값이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평생 무의미한 대출 원금을 갚느라 허덕이는 ‘하우스 푸어’를 양산하는 위험한 시도라고 지적한다. 게다가 정부는 집값이나 자신의 소득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빌렸다가 ‘하우스 푸어’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폐지했고 ’주택담보인정비율(LTV)'도 높여주었다. 이 정도면 기성세대가 보유한 기존 집값을 떠받치기 위해 젊은 세대가 평생 빚더미에 깔려 인생을 저당 잡히도록 유도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 후 하반기 부동산 시장 부양책을 내놨다. 내용의 핵심은 8월 1일부터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70%와 60%로 각각 확대한다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달 24일 열린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 모습. ⓒ 청와대 공식홈페이지

저자는 노후자금이 필요한 은퇴세대에게 집을 정리하지 않고 버티게끔 유도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모험이라고 설명한다. 만일 이런 조처로도 집값 하락을 막을 수 없으면 집 하나만 믿고 노후를 계획했던 대다수 베이비붐 세대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의 소득기반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빚을 내서 집을 사게 하는 것은 현재의 부동산 활성화를 위해 미래의 주택 수요 기반까지 흔드는 위험천만한 정책이다. 황금알을 낳을 거위가 될 젊은 세대의 배를 갈라 기성세대가 그 황금알을 미리 꺼내 쓰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정부 정책을 믿고 집을 산 젊은 세대는 평생의 소득을 집에 저당 잡히는 애꿎은 희생양이 돼 버린다.

청년의 소득기반 지켜주고 청년복지 확대해야

저자는 정부 부동산 정책의 목적이 부동산 값을 다시 끌어올리는 데 있는 것이라면 그 목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집값이 다시 오르려면 적어도 미래세대의 인구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그들의 소득이 지금의 집값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늘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임금까지 정체된다면 더 이상 집을 사줄 사람도, 살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주택시장의 수요기반이 무너지면 아무리 청년들을 빚더미로 몰아넣어도 집값 추락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부동산 가격 폭락을 근원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부동산을 사려는 실질수요를 회복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 청년들의 소득기반을 지켜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다. 젊은 세대의 경제적 기반이 무너진 상태에서 이런 정책으로 거둔 것은 모두 단기적 효과일 뿐이다.

저자가 제시한 대안은 미래세대 전체를 아우르는 정책을 시도하는 것이다. 젊은 세대가 경제적 기반을 탄탄히 다질 수 있게 돕는다면 그들은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될 것이고, 그들이 부를 축적할 기회를 갖게 되면 그게 바로 기성세대가 보유한 부동산 등 자산가격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다. 더불어 젊은 세대가 다시 결혼과 출산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미래세대의 인구가 늘어나면 한국 경제는 활력을 되찾고 재성장의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청년 일자리나 출산율 제고를 위한 복지지출은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미래세대를 살리고 기성세대의 노후에 필요한 복지지출을 지탱해나가는 데 가장 효율적이고 중요한 투자에 해당한다.

다가올 미래는 청년이 국가 최고의 자산이자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다. 우리 기성세대의 미래는 물론 안정된 노후도, 우리가 얻고자 하는 혜택들도 모두 이들에게 달려있다 하겠다. 지금 직면한 세대간 불평등을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재정적자가 더 크게 불어나 세대간 화합을 이끌어내기 어려워지기 전에, 합리적 균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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