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법안 발의 국회 정책간담회

귀여운 눈망울을 한 토끼가 목에 무거운 나무틀을 두른 채 괴로워한다. 벗으려고 발버둥 치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토끼는 마침내 틀에서 벗어난다. 토끼는 폴짝폴짝 뛰며 기뻐한다.

동물자유연대(상임대표 조희경)와 문정림 새누리당 국회의원(비례대표)이 11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법안 기념 정책간담회’를 열고 이런 퍼포먼스(연기)를 공연했다. 화장품의 안점막 테스트를 위해 고정틀에 갇힌 채 고통받다 동물실험 금지법안으로 풀려나게 된 토끼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법안(화장품법개정안)발의 기념 정책 간담회가 3월 11일 오전 11시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렸다. ⓒ 이정화

동물실험 거친 화장품 제조와 유통 금지 

지난 2001년 동물보호활동을 위해 결성된 시민단체 동물자유연대가 4년 동안 공들여 추진한 화장품 동물실험금지 입법 운동이 마침내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뤘다. 문 의원과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 임영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새누리당 간사 등 국회의원 22명이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원칙을 담은 ‘화장품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이날 법안발의 기념 정책간담회에는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정진경 이사, 대한화장품협회 이명규 전무이사 등 관련단체와 업계 인사 40여명이 참석해 관심을 보였다. 

대표 발의자인 문 의원은 "이번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우리나라는 동북아에서 화장품 동물실험금지를 법에 명문화한 최초의 국가가 된다“며 ”이 법이 동물의 생명과 권리를 존중하며 인간과 공존하는 동물복지의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개정안에는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이나 동물실험 원료로 제조·수입된 화장품의 유통과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국내에서는 마스카라(속눈썹화장품)와 샴푸, 향수, 면도크림 등 다양한 종류의 미용제품이 동물실험을 거쳐 생산되고 있다. 

▲ 새누리당 문정림 국회의원(비례대표)이 동물실험금지를 위한 화장품법 개정안 발의 취지 및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 김민지

개정안은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해 예외조항도 마련했다. 국민의 생명·보건과 관련해 위해성평가가 필요한 경우, 동물을 대체할 수 있는 시험법이 개발되지 않은 경우, 화장품 수출입조건으로 동물실험이 요구되는 경우 등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또 화장품업계가 개정법안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도록  2년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동물자유연대가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 입법운동을 추진해온 것은 잔인한 실험으로 희생되는 동물들을 방치해선 안 된다는 인식이 국내외에서 높아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안구자극 실험인 '드레이즈 테스트(Draize test)'는 토끼를 나무판에 고정시킨 채 눈에 화학물질을 주입한다. 이 실험은 출혈·염증·실명을 유발할 뿐 아니라 토끼가 고통에 몸부림치다 목뼈가 부러져 죽는 일도 있다. 동물자유연대 이형주(36) 정책국장은 “전세계적으로 연간 1억 마리 이상의 동물이 화장품 실험에 이용되고 국내에서만 200만 마리에 달하는 동물들이 희생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연간 1억 마리 이상 화장품 실험으로 고통  

이날 정책간담회가 열린 세미나실 입구에는 강보라(27·국민대 그린디자인 소속) 작가가 검은색 마스카라로 그린 작품 5점이 전시됐다. 다리를 다친 유기견을 키우며 동물보호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강 작가는 “마스카라를 사용할 때마다 죽어나가는 토끼들을, 쉽게 버려지는 파지 위에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토끼 눈에는 눈물샘이 없어 마스카라 실험에 많이 동원되는데, 유해성 평가를 위해 안구에 3000번씩 마스카라를 바르기 때문에 토끼는 고통 속에 죽어간다고 한다. 강 작가는 온전한 모양의 토끼가 점점 형체를 잃어가는 모습을 표현했다. 

▲ 강보라(27·국민대 그린디자인 소속) 작가가 폐마스카라로 그린 토끼 형상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화

주최측은 이번 개정안이 유럽연합(EU)의 화장품 동물실험 전면 금지 시행 2주년이 되는 3월 11일에 발의돼 더욱 의미가 깊다고 자평했다. 가수 배다해의 사회로 진행된 간담회에는 영국 전 하원의원이자 세계적인 동물실험 반대단체 크루얼티프리인터내셔널(Cruelty Free International)의 정책이사인 닉 팔머 박사가 참석해 한국이 화장품 동물실험을 금지하는 전세계적인 추세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크루얼티프리인터내셔널은 유럽에 동물실험 금지법이 도입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팔머 박사는 “단지 동물들을 덜 가학적인 방법으로 실험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실험을 중단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며 “이를 위해서는 국제적인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개정안에 대해 화장품 업계도 환영하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화장품협회 이명규 전무이사는 축사에서 “우리나라 화장품 산업이 동물보호에 적극 참여할 수 있어 기쁘다”며 “화장품을 개발하고 수출·수입 하는데 있어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해 합리적인 법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왼쪽부터 동물자유연대 이형주 정책국장, 새누리당 문정림 국회의원(비례대표), , 크루얼티 프리 인터내셔널(Cruelty Free International) 닉 팔머 정책이사가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 퍼포먼스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이정화 

간담회를 참관한 대학연합 동물보호동아리 ‘이리온’의 배규창(22·동국대 정치외교학) 회장은 “국회의원이 동물보호에 관심을 가지고 활발히 입법 활동을 추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뜻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추진한다면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며 관련 활동에 적극 참여할 의지를 밝혔다.

내달 국회 논의, 5~6월 중 법안 통과 기대 

동물실험 금지는 이미 세계적인 추세다. 유럽연합(EU)은 2004년부터 화장품 제품 자체에 대한 동물실험을 금지했고 2013년부터는 동물실험을 거친 원료의 사용도 금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4년부터 ‘화장품 독성시험 및 동물대체시험법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동물을 사용하지 않는 대체시험법 11종을 각 회원국이 화장품 심사 때 활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동물실험법을 대신해 화장품의 유해성 시험 등을 할 수 있는 대체시험법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예정이다. 살아 있는 토끼의 각막 대신 도축된 닭의 각막을 쓰는 안점막자극시험법은 이달 중 도입된다. 이에 앞서 지난해에는 토끼를 이용해 피부자극성을 평가하는 시험법 대신 쓰리디(3D)로 제작한 인체 피부모델을 쓰는 시험법이 도입되기도 했다. 

한편 동물자유연대 이형주 국장은 “오는 4월 국회에서 이 법안이 논의되면 5, 6월에는 통과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예외조항을 둔 합리적인 법안이라 관계부처인 식약처와 화장품업계에서도 큰 반대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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