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RS추리동호회원들의 불꽃 튀는 두뇌 대결

지난 2월 7일 오전 11시, 경기도 과천의 서울랜드 정문 매표소 앞 커피점에 두터운 외투를 차려 입은 사람들이 속속 도착했다. 회원수 2만5천명의 네이버카페 ‘알에스(RS)추리동호회’ 소속인 이들은 이날 2015년 첫 정기모임 겸 ‘제7대 셜록 홈즈를 찾아라’ 행사를 위해 모였다. 중고생부터 직장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회원 32명이 도착하자 주최측은 매표소 안쪽에 있는 중고품매장 아름다운가게의 실내 회의장으로 이들을 인솔했다.

▲ 서울랜드 입구에 참가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인사를 나누고 있다. ⓒ RS추리동호회

2만5천 회원 온라인모임의 ‘추리왕’ 찾기 대회

“여러분, RS추리동호회에서 RS의 의미가 뭐죠?”
“셜록 홈즈가 처음 등장한 소설의 제목은 뭘까요?”
“셜록 홈즈가 유일하게 호감을 느끼며 흥미를 보인 여자의 이름은요?”
 

▲ 본격적인 추리 퀴즈에 앞서 간단한 몸풀기 게임을 즐기는 회원들. ⓒ RS추리동호회

간단한 자기소개가 한 바퀴 돌아가고 도시락으로 식사를 마치자 ‘몸풀기 퀴즈’가 시작됐다. 문제가 나오기 무섭게 ‘리즈닝(Reasoning·추리)’ ‘주홍색 연구’ ‘아이린 애들러’ 등의 정답이 튀어 나왔다. 가벼운 문제 7개를 풀며 적당히 열기가 오른 참가자들은 곧 이어 팀별로, 혹은 개인별로 주어지는 퀴즈를 본격적으로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간단한 수학부터 모스부호(Morse Code)를 이용한 문제까지, 행사가 진행될수록 난이도가 점점 높아졌다. 임의로 나열한 5개의 숫자를 여러 경우의 수를 종합해 맞히는 ‘숫자야구게임’의 경우, 간신히 정답을 맞힌 회원들에게 허를 찌르는 문제가 추가로 주어졌다.

“지금부터 뒤돌아보지 말고 방금 앉았던 책상 위에 어떤 수상한 점이나 어떤 물건들이 있었는지 말씀하시면 됩니다.”

숫자에만 집중했던 참가자들은 당황하며 자신이 방금 지나온 책상의 주변 사물을 기억해내려 애썼다. 행사진행을 돕던 우한울(32·사업·경기도 안산시)씨는 “추리를 잘하려면 어떤 한 가지에 집중하면서 다른 세세한 부분도 놓치지 않는 능력이 필요하다”면서 “보통은 한 가지 일에 너무 몰두하면 주변을 잘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 숫자 야구 게임 이후 많은 참가자들을 당황케 했던 문제의 책상. ⓒ RS추리동호회

퍼즐(짜맞추기), 과학, 수학, 암호, 연상추리 등 다양한 문제를 접한 참가자 중에는 너무 어렵다고 한숨을 쉬는 사람도 있었다. 대학생 이예진(21·경기도 동두천시)씨는 암호판 퀴즈에 대해 “제가 풀기엔 너무 높은 난이도였다”고 말했다.

이날 대회는 총 7라운드의 개인별, 팀별 경합을 거친 후 점수가 가장 높은 4명을 선발하고 이 4명이 토너먼트(승자진출식) 경기를 치러 우승자를 뽑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실내 행사장 뿐 아니라 서울랜드 곳곳을 누비며 야외 미션(임무)도 해결해야 했다. 최종 승리는 첫 게임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대학생 손윤호(22·경기도 광명시)씨에게 돌아갔다. 손씨는 ‘제 7대 셜록 홈즈’라는 칭호와 함께 소정의 상금을 받았다. 그는 “상금 전부를 모임 뒤풀이에 내 놓겠다”고 말해 참가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손씨는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커뮤니티 특성상 음침한 사람들일 줄 알았는데, 막상 만나보니 다들 살갑고 재미있는 사람인 것 같다”고 만족감을 보였다. 대학생 김병철(25·충북 음성군)씨도 “평소 사람들과의 교류가 적은 편인데 관심사가 비슷해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들과 만나니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수학강사·해부학대학생 등 갖가지 사연의 탐정들

RS추리동호회는 지난 2006년 추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서로 문제를 내고 답을 맞히던 소모임에서 출발했다가 점점 회원이 늘어 매년 다채로운 행사를 여는 모임으로 성장했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4년 간 ‘네이버 대표 카페’로 선정되기도 했다. 10~50대의 다양한 나이대 회원들이 관찰력, 논리, 연상, 퍼즐, 암호, 미궁 등과 같은 장르별 퀴즈를 풀고 자신만의 추리를 회원들과 공유한다. 추리가 아니라도 각자의 이야기들을 카페에 올려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회원들은 점점 더 높은 수준의 추리를 풀어나가며 C-B-A-S클래스 순으로 승급 시험을 보기도 하는데, 가장 높은 등급인 S클래스에는 지금까지 7명 밖에 올라가지 못했다.

▲ 행사장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 이들은 셜록홈즈 모자를 쓰고 야외 미션을 수행했다. ⓒ RS추리동호회

자발적으로 참여한 회원이 대부분이지만 뛰어난 잠재력을 인정받아 카페에 초대 받은 회원도 있다. 대학생 이제성(23·서울 구로구)씨는 ‘네이버 지식인’의 범죄관련 질문에 3~4년 간 열심히 답변을 달다가 RS추리동호회에 초대 받았다고 한다. 이씨는 “어릴 적부터 책장에 있는 셜록 홈즈 소설책을 읽어보다가 추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의생명과학과의 해부학을 공부하면서 법의학자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대회 최연소 참가자인 중학생 박우빈(16·경기도 이천시)군은 ‘명탐정 코난’이라는 만화를 통해서 처음 추리를 접했다고 말했다. 박군은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추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즐겁다”면서 “학업에만 집중하는 것을 원하시는 부모님의 반대가 심하셔서 대회 참가를 허락 받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 카페장인 노영욱씨의 사인을 받고 즐거워하는 최연소 참가자 박우빈군. ⓒ RS추리동호회

현재 카페장을 맡고 있는 노영욱(27·수학강사·서울 양천구)씨는 “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국에서 활동할 만한 곳이 없다”며 “다 같이 모여 추리를 즐기면 재미있지 않을까 해서 시작된 모임”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추리에 대한 관심이 큰 사람들을 괴짜 취급하는 경우도 있지만 카페 회원 수가 날로 늘어나는 것을 보면 추리에 대한 인식이 점점 대중화되어 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추리에 열광하는 이유는 재미와 쾌감

카페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활동해 왔다는 김영환(29·하드웨어엔지니어·경기도 기흥구)씨는 이날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진행을 돕고 사진을 찍으며 내내 뛰다시피 했다. 행사가 끝나가던 오후 6시 무렵,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자기가 재미있으면 힘든 줄 모르죠”라고 답했다.

참가자 대부분은 추리 문제가 해결되면 “속이 시원하다”거나 “쾌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서진샘(22·공익근무요원)씨는 “추리를 하려면 논리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접목되는 부분이 많다”면서 “전문적으로 알아두면 분명 일상에서도 도움이 되는 분야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비상한 추리력을 갖춘 탐정’의 대명사가 된 셜록 홈즈는 영국작가 아서 코난 도일(1859~1930)이 창조한 인물이다. <셜록 홈즈> 시리즈는 1887년부터 1927년까지 60여 편이 출판됐고 전 세계에 번역 소개돼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특히 베네딕트 컴버배치(39)가 주연한 영국드라마 <셜록>이 최근 인기몰이를 하면서 국내에서도 셜록 홈즈 붐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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