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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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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못’이 오염된 지하수에 부린 요술
[청정에너지 현장을 가다] 적정기술 ③ 개발도상국 지원 현장
2014년 11월 17일 (월) 15:34:05 신은정 최지혜 기자 sej@danbinews.com

네팔과 국경을 이루는 인도 동부의 비하르(Bihar)주는 인도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의 하나다. 신분제도인 카스트가 남아있는 인도에서는 이 지역 출신을 ‘천한 일 하는 노동자’라는 멸시를 담아 ‘비하리’라고 부른다. 주민 대다수는 막노동이나 석회광산에서 돌 캐는 일로 생계를 잇는다.

지난 8월 11일 비하르의 주도(州都)인 파트나(Patna)에서 배를 타고 30분쯤 들어가는 낙타(Nakta)섬의 한 허름한 가정집. 인도 파트나 국립공과대학 한국국제협력센터소장이자 한동대 국제개발협력대학원 겸임교수인 이영길(52) 박사가 높이 60센티미터(cm), 지름 20cm 정도의 원형 플라스틱통에 펌프로 퍼 올린 지하수를 부었다. 흐를 때 맑아 보이던 지하수는 통에 담기니 황록색으로 보였고 몇 초 뒤 침전이 생기기 시작하자 붉은 색의 녹물이 됐다. 이 물에는 사약에 들어가는 유독물질인 비소가 들어있어, 그대로 마실 경우 장기 등 몸에 이상이 생긴다. 보통 이 물을 그대로 마시는 동네 주민들은 70% 가량이 피부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인도 빈곤층 생명 구하는 1만7천원짜리 정수기
 

   
▲ 비소제거 바이오샌드필터의 정수과정. (좌상) 펌프로 비소가 포함된 물을 퍼올려 (우상) 산화못이 담긴 정수기에 부으면 (좌하) 항상 축축하게 유지되는 5cm 두께의 미생물층을 지나 (우하) 깨끗해진 물이 관을 거쳐 배출된다. ⓒ 최지혜


“이제 드셔도 됩니다.”
 
플라스틱 통에서 불과 몇 초 만에 ‘바이오샌드필터’를 통과한 물이 통 아래쪽에 뚫은 구멍에 연결된 관을 거쳐 밖으로 나왔다. 눈에 띄게 맑아졌을 뿐 아니라 비소와 각종 세균, 기생충 등이 제거됐다. 이 교수는 바이오샌드필터가 물 속 바이러스의 80~90%, 세균의 95%를 제거하고 기생충은 완전히 없앤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정수된 물은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심하고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팀은 비소 제거를 위한 오랜 연구에도 해결책을 찾지 못한 현지 대학으로부터 적정기술 개발을 부탁받고 연구를 시작했다. 한국의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의 황철원 교수가 책임을 맡고, 한동대에서 학기마다 팀 단위로 학생들을 파트나에 파견해 연구를 진행했다. 지난 3년간 15명이 함께 개발한 비소제거 바이오샌드필터는 현지 대학의 수질연구소에서 성능검사를 해보니 물속 오염물질을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치보다 적게 남길 만큼 우수했다. 이 교수팀이 연구과정에서 비교해 본 미국 소이어(Sawyer)사의 정수필터는 세균과 미생물을 제거할 뿐 비소는 없애지 못했다고 한다.
 

   
▲ (좌) 연구과정에서 비교해본 미국 소이어사의 정수필터를 설명하는 이영길 교수. (우상) 수자원 연구센터의 현판. (우하) 바이오샌드필터가 설치된 인도 비하르주 낙타섬의 한 가정집. ⓒ 최지혜


현지에서 바이오샌드필터를 만드는 데 드는 돈은 1000~1500루피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만7000~2만5000원 정도다. 현재 스무 가정에 시험보급했는데, 한 가구 당 식구가 보통 10명 정도이니 약 50만원으로 최소 200명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한 셈이다. 아직은 시험단계라 플라스틱통을 썼지만 실제 보급용 제품을 만들 때는 인도 현지에서 흔히 쓰는 도자기로 만들어 제작비를 반으로 줄일 계획이라고 한다. 도자기로 만들면 물그릇이 한국의 옹기처럼 숨을 쉬어 물의 상태가 더 좋다는 설명이다.
 
바이오샌드필터는 만드는 재료도 간단하다. 필터 역할을 할 모래, 자갈, 못과 이것들을 담을 플라스틱통이나 도자기가 있으면 된다. 통에 모래, 자갈, 못을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고 15일 동안 통 안에 생겨나는 미생물층이 바싹 마르지 않을 정도로 매일 물을 부어주면 바이오샌드필터가 완성된다. 이 기간 동안 쇠못이 물을 만나 녹슨 산화못이 되고 산화못, 자갈, 모래 사이의 미생물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층을 만들어 물을 깨끗하게 거르는 역할을 해준다. 이 교수는 이 필터를 내년 1월 한동대가 주관하는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 유니트윈 프로그램인 ‘적정기술과 창업’ 세미나 후 싼 값에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니트윈은 선진국 대학이 개도국 대학과 연구기관을 지원해 국가 간 지식 격차를 줄이자는 목적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이다.
 
비하르의 시골처럼 낙후된 개발도상국 마을에서는 안심하고 마실 물과 문명의 이기를 이용할 전기가 부족하다는 게 공통적인 난제다. 우리나라 가정에서 흔히 쓰는 정수기를 지원한다고 해도 전기가 없어 사용할 수 없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인도 농촌지역의 전기공급률은 44%다. 정전이 일상이고 한여름에는 하루에 10여 회 이상 정전이 되기도 한다. 공급되는 전기의 질도 낮아 안정기(stabilizer) 없이 전기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 또한 힘들다. 특히 비하르는 전기가 거의 들어오지 않아 쇠똥을 손으로 반죽해 집 벽에 붙여 말렸다가 요리할 때 연료로 쓰는 집들이 많다. 이 교수팀이 개발한 바이오샌드필터는 에너지소비 없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개도국 낙후지역에 꼭 필요한 적정기술로 꼽힌다. 이 교수는 “필터를 사용해 본 마을 주민들이 건강과 위생에 도움이 된다며 좋아한다”고 전했다.
 
10대부터 중년까지 배우고 활용하려는 열기 후끈 
 

   
▲ 캄보디아 왕겨발전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적정기술아카데미 왕삼겹조 수강생들. ⓒ 신은정


“캄보디아 사람들이 전기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먼저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한예린·19·대원외고 3)

“현지에 계신 분이 ‘여건이 안 되어서 못 쓰고 있을 뿐이지 전기에 대한 실제 수요는 충분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진예린·28·공법학 전공)

“다들 왕겨(벼의 겉껍질)를 실제로 본 적은 있나요? 조상님들은 짚을 태울 때 불이 은근하게 오래 타오르라고 왕겨를 같이 넣어 태우기도 했어요. 요즘은 왕겨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나 모르겠네요. 어떤 사람들이 어디서 어떻게 구해서 쓰는지도 알아봤으면 해요.” (이경태·48·전자공학 전공)”
 
국제개발과 봉사에 관심이 많아 캄보디아에 다녀온 일이 있다는 고3 수험생과 전자공학, 공법학, 경영학 등을 전공하는 대학생과 대학원생 3명, 그리고 이들의 아버지뻘인 중년 신사가 책상에 둘러앉아 머리를 모았다. ‘캄보디아에서 왕겨를 활용해 어떻게 전기를 만들 것인지’를 두고 열띤 대화를 나눈 이들은 교수와 제자들이 아니라 적정기술을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이다.
 
지난 3월 15일 적정기술미래포럼 대표이자 한밭대학교 적정기술연구소장인 홍성욱(49) 교수가 서울 중앙대 공과대학에서 ‘제 7기 적정기술아카데미’의 첫 수업을 열었다. 28명의 수강생들은 왕겨 발전 외에도 각각 가전폐기물, 팜(Palm)농장/팜슈가(Palm Sugar), 봉제/건축 등 분야별로 5~6명씩 한 조를 이뤄 열띤 토론을 벌였다. 올해로 4년을 맞은 적정기술아카데미는 매년 상·하반기로 나눠 열리는데, 수강생들은 6주간 매주 토요일, 매회 90분의 강의와 60분의 팀프로젝트를 통해 적정기술 이론부터 제품, 디자인, 비즈니스, 국제개발협력 등에 대한 기초지식을 쌓는다. 이미 배출한 수료생만 200명이 넘는다. 대학생이 55%정도고 나머지는 직장인 등 일반인이다.
 
강의실에서 만난 디자이너 김지은(28·여)씨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톤시에서 대학을 다니며 건축과 도시계획을 전공했는데, 그동안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대부분 위에서 시키는 대로 정부나 고객의 입맛에 맞춰야 해 아쉬웠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다 대학시절 젊은이들이 의기투합해 물 관련 적정기술을 탄자니아에 보급하는 ‘컴포트 인 아쿠아(Comfort in Aqua)’프로젝트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고. 김씨는 적정기술을 매개로 함께 활동할 사람들을 찾고 싶어 이 아카데미에 등록했으며, 대나무를 활용한 인도의 적정건축기술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인도 나그푸르에 있는 대나무로 지은 주택. 인도 중부의 농촌 저소득 주민을 위한 집이다. 벽에 회반죽을 아직 칠하지 않은 모습이다. ⓒ 오픈아키텍처네트워크


적정건축기술은 현지에서 나는 재료를 최대한 사용하고, 전기나 연료가 필요 없는 장비를 써서 환경에 피해를 최소화하는 건축방식을 말한다. 대나무는 인도 북동부에서 전통건축에 흔하게 써 온 저렴한 재료다. 건축용으로 쓰이는 대나무는 콘크리트나 강철과 비슷한 기술적 성능을 낼 수 있는데도 탄소배출이 훨씬 적다는 게 강점. 지역 환경에 적합하면서도 혁신적인 건축기술을 공유하는 ’오픈아키텍처네트워크‘(Open Architecture Network)’는 인도 중부 마하라슈트라주의 나그푸르에서 농촌 저소득 주민을 위해 230만원의 비용으로 11평(약 33㎡) 규모의 대나무 집을 건축해 준 사례를 홈페이지에 올려두기도 했다.
 
성공적 확산 위해 비즈니스모델과 보급방안 고민해야

 

   
▲ 적정기술아카데미의 왕삼겹조가 분석한 캄보디아의 왕겨발전 보급 현황. ⓒ 적정기술아카데미 왕삼겹조

“캄보디아는 전기보급률이 25%로 전력망이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고 송전손실이 10~40%로 큽니다. 수도 프놈펜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전기가 보급되지 않아 비싼 민간 전기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전기는 정미소에서 주로 사용하는데 쌀이 주 수출상품인 캄보디아에서는 부산물인 왕겨가 저렴합니다. 전기 1킬로와트(kW)를 민간에서 구매하면 330원인데 왕겨발전으로 같은 양의 전기를 생산하면 16.5원 밖에 들지 않습니다.”
 
지난 4월 19일 적정기술아카데미 수료식을 찾은 <단비뉴스>는 각 조의 발표를 보며 6주 사이 훌쩍 쌓인 수강생들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중 왕겨발전을 맡은 ‘왕삼겹’조는 캄보디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바탐방에 왕겨발전이 도입됐지만 발전용량부족으로 필요한 전기의 50%만 보급하고 있고, 생산된 왕겨가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건설사의 트럭운송망을 왕겨수집에 이용하고, 왕겨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도록 정미소들과 계약도 맺겠다는 것이다. 왕겨발전으로 만들어낸 전기를 적정가격에 구매해주는 것, 정미소 이용비를 줄여주는 것, 무상으로 전기를 공급해 주는 것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제시됐다.
 
홍성욱 교수는 수강생들에게 “적정기술에 대한 기초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술개발 전에 비즈니스 모델을 세우고 보급 방안도 미리 생각해보도록 하라”고 주문했다. 공학도인 홍 교수 자신이 '캄보디아의 녹색성장 지원 프로그램'을 총괄하며 2012~2013년 직접 태양열 조리기 100대와 가정용 태양광시스템 60대를 제작해 현지 가정에 보급하면서 고민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 제7회 적정기술아카데미 수료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신은정

“기가 막힌 기술을 개발해 시제품을 만들어도 시장에 진출하면 결국은 단가싸움이거든요. 적정기술 적용의 핵심은 비즈니스 모델을 미리 세우는 것, 그리고 지속가능한 보급 방안을 마련하는 거예요.”

이런 과정을 거친 수료생들 중에는 실제로 창업을 하거나 제품을 발명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한 수료생은 발명진흥회의 제작비 후원을 받아 ‘온도차를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온도차 발전기’의 시제품을 만들기도 했다. 태양광으로 태양광 발전이 무한정 가능한 것처럼 온도차 발전기는 온도차이만 있으면 전기를 반영구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이렇게 적정기술을 배우고 활용하려는 노력이 확산되면 기후변화를 막는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이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아카데미 참여자들은 기대했다.
 


석유, 천연가스 등 주요 에너지원을 대부분 수입해 쓰는 ‘자원빈국’이면서도 에너지소비 증가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인 한국.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와 후쿠시마 사고 같은 핵재난을 막으려면 화석연료와 원전 의존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늘려야 하지만, 현실은 아직 거북이 걸음이다. 반면 독일 등 유럽 선진국에서는 햇빛, 바람, 지열 등 ‘토종 청정에너지원’을 이용한 전력생산이 이미 원전 비중을 넘어섰다. <단비뉴스>는 남보다 한발 앞서 신재생에너지를 도입한 국내의 현장들을 찾아 실태를 점검하면서,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와 대안을 함께 모색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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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리즈는 주한 영국대사관 기후변화 프로젝트의 취재지원을 받았습니다.

* 최지혜 기자는 ‘인도를 사랑하는 모임 포인디아(For India)’소속으로 인도 비하르주 낙타섬의 현장취재를 담당했습니다.

[신은정 기자]
단비뉴스 영상부, 환경팀 기자.
세상의 선한 변화를 이끄는 뉴스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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