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인터넷’

▲ 전성필

철학자 플라톤의 저서 <국가론>에는 마법 반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목동이었던 기게스(Gyges)가 어느 날 지진으로 생긴 동굴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거인의 시체를 발견한다. 죽은 거인의 손가락에는 반지가 있었다. 기게스는 이 반지를 자기 손가락에 꼈다. 이 반지는 특별한 힘을 갖고 있어 반지를 낀 사람을 보이지 않게 한다. 기게스는 반지의 힘을 이용해 도시를 약탈하고 왕궁으로 들어간다. 아무도 자신을 볼 수 없으니 자유를 만끽한다. 그는 왕비와 간통하고 왕을 암살해 스스로 왕이 된다.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된 그의 행동은 ‘폭력성’으로 점철된다. 플라톤은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필요가 없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드러냈다.

인터넷이 발달해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제 사람들이 ‘면대면’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가상 공간에서 손쉽게 정보를 얻고 자기 정보를 밝히지 않고도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말할 수 있는 공간이 확대된 것이다. 이 공간에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밝힐 의무가 없다. 인터넷의 익명성이 표현에 대한 억압을 없애주어 ‘자유’를 증진시켜줄 것이라는 기대도 가져다 주었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인터넷을 통한 ‘전자민주주의’ 또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을 낙관하게 되었다.

인터넷 기술의 발전은 누구나 정보를 쉽게 취득할 수 있고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도 정보를 새롭게 생산하고 가공하여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소통하며 의견을 주고받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정치, 사회적 이슈에 의견을 게시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구실까지 하면서 오프라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까지 언급된다. 인터넷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정치적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해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민주주의적 가치가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상황은 지금의 현실 정치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하버마스는 자본주의가 전개되면서 봉건적인 지배와 억압에 저항하고 시민의 자유로운 토론을 보장하는 의회민주주의가 제도화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의회가 점차 관료화하면서 시민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고 소수 엘리트의 이권만을 대변하게 되었다. 의회는 토론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공론장’ 기능을 상실했다. 현재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공론장의 주된 기능인 ‘언로의 기능’이 막혀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의 발달이 현대 사회에 막혀있는 언로를 뚫어주는 역할을 할 것인가?

인터넷이 자유와 참여를 증진시킬 것이라는 전망은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다. 자기 신상정보를 숨길 수 있다는 조건이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보장해준다. 사람들은 더 이상 ‘말’하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자기 정보가 노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생각이든 제한 없이 표현할 수 있다. 또한 정치 참여의 문턱을 낮춰 직접민주주의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는 여건이 된다. 인터넷의 발달은 ‘말의 길’을 열어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사람들이 언제나 ‘기게스의 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플라톤의 문제의식처럼 익명성은 사람들의 책임의식을 거세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권리를 증진하는 것과 동시에 타인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익명성의 뒤에 숨어 시민으로서 정당한 책임을 갖지 않는다면 민주주의의 가치를 오히려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익명성의 역설은 인터넷 공간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의 요인으로 지적된다. 인신공격성 ‘악플’을 달거나 특정 정치∙사회 이슈에 의미가 왜곡되고 오염된 언어를 사용해 여론을 호도하는 모습들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과연 책임 없는 행동이 무제한 보장될 때, 인터넷이 새로운 공론장 구실을 수행하고 나아가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터넷은 일반시민이 일상 언어로 정치적 의사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현대 민주주의 발전에 큰 의미를 지닌다. 하버마스가 말했듯이 ‘공론장’은 소수의 참여와 언어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반시민이 참여하고 그들이 사용하는 일상 언어로 이루어진 의사결정의 공간이 공론장이다. 인터넷은 투표권 행사만으로 제한되는 의회민주주의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준다. 사람들이 말을 나누고 가치를 교환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의 사회 참여를 증진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인터넷 자체는 그 무엇도 차별하지 않는다. 인터넷 공간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을 지향한다. 중요한 것은 ‘기게스의 반지’를 쥐고 있는 시민의 역할이다. 인터넷이라는 공간도 하나의 시민사회라는 인식이 마련되어야 한다. 시민의 권리와 책임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민주주의를 만들어왔듯이, 인터넷이 시민사회의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시민의 각성이 필요하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제4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에서 우수작으로 뽑힌 이 글을 쓴 이는 한양대 사회학과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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