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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배운 기술, 캄보디아를 밝히다
[청정에너지 현장을 가다] 적정기술 ② 에너지팜
2014년 11월 15일 (토) 06:55:05 이문예 구은모 조수진 기자 moonye23@naver.com

“햇빛조리기의 큰 버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이 정도 크기면 1리터(ℓ)의 물을 끓이는 데 약 6분 정도면 됩니다.”

대형 차고문과 같은 셔터를 열고 들어서자 왼편으로 접시안테나처럼 생긴 커다란 햇빛반사판이 창고 천장에 닿을 듯 서 있었다. ‘쉐플러 리플렉터(Scheffler Reflector)’라 불리는 설비로, 태양의 이동경로를 추적해 열을 한곳으로 집중시켜 음식을 조리하는 기구다. 약 250장의 오목거울을 철사로 일일이 이어 붙여 만든 이 설비의 크기는 약 10제곱미터(㎡)다.

 

   
▲ (주)에너지팜 창고 왼편에는 10제곱미터(m²) 크기의 태양열 조리기인 쉐플러 리플렉터가 설치돼 있다. ⓒ 송두리

단순한 기술로 햇빛조리기와 자전거발전기 등 생산

<단비뉴스>가 지난 6월 25일 찾아간 경기도 부천시 원미동의 ㈜에너지팜 본사 창고에는 다양한 크기의 햇빛조리기, 페달을 밟아 전기를 만드는 자전거발전기, 소형 태양광발전기 등 적정기술을 활용한 기기와 공구들이 가득했다. 철제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10평(약 33㎡) 남짓한 컨테이너 박스 사무실이 나왔다.

“더우시죠? 그래도 여기선 어쩔 수 없네요. 시원한 물 드시면서 좀 참으세요. 사실 저 정수기도 부끄러워요.”
 
낮 최고기온 27도로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를 만큼 더운 날씨였지만 사무실에는 에어컨도 없이 오래된 선풍기 한 대만 돌아가고 있었다. 전등과 컴퓨터, 정수기 외엔 전자제품이 눈에 띄지 않았다. 에너지팜 김대규(39) 대표는 “편의를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말처럼, 적정기술은 에너지 등 자원의 과소비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됐다. 1960년대 영국 경제학자 슈마허(E. F. Schumacher)는 선진국들의 대규모 원조사업이 개발도상국의 인적·물적 자원을 착취하고 환경을 훼손해 삶의 질을 오히려 황폐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자본이 투입된 거대기술 대신 원시기술에서 조금 나아간 중간기술(Intermediate Technology)이 개도국의 삶의 질 향상에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개념이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로 불리면서  ‘공동체의 정치적, 문화적, 환경적 조건을 고려해 현지에서 지속적인 생산과 소비가 가능하도록 하는 자립기술’로 정의됐다. 국내에서는 2006년 대안기술센터가 문을 연 것을 시작으로, 대학 내 연구소들과 민간기관들이 적정기술의 개발과 보급에 나서고 있다.

 

   
▲ (주)에너지팜 김대규 대표는 "적정기술'이 '반성'에서 시작했다"고 말한다. ⓒ 송두리

완제품 대신 ‘만드는 법’ 알려주면 일자리도 창출 
 
그 중에서도 에너지팜은 적정기술을 제3세계에 보급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김대규 대표는 청년시절 네팔을 여행하다가 자전거발전기로 빵을 만들어 동네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할아버지를 보고 감명을 받아 적정기술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지난 2008년 1인 기업으로 에너지팜을 만든 김 대표는 자전거발전기, 소형 풍력발전기, 태양열조리기 등을 만들어 국내에서 대여·판매했다. 1년 만에 약 2천만원 정도의 수익이 생기자 ‘이 자금으로 어떤 일을 하는 게 가치가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러다 오랜 친구이자 선교단체 ‘캄보디아의 이웃’ 대표인 김기대씨와 의논했다. 캄보디아에서 주민들에게 농업 등 기술을 가르치는 ‘이삭학교’를 운영하는 김 대표는 학생 중 특히 영리했던 싸룬(34)을 김대규 대표에게 소개했다.

김 대표는 싸룬을 한국으로 불러들여 태양광발전기 만드는 법을 알려줬다. 태양광발전기는 제작방법이 비교적 간단해서 개인이 만든 것과 전문기업 제품 간에 성능 차이가 거의 없다고 한다. 싸룬은 고향으로 돌아간 뒤 이 기술을 활용해 기숙사에 쪽등 2개를 설치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느꼈던 ‘가슴 떨리는 감동’이 제3세계 지원사업의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 적정기술 교육사업에 쓰이는 자전거 발전기. ⓒ 송두리

“그때 깨달았어요. 태양광발전 가로등 열 개를 제3세계까지 운반해서 설치해주는 것보다 현지 사람들에게 가로등 하나라도 제대로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더욱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김 대표는 적정기술을 보급할 때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고 강조했다. 완제품을 지원하면 기능이나 디자인 등 완성도는 더 뛰어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원자재, 인건비 등이 현지(개발도상국)에 비해 훨씬 비싸고 운반과정에서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무상으로 지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또 설비가 고장 나 특정 부품이 필요할 경우, 비싼 부품을 다시 보내줘야 하는 등 관리 비용도 많이 든다. 반면 기술을 가르쳐 주면 물가가 싼 현지의 원자재를 쓸 수 있어 제작비가 훨씬 저렴하고, 설비를 잘 아는 현지인이 있으니 유지·관리도 수월하다. 게다가 현지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

 

   
▲ 에너지팜 양상철 팀장이 태양열 조리기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 송두리

에너지팜은 싸룬과의 인연을 계기로 캄보디아에 적정기술을 이전하는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2011년 현지인과 함께 3대의 태양열조리기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태양열 조리기 20대를 현지에서 생산했다. 이삭학교 학생들과는 태양광발전설비를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 그 결과 지난해 6월에는 이삭학교 학생들끼리 4킬로와트(kW)용량의 태양광 발전설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현재 이 전력은 학생들이 일주일에 두시간씩 40대의 컴퓨터를 사용하는 데 쓰인다고 한다. 
 
제3세계 지원 이어가려면 관련 정부 사업 확대 필요 

에너지팜이 요즘 개발하고 있는 상품은 ‘네스팜(Nesfarm)'이라고 하는, 라면상자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태양광발전기 겸 저장장치다. 박스 외부에는 태양광을 모으는 집광판이 부착돼 있고, 안에는 배터리가 있어 낮 시간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를 저장한다. 박스 겉면에는 다양한 종류의 플러그 투입구가 있어 선풍기나 조명 등 전자제품을 연결할 수 있다. 11월 현재 기술개발은 완료됐고, 충전시간과 전자제품 사용시간 등 정확한 성능 측정을 위해 시험작동을 하고 있다고 김 대표는 밝혔다.

 

   
▲ 네스팜(Nesfarm) (위)과 시험결과지(아래). 가정용으로 보급할 예정인 네스팜은 11월 현재 개발 완료했으며 정확한 성능을 도출하기 위해 시험결과를 분석 중이다. ⓒ 송두리

에너지팜이 제3세계 지원사업을 이어가는 데 있어 가장 큰 고민은 자금이다. 김 대표는 “꾸준한 지원활동을 위해 (국내에서)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있긴 하지만 수익이 크지 않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기술이전사업의 특성상 초반에 많은 자금이 필요한 데 수익성과 회수가능성이 낮아 투자해줄 기업이나 대출해줄 금융사가 없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결국 정부의 해외지원사업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해 자금을 지원받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며 정부의 관련사업 확대를 기대했다.

적정기술은 현재 에너지, 농업, 수자원, 보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공공부문의 경우 외교부, 한국국제협력단(KOICA), 기획재정부, 수출입은행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특허청 지식나눔사업부, 미래창조과학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환경부 등에서 다양한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이 중 코이카는 공모방식으로 사업계획서를 받고 타당성을 따져 지원하는데, ‘대한민국 적정기술 1호’로 불리는 국제구호단체 굿네이버스의 ‘지-세이버’ 사업이 대표적 예다. 지-세이버는 난로 위에 붙여 열효율을 높일 수 있는 축열기(열 흡수장치)로,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겨울을 전통 천막집인 ‘게르(Ger)’와 난로로 버텨야 하는 몽골 저소득층 가정의 연료 사용량을 40% 이상 낮춰주고 있다고 한다.

   
▲ 몽골족의 이동식 집 '게르'. 이동할 때 쉽게 분해하고 조립할 수 있도록 버들가지로 벽과 지붕의 골조를 짜고 그 위에 펠트를 덮어씌운다. ⓒ 굿네이버스 공식홈페이지

특허청은 2012년부터 한국발명진흥회 등 전문기관과 함께 매년 2개 이상의 적정기술을 개발·보급하고 있는데, 국제 비정부기구(NGO)인 해비타트와 함께 단열성을 높인 대나무주택 건축기술을 개발해 지난해 5월 네팔 떠라이 지역에 보급했다. 또 지난 1월에는 국내 오일추출기전문회사인 씽크탑알앤디(THINKTOP R&D)와 공동으로 아로마테라피에 많이 쓰이는 일랑일랑오일 추출기를 개발·보급해 필리핀 딸락주 아나오시 18개 마을의 농가소득 증대를 기대하고 있다. 특허청은 올해 중 가나와 베트남에도 적정기술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윤제용(53) 교수는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됐다”며 “(적정기술 등을 통해) 세계사적으로 특별한 경험을 가진 대한민국의 원조를 받는다는 것은 수혜국에 ‘우리도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문가들은 적정기술 지원사업이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개선에 도움이 되고 장기적으로는 한국 기업의 해외진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공적개발원조(ODA) 등 우리나라의 해외지원사업 시스템에 개선해야 할 부분도 없지 않다. 지원사업의 규모는 꾸준히 확대되고 있지만 이에 걸맞은 사후 사업평가관리체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윤 교수는 “수혜국의 필요사항을 정확히 파악해 사업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공적개발원조의 지원기관이 통합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밭대 홍성욱(49) 적정기술연구소장은 “영국은 공적개발원조를 국제개발부(DFID)가 총괄하는데 한국은 지원단체가 20여개로 나뉘어 불편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반면 국토환경연구소의 최동진 박사는 “특성이 다른 여러 단체에서 주관하고 있는 것들을 통합하는 것은 힘들다고 본다”며 “적정기술 단체들끼리의 교류를 활성화할 고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


석유, 천연가스 등 주요 에너지원을 대부분 수입해 쓰는 ‘자원빈국’이면서도 에너지소비 증가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인 한국.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와 후쿠시마 사고 같은 핵재난을 막으려면 화석연료와 원전 의존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늘려야 하지만, 현실은 아직 거북이 걸음이다. 반면 독일 등 유럽 선진국에서는 햇빛, 바람, 지열 등 ‘토종 청정에너지원’을 이용한 전력생산이 이미 원전 비중을 넘어섰다. <단비뉴스>는 남보다 한발 앞서 신재생에너지를 도입한 국내의 현장들을 찾아 실태를 점검하면서,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와 대안을 함께 모색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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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리즈는 주한 영국대사관 기후변화 프로젝트의 취재지원을 받았습니다.

[이문예 기자]
단비뉴스 환경팀장.
당신과 걷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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