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에너지 현장을 가다] 적정기술 ① 마을기술센터 핸즈

“햇빛온풍기가 있으면 기름이나 전기가 없어도 난방이 된대요. 따뜻한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찬 공기는 아래로 내려가는 자연 원리를 그대로 이용하는 거예요.”

충북 제천시 강제동의 다솜학교에서 지난 5월 9일 만난 최강주(17·전기과)군은 방과후 교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만들고 있던 햇빛온풍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학교법인 한국폴리텍에서 운영하는 기숙형 대안학교인 다솜학교는 청소년 교육 지원 사업의 일환인 ‘삼성꿈배움터 교육지원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지난 4월부터 방과후 기술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3년간 한 사람이 한 가지 기술을 익힌다는 목표로 2주에 한 번 운영되는 이 과정에서 최군 등 20여명의 학생들은 ‘적정기술’을 선택해 배우고 있다. 마을기술센터핸즈(handz)가 맡아 가르치는 이 수업은 ‘해당 지역에 적합한 단순기술과 최소 자원을 활용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삶을 추구한다’는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의 정신을 바탕으로 실제 응용 가능한 기기제작법 등을 배우는 것이다.

 

▲ 햇빛온풍기를 만들고 있는 다솜학교 학생들과 선생님(위). 이재열 소장(오른쪽)이 다솜학교 학생들에게 햇빛온풍기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아래).ⓒ 송두리

교실에서 배우는 생활밀착형 친환경 기술

<단비뉴스>가 찾아간 날 학생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한 팀은 태양열을 모으는 집열판을,  다른 한 팀은 컨트롤러 박스를 만들었다. 이 박스는 실내 온도가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온풍기를 작동시키는 역할을 한다. 햇빛온풍기를 설치하면 태양열만으로 실내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건축소재나 건물구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82.6제곱미터(㎡), 약 25평 규모의 가정집을 난방하기 위해 대략 16.5㎡(약 5평) 크기의 햇빛온풍기가 필요하다.

핸즈의 이재열(48) 연구소장은 온풍기 작동원리와 제작방법을 설명한 뒤 학생들이 직접 만들도록 한쪽으로 물러나 있었다. 학생들은 작업 중간 중간 궁금한 점을 질문한 뒤,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오케이’를 외치며 작업대로 달려들었다. 못이 삐져나가고 도구가 망가져도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집열판을 만들던 김영걸(19)군은 이 기술을 나중에 꼭 써먹고 싶다고 말했다.

“햇빛건조기와 햇빛온풍기는 만들기도 쉽고 생활에 바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나중에 제 집을 지을 때 더 크고 더 좋게 꼭 다시 만들어보고 싶어요.”

 

▲ 서울 영등포구 하자센터에서 만난 핸즈의 이재열 대표(왼쪽)와 정해원씨(오른쪽). "적정기술은 운동이자 철학"이라고 설명했다. ⓒ 송두리

사회적기업인 핸즈는 적정기술을 교육·연구·컨설팅하는 것이 주 사업목적이다. 핸즈적정기술협동조합을 운영하던 이 소장과 ‘청년사회적기업육성사업 자연이(E)’의 정재원(32) 대표, 대안학교에서 과학교사를 했던 정해원(41·기획팀장) 씨가 뜻을 모아 지난 1월 설립했다. 아직까지 다수 일반인에겐 적정기술의 개념조차 생소한 우리나라에서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을 교육하고 보급할 필요성이 크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로 마을공동체나 학교에서 실습위주의 교육을 통해 실생활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적정기술을 보급하고 있다.

다솜학교에서는 햇빛온풍기와 햇빛건조기 등의 제작기법을 가르치고 있다. 햇빛온풍기는 실내의 차가운 공기가 하단부의 공기투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간 뒤 햇빛으로 뜨거워진 집열판(양철판)의 열기를 빼앗아 고온상태가 된 후 상단 공기배출구를 통해 나옴으로써 실내 온도는 높이는 구조다. 햇빛온풍기는 한번 설치하면 거의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물론 햇빛이 비칠 때만 작동하기 때문에 추운 겨울밤 등에는 보조난방기구가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자연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하지 않고 그대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태양광, 태양열발전기 보다 환경친화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원리가 단순하기 때문에 사용자가 기계를 직접 만들어 쓸 수 있는 ‘자립기술’이란 점에서 더욱 매력적이다. 적정기술은 환경파괴와 지역별 경제격차 등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지속가능성은 물론 자립성도 강조하고 있다.

 

▲ 햇빛온풍기는 온도가 높아지면 공기가 팽창해 상승하고 온도가 낮아지면 하강하는 대류현상을 이용한다. ⓒ 자립하는 삶을 만드는 적정기술센터

햇빛건조기는 나물을 말리거나 달걀을 익히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데, 원리는 햇빛온풍기와 같다. 집열판 하단부로 차가운 외부 공기가 들어오면 집열판에서 열기가 공급되고, 여기서 따뜻해진 공기는 위로 올라가면서 건조시킬 대상의 수분을 빼앗은 뒤 환기구를 통해 배출된다. 달걀을 익히는데 3시간이 걸리는 등 효율성이 높지 않다는 단점이 있지만 가정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여지가 있다.

이런 적정기술은 특허 등을 통해 독점이윤을 취하는 대신 정보를 적극 공개해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게 옹호자들의 신념이다. 핸즈가 특정제품을 상품화하는 대신 교육사업·워크숍 모델을 고집하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한다. 최근에는 혁신학교·대안학교 등에서 적정기술을 교육할 기회도 조금씩 늘고 있다. 정해원 기획팀장은 “기존의 과학교육은 실용성이 없었지만 자전거로 전기를 만들고 햇빛으로 달걀을 익혀먹는 적정기술은 어느 정도 실용성을 갖춘 만큼 과학교육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재열 소장은 “학생들을 만날 때가 가장 좋다”며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전달했다면 나중에라도 필요할 때 쉽게 꺼내볼 수 있을 것이고, 진정한 변화는 그 친구들을 통해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 하자센터에 설치된 햇빛건조기. 상자 안에 손을 넣어보니 달걀이 익을 정도로 온도가 높은 것을 알 수 있었다. ⓒ 이문예

온라인 커뮤니티와 체험공간도 인기

최근 들어 적정기술에 관심을 갖는 일반인들도 많이 늘고 있다. 검색포털 네이버(Naver)와 다음(Daum)에는 각각 70여개, 30여개 정도의 관련 카페가 구성되어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국경없는과학기술자회’와 같은 전문가들의 모임이 만들어지고 대학 내 적정기술 관련 기관과 프로그램들이 생겨나면서 대중의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다.

네이버의 경우 지난 2010년 3월에 개설돼 3만8천여 회원이 가입한 ‘자립하는 삶을 만드는 적정기술센터’가 가장 큰 커뮤니티다. 마을기술센터핸즈가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적정기술을 소개하고 설계도까지 공유하고 있어 누구나 쉽게 햇빛온풍기, 음식물건조기 등을 만들어 볼 수 있다. 또 2008년 개설된 ‘흙부대 생활기술 네트워크’에는 2만8천여명이 가입했는데 태양열조리기제작, 빗물을 모아 텃밭에 공급하는 방법, 모터를 돌리지 않고도 물을 끌어올리는 ‘비전력펌프’ 제작 등 다양한 적정기술 정보를 활발히 나누고 있다.

 

▲ 하자센터 내 설치된 빗물저장소(왼쪽)와 햇빛온풍기(오른쪽). ⓒ 송두리

삶의 자립도 높이고 공동체 회복 효과도

“스스로 자립하기 위한 여러 기술을 배우고 익혀 이웃과 나누는 것,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 그게 바로 적정기술이라고 생각해요.”

조혜경(43)씨는 충남 아산에서 협동조합을 조직해 활동하고 있는 ‘적정기술 전도사’다. 그는 3년 전부터 초록공방이라는 이름으로 소규모 활동을 해오다 지난해 초 천안, 아산지역의 동료 6명과 의기투합해 ‘작은손 적정기술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이 협동조합은 온·오프라인 모임과 교육사업을 통해 태양열온풍기, 태양열온수기, 햇빛건조기, 비전력펌프, 천연페인트 등 다양한 적정기술들을 지역사회에 전파하고 있다.

조씨는 주로 천연페인트 제조기술을 가르친다. 석유를 원료로 한 비싼 페인트 대신 우유, 밀가루, 식초 등 천연재료로 환경과 몸에 해롭지 않은 페인트를 만들어 목공예나 인테리어 등에 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유페인트는 우유를 중탕해서 식초로 응고시킨 후 석회나 아마씨기름을 섞고 안료를 혼합해 색을 내는 것인데 만드는 과정도 번거롭지 않고 색깔도 예쁘게 나와 인기가 높다고 한다. 조씨는 “일반페인트 제조과정에서 사용되는 수지 등 석유 추출물질들을 쓰지 않고도 페인트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지속가능한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 우유로 만든 천연페인트. 석유를 원료로 한 비싼 페인트 대신 우유, 밀가루, 식초 등 천연재료로 환경과 몸에 해롭지 않은 페인트를 만들 수 있다. ⓒ 조혜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전력소비량은 2011년 기준으로 10.2메가와트시(MWh)로, OECD의 유럽회원국 평균인 6.1MWh의 1.7배나 된다. 이런 에너지 다소비구조를 지탱하기 위한 화력발전으로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이 가속화하고 원자력발전으로 대형재난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이재열 소장 등 적정기술 옹호자들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어 쓰면서 삶의 자립성을 추구하면 환경오염과 재난의 위협을 덜 수 있을 뿐 아니라 공동체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물질문명에 기대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살 때, 사회가 설정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자연인으로서 진정한 의미의 능력을 계발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삶의 자립도를 높이는 적정기술이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혼자가 아닌 친구, 이웃으로 확산될 때 마을과 공동체 회복에도 기여할 수 있고요. 단순히 기술에 머문다면 적정기술이 아닙니다. 적정기술은 사회운동이자 철학입니다.”


석유, 천연가스 등 주요 에너지원을 대부분 수입해 쓰는 ‘자원빈국’이면서도 에너지소비 증가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인 한국.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와 후쿠시마 사고 같은 핵재난을 막으려면 화석연료와 원전 의존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늘려야 하지만, 현실은 아직 거북이 걸음이다. 반면 독일 등 유럽 선진국에서는 햇빛, 바람, 지열 등 ‘토종 청정에너지원’을 이용한 전력생산이 이미 원전 비중을 넘어섰다. <단비뉴스>는 남보다 한발 앞서 신재생에너지를 도입한 국내의 현장들을 찾아 실태를 점검하면서,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와 대안을 함께 모색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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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리즈는 주한 영국대사관 기후변화 프로젝트의 취재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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