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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영화제엔 있고 BIFF엔 없는 것
[지역∙농업이슈] 부산국제영화제는 지역성∙국제성을 얼마나 확보했나
2014년 10월 17일 (금) 11:19:33 박동국 이성훈 기자 journalist69@naver.com

이맘때 영화팬 중에는 남포동에서 열리던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떠올리는 이가 많다. 남포동은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와 향수를 자극한다. '영화제'를 보려고 방문한 인파(人波)가 그야말로 ‘사람의 물결’을 이뤄 골목골목 밀려들고 비좁은 BIFF 광장은 북새통을 이뤘다. 관객들은 극장가 매표소 앞 긴 줄에 서있으면서도 지루한 줄 몰랐고, 초가을의 쌀쌀함은 어묵과 팥죽으로 달랬다. 

남포동의 밤거리는 특히 색다른 정취를 맛보게 했다. 인근 자갈치시장은 심야 영화를 본 관객들이 극장을 빠져 나와 몰려드는 곳이었다. '잡숫고 가이소-' 라며 은근히 손님을 청하는 건 자갈치 시장의 토속적 풍경이다. 운 좋으면 배우나 감독과 소주잔을 부딪힐 수도 있던 날들은 이제 추억 속의 빛 바랜 풍경이 됐다.

‘기억의 잔상’으로 더욱 쓸쓸해진 남포동 영화거리

영화제가 한창인 10일 들린 남포동에서는 이런 소박한 풍경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좋던 시절 인산인해를 이루던 광장은 기억의 잔상이 남은 탓인가 더욱 한산해 보였다. 이른바 '이승기 호떡'으로 인기를 끌던 '씨앗 호떡' 장수들도 종적을 감췄다. 2007년부터 BIFF의 중심이 해운대로 옮겨간 때문이다. 남포동의 영화제 명맥은 거의 다 끊겼다.

   
▲ 10일 남포동 BIFF 광장은 영화제가 한창인데도 한산했다. ⓒ 박동국

해운대가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수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영화의 전당’을 갖춰 BIFF의 본거지로 삼기에 적합하다는 이유였다. 해운대로 옮기니 상영 환경은 쾌적해졌고 행사 진행도 매끄러워졌다. 그런데 부산국제영화제 내내 '부산'이 없어진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영화제에서 '부산'이라는 향수가 사라져 아쉬워하는 건 영화팬뿐만이 아니다. 남포동을 지키는 상인들도 관객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울상 짓고 있다. '영화제 특수'가 사라진 탓이다. 매출은 ‘반 토막’ 났고, 몇몇 상점은 문을 닫았다.

"예전에 여기서 (영화제) 할 때는 복작복작했는데, 매출이 반도 더 줄었지."

과거 영화팬들이 자주 찾던 깡통시장에서 30년간 부산어묵 장사를 해온 이순덕(68)씨는 영화제 관람객들이 해운대로 쏠리며 매출이 줄었다고 푸념했다. 복작거리던 시장통이 이제는 한산해졌다. 노점 가판대 앞에 앉아있던 김덕산(70)씨는 “예전 한창 잘 나갈 때에 견주면 남포동은 죽은 거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 남포동 주변 상인들은 영화제 중심이 해운대로 간 뒤로 '대목'이 없어졌다고 아쉬워한다. ⓒ 박동국

"그때는 영화제 하면 특수를 봤는데 지금은 해운대로 넘어가면서 그 효과가 전혀 없어요. 사람들 참 많이 왔는데 지금은 유동인구가 반은 줄었다고 봐야지."

남포동과 맞닿은 보수동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책방골목으로 유명한 보수동 상인들에게 과거 부산국제영화제는 대목이었다. 평소보다 3배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책을 샀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들린 책방골목에는 영화제가 한창인데도 사람 서넛이 두리번거리는 게 고작이었다. 청산서적 김순년(68)씨는 "이젠 부산국제영화제 대목은 없다고 봐야 된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 좋은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관람객이 해운대로 빠져버리니 '영화제 대박'도 옛말이 됐다는 것이다.

‘해운대는 비싸다’…’눈앞의 이익’ 추구가 선입견 심어줘

반대로 해운대 상인들 표정은 밝았다. 영화제 덕분에 업종에 따라 매출이 많게는 5배 가까이 올랐기 때문이다. 해변의 고급 호텔은 모두 예약됐고, 주변 상인들은 여름 휴가철이 끝나면 썰렁했는데 영화제 덕분에 성수기가 두 번으로 늘었다며 신바람을 냈다. 해운대 해물 전문식당 주인 이진숙(54)씨는 “영화제 덕분에 매출이 서너 배 늘어 살맛이 난다”고 말했다.

   
▲ 폐막식을 하루 앞 둔 지난 10일 BIFF 해운대 행사장에는 많은 인파가 몰렸다. ⓒ 이성훈

BIFF가 해운대 프리미엄과 고급화를 앞세우면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영화는 해운대에서 보고, 숙식은 다른 지역에서 저렴하게 해결하는 소비 행태가 생겨난 것이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상인은 “매출에 목숨 건 장사들이 욕심을 내 ‘바가지 장사’를 한 탓에 올해는 해운대 소비가 줄었다”고 말했다.

“작년에 민박이 10만원이었어요. 거의 3배 바가지예요. 그 때문에 올해는 사람이 줄어 5만원만 받는데도 방이 텅텅 빕니다.”

‘바가지 상혼’이 손님들에게 ‘해운대는 비싸다’는 선입견을 심어줘 발길을 다른 데로 돌리게 했다는 것이다.

‘부산의 정취’가 사라져 아쉽다는 방문객도 있었다. 7년 만에 BIFF를 다시 찾았다는 정의석(30∙서울시 강서구)씨는 투박한 부산 풍경을 기대했지만 막상 마천루와 외국 프랜차이즈 커피점이 즐비한 거리를 보고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예전만 해도 남포동이 영화제의 중심이고 해운대는 보조행사만 하는 수준이었는데 올해는 모조리 해운대로 옮겨버려서 ‘부산 느낌’이 없네요.”

‘해운대영화제’가 되고만 ‘부산’국제영화제

해운대로 옮긴 BIFF의 외형은 화려해졌지만 세심한 배려는 놓치고 있다. 지역 주민 김은주(51∙부산 해운대구 우동)씨는 중장년층을 배려하지 않는 영화제 행사에 불만을 토로했다. 영화제 행사 중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인증사진을 올리면 경품을 받을 수 있었지만 김씨는 SNS 사용법을 몰라 응모조차 할 수 없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스마트폰도 제대로 쓸 줄 모르잖아요. 경품을 준다고 해서 줄을 서있다가 망신만 당했어요. 복잡한 SNS를 써서 어떻게 참여하란 겁니까? 기분 나빠 다시 오기도 싫었지만 동네가 떠들썩하니 다시 나와봤어요. 막상 지역 주민에겐 영화제가 겉도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 행사장에는 맥주, 통신사 등 상업용 판촉 부스로 가득했다. ⓒ 이성훈

‘국제’영화제란 명칭을 쓰고 있지만 외국인에 대한 배려도 소홀했다. 3년째 BIFF를 찾아온 영화팬 와타나베(53∙일본)씨는 티켓 예매나 쇼핑을 하는 데 진땀을 뺐다며 서투른 한국말과 영어를 섞어가며 불만을 털어놨다.

"행사 공간은 큰데 환전이나 통역서비스가 없어 티켓 예매나 쇼핑에 고생했습니다."

해운대는 남포동에는 없는 호사스러움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지역 주민도 외국인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이벤트가 된다면 ‘부산’ 다우면서도 ‘국제’적인 부산국제영화제가 되기는 어려울 터이다. 문화행사는 지역성과 국제성을 동시에 띨 때 주민에게도 외국관광객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지 않을까? 부산에 영화인이 많이 살고 영화촬영지와 작업장으로 각광을 받는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부산에서 모집한 엑스트라들은 영화제의 수많은 주역이 되지 않을까?

세계 3대영화제는 ‘지역 특색’과 결합돼 관객을 유혹하는데…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세계 3대 영화제 베니스, 칸, 베를린 모두 저마다 지역 특색을 지니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매력은 ‘부산’ 그 자체다. 생선구이를 분식집 튀김 팔 듯 쌓아놓고 파는 백반집, 솥에서 김 뿜으며 끓는 돼지국밥을 뚝배기에 담아 토렴해주는 부산 아지매들도 ‘부산의 특색’이고, 한국전쟁 피난민들이 제멋대로 지어 살던 흔적이 남아있는 집단기억의 장소들도 ‘부산의 상징’이다.

   
▲ 초가을 쌀쌀함을 달래주는 어묵과 팥죽은 남포동 부평시장의 명물이다. 분식집 튀김처럼 쌓아놓고 파는 생선구이가 먹음직스럽다. ⓒ 박동국

그런 점에서 남포동이 빠진 부산국제영화제는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남포동만큼 ‘살아 있는’ 부산을 고스란히 담은 곳은 드물다. 남포동은 부산국제영화제가 태동한 곳이다. 한국 최초 영화제작사 ‘조선키네마’도 부산 중구에 있었다. 남포동 극장가는 부산의 근현대사를 품으며 영화의 거리로 자리매김했지만 이제는 그 명성을 잃었다.

‘해운대’에서 9박10일간 호화판으로 치러진 부산국제영화제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 영화제 마지막 날인 11일 밤, 영화제 관련 무대와 천막들을 철거하기 시작한 해운대 백사장은 다시 철 지난 해수욕장의 쓸쓸한 밤 풍경으로 회귀하고 있었다.


* [지역∙농업이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기자·PD 지망생들에게 지역∙농업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개설한 [농업농촌문제세미나]와 [지역농업이슈보도실습] 강좌의 산물입니다. 대산농촌문화재단과 연계된 이 강좌는 농업경제학·농촌사회학 분야 학자, 농사꾼, 지역사회활동가, 데스크 교수 등이 참여해서 이론과 농촌현장실습 또는 탐사여행, 지역취재보도를 하나로 결합하는 신개념의 저널리즘스쿨 강좌입니다. <단비뉴스>는 이 강좌의 과제 중 일부를 중계해 지역∙농업문제에 대한 인식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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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지역농촌팀, 세저리이야기 부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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