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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가 살아가는 방식을 배웁니다”
[지역농업이슈] 인천 계양구 장애인들이 ‘민들레야학’을 만든 이유
2014년 09월 02일 (화) 22:40:18 함규원 기자 qwonee@gmail.com

인천시 계양구 오조산공원에 가면 분주히 움직이는 전동 휠체어 여섯 대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뇌병변, 청각, 언어장애 등을 함께 지닌 중복 장애인이 대부분이다. 야학교사에게 사진 찍는 법을 배운 날은 여섯 학생이 각자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는 데 몰입한다.  지체장애가 심해 휴대전화를 손으로 쥐기 어려운 이는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는다. 공들여 찍은 사진의 주인공은 대개 야외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이다.

불편한 두 손을 모아 일그러진 얼굴로 휴대전화 화면을 응시하고 있는 오명진(40)씨에게 이름을 물었더니, 그는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손으로 이름 석 자를, 자음 하나, 모음 하나씩을 천천히 수화로 그려냈다. 그는 “강아지 사진, 아기들 사진을 많이 찍어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활동보조인 김상욱(24)씨는 “평소에도 강아지와 아이들을 좋아해 길을 가다가도 멈춰서 한참 보곤 한다”고 말했다.

   
▲ 민들레야학 오명진 학생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있다. ⓒ 함규원

“방에만 있으니 억압받고 있는 줄도 몰랐어요”

민들레야학은 인천광역시 계양구에 있는 장애인야학이다. 계양구청 근처 상가건물 2층의 63평 공간을 교실로 활용한다. 한글 교육 프로그램과 사진, 연극, 미술 등의 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장애인들은 배움의 갈증을 푼다.

민들레야학이 탄생한 건 2007년, 제도권 교육에서 소외된 성인 장애인의 교육 기회를 되찾고자 나선 것이 시작이었다. 야학 설립을 주도한 박길연 교장(51·여)은 27살에 류머티스성 관절염을 앓으며 장애인이 되었다. 그는 장애를 얻은 뒤 자신을 고립시키며 사회와 격리된 생활을 한 끝에 지역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용기를 냈다고 했다.

“저는 방에만 있었으니까, 장애인이 얼마나 많은 억압과 차별을 받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어요. 다섯 분의 중증장애인을 만났는데, 둘은 한글을 알고 셋은 읽고 쓸 줄 모르는 겁니다. 그때 큰 충격을 받았어요.”

박 교장은 교육 사각지대에 있는 성인 장애인의 현실을 직접 목격하고 야학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본인을 포함해 다섯 명의 장애인들이 힘을 모았다. 사탕과 껌을 내다 팔고, 지하철역에서 노점을 하면서 돈을 모았다. 심지어 밥을 굶고,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기초생활수급비까지 모았다. 십시일반으로 공간을 마련했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계약금을 다 내고 쫓겨난 적도 많았다.

“계약한 뒤 갑자기 집주인이 이렇게 많은 장애인이 왔다 갔다 하면 곤란하다며 집을 비우라고 했어요. 심지어는 딸이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장애인이 살면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내쫓긴 적도 있죠. 세 번의 계약파기 끝에, 어렵사리 10평도 안 되는 작은 방을 얻었어요.”

민들레야학을 시작한 장애인 대부분이 저소득층과 기초생활보장수급자여서, 재정적 어려움은 피할 수 없었다. 결국, 6개월 치 임대료가 밀려 쫓겨났고, 인천시교육청에 재정 지원을 요구하며 천막을 치고 야외수업을 했다. 30여 일을 거리에서 보낸 끝에 지자체와 교육청의 도움으로 지금 사무실을 마련했다.

대학생 때부터 장애인 인권운동에 몸담은 문상민(43) 사무국장은 민들레야학의 역사를 시작부터 함께했다. 그는 “방 하나로 시작했던 야학이 숱한 어려움에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절실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야학에 ‘민들레’라는 이름을 붙여준 이유를 설명했다.

“민들레는 아무 데나 흔하게 피는 꽃, 발길에 짓밟혀도 또 자라는 꽃, 무수한 씨를 날려보내는 자유로운 꽃입니다. 거리에서 아가씨나 아저씨, 할머니를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장애인도 흔하게 볼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길가에 무수히 핀 민들레처럼 말입니다.”

   
▲ 민들레야학 문상민 사무국장이 '민들레'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 함규원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게 교육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1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교육 정도는 무학을 포함한 중학교 이하 학력이 63.0%에 이른다. 문상민 사무국장은 “제도권 교육에서 소외된 게 장애인야학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야학의 존재 자체가 공교육의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다. 야학의 목표는 글을 배우고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야학의 목표가 검정고시에 그치면, 장애인의 삶이 달라지지 않더군요. 검정고시에 합격하면 야학에 갈 이유가 사라지니까 다시 집에서만 보내는 생활로 돌아가 버려요. 지식 위주 교육을 넘어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맞서는 법을 함께 배우는 게 중요합니다. 때때로 수업을 빼고 집회에 가는 경우도 있는데, 자기 목소리 내는 법을 배우는 것도 하나의 교육이죠.”

문 사무국장은 장애인이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글을 배우고, 간판을 읽고, 지하철을 탈 수 있게 되면 한 인간의 삶이 완전히 바뀐다”며 장애인이 한 인간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야학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장애인들도 ‘실패할 권리’를 통해 평범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직접 배울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텔레비전 유료 채널을 많이 봐서 요금이 엄청나게 많이 나오기도 하고, 스마트폰을 잘못 만져서 데이터 요금으로 몇 십만 원을 낸 학생이 있었어요. 써야 할 돈이 줄어드니까,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자연스레 깨우치더군요. 실패를 통해 겪으면서 배우는 거죠.”

   
▲ 민들레야학 학생들이 야외 수업에서 찍은 사진을 함께 확인하고 있다. ⓒ 함규원

김은아(30·여)씨도 야학에 오기 전에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던 중증장애인이었다. 김씨는 “집에만 있으면 갑갑하고 그랬는데, 여기 나오니까 좋다”고 말했다. 그는 야학에서 한글을 처음 배웠다. 사람들과 소통하며 사회적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운 것도 이곳이 처음이었다. 야학 2년차인 그는 지난해 이곳에서 소중한 인연을 찾았다. 뇌병변 장애를 가진 신경수(31)씨와 교제를 시작한 것이다. 그는 남자친구가 잘 해주냐는 물음에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다”고 답했다. 부끄러워하는 신씨에게 그는 “오빠는 나이만 많지 애 같다”며 활짝 웃었다.

지원 부족으로 흔들리는 장애인야학

학령기에 교육 기회를 놓친 성인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장애인야학은 진보적 활동가들과 장애를 가진 지식인들이 운영하는 비영리단체다. 2008년 특수교육법이 시행되며 장애인야학이 평생교육시설로 등록되어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체계적인 지원 제도가 없어 많은 단체가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들레야학은 올해 프로그램 운영비 명목으로 지자체에서 3900만원을 지원받았지만, 운영에는 턱 없이 부족한 액수다. 문상민 사무국장은 “장애인야학에 필요한 예산을 책정해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교육시설에 준하는 예산을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대구 질라라비야학 조민제 사무국장은 “지자체 재량에 따라 지원이 천차만별”이라며 “교육부 차원에서 구체적인 지원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김선아 간사는 “평생교육시설로 등록되어있지 않은 야학은 지자체에서 지원을 받기도 힘든 형편”이라며, “정부가 성인 장애인 교육에 책임을 가지고 체계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 [지역∙농업이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기자·PD 지망생들에게 지역∙농업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개설한 [농업농촌문제세미나]와 [지역농업이슈보도실습] 강좌의 산물입니다. 대산농촌문화재단과 연계된 이 강좌는 농업경제학·농촌사회학 분야 학자, 농사꾼, 지역사회활동가, 농업·농촌전문기자, 데스크 교수 등이 참여해서 이론과 농촌현장실습, 지역취재보도를 하나로 결합하는 신개념의 저널리즘스쿨 강좌입니다. <단비뉴스>는 이 강좌의 과제 중 일부를 중계해 지역∙농업문제에 대한 인식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함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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