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정부와 언론의 무능 고발한 ‘일방적’ 다큐

지난 6일 부산 씨지브이(CGV) 센텀시티에서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에 초청된 영화 <다이빙벨>이 270여 객석이 가득 찬 가운데 상영됐다. 이 영화는 문화방송(MBC) 해직기자인 <고발뉴스> 이상호 대표와 안해룡 감독이 공동연출한 다큐멘터리다. 지난 4월 침몰한 세월호의 희생자 구조 과정에서 해난구조장비인 ‘다이빙벨’ 투입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공방을 기록했다.

이상호 기자의 눈으로 기록한 답답한 구조과정

영화는 다이빙벨 투입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와 이상호 기자, 그리고 다이빙벨 투입을 저지하려는 해경과 해양수산부의 갈등을 생생하게 담았다. 카메라는 이상호 기자의 눈길을 따라 세월호 침몰 이후에 정부와 언론, 해경, 구난업체 ‘언딘’ 등이 보여준 무능함과 무책임함을 고발했다. 관객들은 이 기자가 느끼는 답답함, 울분에 공감하며 중간중간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종인 대표가 구조작업을 하고 있는 바지선에 해경의 배가 충돌하는 장면에서는 객석 곳곳에서 욕설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 영화 <다이빙벨>이 상영되는 부산 센텀CGV는 아침부터 취재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김상원(22·부경대)씨는 "4년 째 부산국제영화제에 왔지만 이런 취재열기는 처음 본다"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 김윤정

이 영화는 상영관에 걸리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새누리당 소속인 서병수 부산시장과 세월호일반인유족회가 부산국제영화제측에 상영 철회를 요구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영화제가 <다이빙벨>을 상영하면 국고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압박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이 밖으로 알려지면서 <다이빙벨>은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 영화 <다이빙벨> 포스터 ⓒ 시네마달

그러나 영화제측은 <다이빙벨>의 상영을 강행했다. 지난 5일 영화제측이 발표한 보도자료는 "올해까지 19회를 이어오는 동안 부산국제영화제는 외압에 의해 상영을 취소한 전례가 없다"고 밝혔다. 영화를 비판할 수는 있으나 아직 공개되지도 않은 작품에 대해 상영취소를 요구하는 것은 영화제의 정체성과 존립을 위협하는 행위라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상영 현장에서 보수단체의 시위나 상영 저지 행위가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별다른 사고는 없었다. 대신 외신기자들을 포함, 영화제에 참가한 대다수 언론사 취재진이 몰리면서 상영 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Guest Visit)’는 기자회견장을 방불케 했다.

인도네시아 양민학살 사건을 고발한 영화 <침묵의 시선> 등을 연출한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주요 언론이 왜 이렇게 비판의 기능을 잃고 정부의 말을 속기사처럼 받아 적기만 하는가”라고 질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상호 기자는 “정부는 모든 문제를 무능력으로 돌파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 보수언론은 현 정권을 공동 창출한 실질적인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한다”고 답했다. 이어 “KBS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폭로를 통해 확인했듯, 언론 스스로가 구조 실패에 따른 책임이 청와대로 튀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영화제 주최측과 관객, 당국의 섣부른 개입 비난

영화를 본 대학생 정범주(대명대 언론영상학부)씨는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이제야 국민들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데 다시금 논란을 만드는 일이 과연 좋은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며 “솔직히 전문적인 분야라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영화를 보고 관객들 스스로가 판단해야 할 문제를 외부에서 제재를 가한 데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왔다는 주윤지(33)씨는 “세월호 사건은 정부가 어떤 방법이든 신속하게 구조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고, 다이빙벨은 이런 정부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 <다이빙벨>의 공동 연출을 맡은 이상호 기자와 안해룡 감독이 관객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이날 관객과의 대화(GV) 진행은 서강대 교육학과 정유성 교수가 맡았다. ⓒ 김윤정

이상호 기자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부산영화제가 많은 부담을 느꼈을 텐데도 <다이빙벨>을 품어주어 경의를 표한다"며 "지금도 유가족들이 거리에서 돌을 맞고 있는데, 사고 직후처럼 국민이 하나가 돼 이들과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는 논란 속에 상영됐지만 한쪽의 목소리만을 담은 <다이빙벨>을 통해 관객이 사건의 진실을 확인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국제영화제에서 세월호에 대해 다시 한 번 토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는 점은 이 영화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상영을 막으려 고군분투했던 문화체육관광부와 서병수 시장 등이 오히려 <다이빙벨>의 홍보를 해준 셈이 됐다. 영화 <다이빙벨>은 6일에 이어 오는 10일 2차 상영까지 인터넷 예매분과 현장 티켓 모두가 매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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