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소통

▲ 이문예 기자
내 서랍 속에는 ‘추억의 상자’라 적힌 작은 종이상자가 있다. 그 속에는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편지와 주사위 같은 잡동사니가 들어있다. 주사위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산 것인데 내겐 특별한 의미가 있다. 고교 3년 내내 손에 쥐고 이리 저리 돌려가며 "점수 오르게 해 주세요", "대학 가서 멋진 남자친구 만나게 해 주세요" 등 시도 때도 없이 소원을 빌었던 것이다. 졸업 무렵 주사위를 상자에 넣을 때는 '나중에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며 내 추억도 함께 선물해야지' 하고 다짐했다.

대학 입학 후 그것을 잊고 살다가도 가끔 고민이 생기거나 신중히 결정해야 할 일이 생기면 아직도 주사위를 찾곤 한다. 내 앞에 놓인 선택지의 비교우위가 확실치 않을 때 주사위 숫자에 의미를 부여해 결정을 하는 건 편리한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 주사위를 살 때는 별 목적도 없었는데 살아가면서 자꾸만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 인생항로의 나침반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혼자 있고 싶을 때, 머릿속이 복잡할 때 이 조그만 주사위는 나만의 성을 쌓는 도구였다.

사람들은 고민이 있거나 마음이 답답할 때 저마다 해결방법이 있을 터이다. 그게 음주든 방황이든 그 순간만큼은 술과 방황이 고통을 더는 수단이 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마음의 짐을 사람과 함께 풀지 못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을 느낄 때면 괜스레 서글퍼진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축에 든다. 타인에게 고민을 털어 놓는 것이 흉이 된다거나 괜히 약점 잡힐 일이라 생각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점점 사람들을 사람이 아닌 물건과 소통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언제부턴가 나도 고민이 생기면 주변 사람들한테 털어놓기보다는 혼자 삭이려 했다.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친지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지만, 결국 후회로 돌아오는 것을 겪으며 스스로 고민을 해결하려 했다. 내게 특별한 의미로 남게 된 주사위도 그런 후회의 산물이었다.

장자(莊子)는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다 사흘 만에 죽게 했다’는 노나라 임금을 언급하며 타자와 관계하는 법, 곧 소통을 이야기했다. 나와 타인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의 특성에 맞춰 접근하면 상호작용을 통해 각자 이전과는 다른 주체로 변화하는데, 이게 바로 소통이라는 것이다. 장자의 소통 방식은 타자를 내 속으로 들여오기 위해서는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눈으로 보면 이제껏 내가 해왔던 소통은 가짜였다. 사물한테 위로받는 것보다 사람한테 위안을 얻는 것이 더 효과적인 치료법인 줄 알면서도 쉽사리 마음을 트지 못했던 것은 타인에게 받을 상처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타인과 관계를 시작할 때 이리 재고 저리 재는 건 인간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설정하는 것’이다. 계산된 인간관계가 어찌 참된 소통이며 오래 지속될 수 있으랴.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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