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앨런 와이즈먼 ‘인간 없는 세상’

▲ 엘런 와이즈먼, <인간 없는 세상> 표지
미국 저널리스트 앨런 와이즈먼은 <인간 없는 세상>에서 인류가 사라진 지구의 모습을 예측했다. 과학적 분석과 발로 뛴 상세한 조사 끝에 드러난 ‘인간 없는 세상’의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카드뮴 같은 중금속 물질이 완전히 씻겨나가는 데는 7만5천년이 걸리고 이산화탄소가 인류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려면 10만년이 넘게 걸린다. 동물에게는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인류 없는 지구에서 생태계는 ‘자연을 파괴하는 존재’ 없이 새 출발을 한다.

앨런 와이즈먼의 묘사는 경이로우면서도 섬뜩하다. ‘인간 따위’가 존재하지 않아도 문제없이 돌아가는 거대한 자연의 법칙이 느껴지는 동시에 인간이 얼마나 지구를 착취하며 살아가는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인간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기보다 대결하기를 택한 유일한 동물이다.

“언젠가 에이즈가 인간을 다 쓸어버릴 거야. 동물들이 우리 자리를 다시 차지하겠지.”

저자가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지만, 동물들이 전부 멸종하기 전에 인구 팽창을 완화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며 소개한 마사이족 노인의 말이다. 인간이 죽어 사라지는 것만이 동물의 생존을 보장한다는 말은 서글프면서도 반박하기 어렵다.

전쟁이나 정치적 이유로 인간의 출입이 금지된 구역에서는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 1953년 9월 6일부터 사실상 ‘인간 없는 세상’이 된 한국 비무장지대는 우리에겐 역사적 아픔이 있는 곳이지만 멸종 위기에 처했던 야생동물에게는 피난처가 되었다.

동물뿐만이 아니다. 키프로스의 휴양지 바로샤는 전쟁 후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지 고작 6년만에 야생 상태가 됐다. 도로 틈새에 들어간 씨앗은 싹을 틔워 아스팔트를 널빤지 자르듯 끊어냈고 길거리는 다채로운 식물로 가득 찼다. 사람에게 ‘폐허’가 돼버린 셈이지만 자연은 ‘복구 프로젝트’를 수행했을 뿐이다. 사람이 사라진 공간에서 자연은 열심히 제 영역을 되찾는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지구에 ‘원죄’를 지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지하든 못하든, 이미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 조건’들은 너무나 많은 자연파괴를 전제로 한다. 전기, 물, 교통수단, 건물, 도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휴지 같은 생필품까지 어느 것 하나 자연의 희생을 전제로 하지 않는 것이 없다. 인간은 지구의 희생을 발판으로 태어나 지구의 희생을 바탕으로 죽는다. 죽어서도 그 희생은 끝나지 않는다.

문제는 인간이 스스로 ‘먹튀’의 존재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오히려 불필요한 살생을 감행하면서 사치스런 욕망을 채운다. 지구를 파괴하고 다른 생명을 빼앗아 가며 인간은 잘 먹고 잘 살다가 세상을 뜬다. 그가 떠난 뒤에도 파괴에 대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파괴만이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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