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김주완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

중앙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지역, 그리고 지역신문

▲ 김주완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 표지

강준만은 저서 <지방은 식민지다>를 통해 ‘내부 식민지(internal colony)' 개념을 이야기한다. 식민지는 국가들 사이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한 국가 안에도 지역 간 불평등의 형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중앙언론이 지역언론과 관계 맺는 방식도 '내부 식민지’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지역문제가 전국언론을 타는 경우는 대부분 규모가 큰 사건, 사고가 날 때나 자연재해를 겪을 때, 미담이나 훈훈한 인정을 보여주는 소식이 있을 때이다. 지방 소식은 주로 먹거리, 고기잡이, 축제, 미담, 사고 등을 보여주는 용도로 다뤄질 뿐, 중앙이 취사선택하는 지역 소식 속에서 지역민들 ’삶‘에 관한 보도는 얄팍했다. 

서울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지역문제를 제대로 다루려면 지역기자는 나름대로 사명감을 갖고 서울의 기자보다 더 바삐 뛰어야 한다. 지역문제를 단순히 경제논리로 환산하는 방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지역문제의 원인을 찾아 심층취재하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기사도 써야 한다. 출입처 위주 취재방식에서 벗어나 시민의 눈과 입이 되어 현장을 누비야 한다. 이런 것들이 지역기자에게 요구되는 역할일 터이다. 

25년쯤 지역신문 기자생활을 한 김주완은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에서 지역신문기자들이 지역을 지키지 못하는 현실을 고발한다. 중앙의 발전을 위한 포로나 다름없는 지역 현실을 파헤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게 지역기자의 역할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이 지역 유지나 공무원들과 담합해 지역 현실을 은폐하고 있다. 

<남강신문>(현 진주신문)과 <경남매일>에서 기자생활을 하던 그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1999년에 6200여명의 시민을 주주로 둔 경상남도 지역신문 <경남도민일보>를 창간했다. 이 신문은 사원윤리강령과 기자실천요강을 제대로 실천한다. 사장을 비롯한 이사진을 사원들이 선출하는 언론사이기도 하다. 

지역에 똬리 튼 연고와 인맥이라는 ‘괴물’

저자는 지역언론의 취재와 보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연고’를 꼽는다. 소유자본이나 경영진, 광고주, 권력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안면과 연고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자본과 권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경남도민일보’ 구성원 역시 곤혹스러워하는 대상으로 연고주의를 꼽는다. 지역사회라는 것이 워낙 촘촘한 인맥으로 구성돼 있는 데다 지역언론인 또한 직장을 벗어나면 지역 인맥의 그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사례는 너무나 많다. ‘경남도민일보’의 전 편집국장과 막역하게 지내는 고위공무원이 있었다. 보도해야 할 기사를 그 공무원이 빼달라고 부탁하자 전 편집국장이 하소연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당신에게 무릎을 꿇고 빌라면 열 번이라도 빌겠습니다. 그러나 신문보도만은 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제발 그것만은 이해해 주세요.”

지역의 언론환경이 이렇다 보니 고발 또는 비판 기사에 대한 ‘후속보도’가 잘 나오지 않는다. 속된 말로 ‘한번 물었다 하면 놓지 않고 뽕을 빼주는 기사’가 드물다. 기자도 사람인지라 그런 호소에 시달리다 보면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저 사람 부탁을 끝까지 거절하나’, ‘이만큼 경각심을 줬으니 이후 조치는 해당 기관에서 알아서 하겠지’ 하는 심정으로 약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독자 쪽에서는 대개 후속보도를 기다리게 된다. 고발기사의 대상이 된 기관이나 단체의 반응, 처리과정, 이후 조치에 독자가 궁금증을 갖는 것은 ‘알 권리’ 차원에서 당연한 일이다. 지역기자는 자신이 제기한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지를 끊임없이 챙겨 보도해야 한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후속보도가 제대로 나가지 않으면 문제를 지적받은 해당 기관이나 단체의 조치도 흐지부지되기 때문이다. 지역언론이 의욕적으로 치고 나온 문제에 대해 ‘저러다 말겠지’하며 안일하게 대처하는 관행을 뿌리뽑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게 후속보도라고 저자는 강조했다. 

연고는 언론계의 잘못된 관행 중 하나인 ‘촌지’ 혹은 ‘스폰서’와도 연결된다. 저자는 경남권의 ‘언론 동문회’를 예로 든다. 경남권의 많은 대학들은 ‘언론동문회’를 가지고 있고 그 안에서 모임도 자주 이루어지는데, 이 동문회에는 동문회비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기자들은 비싼 호텔에서 대학 총장과 함께 밥과 술을 먹고 선물까지 받아간다. 대학이 언론동문회를 ‘관리’하기 때문이다. 언론으로서 역할을 촌지와 맞바꾼 채 토호, 기득권세력의 대변지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다.

▲ 2010년 8월 30일자 <경남도민일보> 1면에 실린 김주완 편집국장 명의의 '반성문' ⓒ 정운현

엉뚱한 소리가 ‘지방방송’이 된 이유

사람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하다가도 누군가 엉뚱한 말을 하면 “야, 지방방송 꺼라”는 핀잔이 돌아온다. 이 말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낮춰보고 업신여기는 의식이 담겨 있음을 반증한다. 그 때문에 저자는 ‘중앙지’ 단어 사용을 ‘전국지’ 또는 ‘서울지’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앙지’는 엄격히 말해 전국을 배포대상지역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전국’의 의미를 대변하는 ‘전국지’라는 표현이 올바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역일간지도 자신의 행적을 돌아보고 성찰해야 한다. 지역언론이 제대로 된 지방자치 보도의 전형을 개발하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취재, 보도에만 급급해왔던 것도 반성할 부분이다. 저자는 지역언론이 지역주민의 삶에 구체적으로 다가가는 밀착보도를 소홀히 한 채 주로 통신기사에 의존하는 점을 지적한다. 서울에서 공급하는 <연합뉴스>의 지역언론 지면점유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도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지역언론은 보도자료에만 의존하던 취재관행을 버리고 좀 더 생생하게 현장에 다가서야 한다. 지역주민이 뭘 궁금해하는지, 뭘 답답해하는지, 뭘 원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해야 한다. 지방의회에 상정된 안건 중 시민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안건이 뭔지, 그게 통과되면 실제 어떤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깊이 분석해 더 쉽게 알려줄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단순히 지방분권이 시급하다는 당위성만 되풀이할 게 아니라, 구체적 사례를 찾아내 그것 때문에 분통을 터뜨리는 지역민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하는 보도기법 개발이 시급한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지역 신문들끼리는 건강하게 연대해야 한다. 정보의 질과 내용으로 서울지와 승부를 내야 하고, 함께 힘을 모아 그들의 횡포를 고발해야 한다. 저자는 지역신문들끼리 지나친 경쟁의식을 갖기보다는, 엄청난 물량 공세로 지역신문 시장을 유린하는 서울지역 거대 신문사에 대항하기 위해 연대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 2010년 4월 2일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열린 '글로벌 시대, 지방공동체와 공공저널리즘의 만남' 토론회 모습 ⓒ 미디어오늘

‘지역밀착 보도’와 ‘공공저널리즘’ 실천

저자는 독자들이 자기가 보는 신문을 자신과 동일시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조선일보’를 구독하면서 스스로 ‘우리 사회의 주류’라는 자부심을 갖는다거나, ‘한겨레’를 읽으면서 자기를 ‘개혁적 여론주도층’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신문이 신뢰도를 회복하고 독자층을 확보하려면, 적어도 지역신문을 보는 사람이 ‘지역의 여론주도층’이며 ‘수준 높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려면 지역사회의 이슈와 화제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이끌어가야 한다. 다른 지역신문이 기득권세력 편에 설 때 그 반대편에 서거나, 다른 신문이 도지사와 시장, 군수들의 치적을 일방적으로 홍보할 때 그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지역신문들이 정치인이나 자치단체장을 어정쩡하게 비판할 때 그를 좀 더 선명하게 비판하는 것,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동종업체인 다른 지역신문과 동료기자들을 호되게 비판하는 보도 역시 이에 해당한다.

저자는 ‘공공저널리즘’(civic journalism)의 실천도 강조한다. ‘공공저널리즘’은 ‘시민저널리즘’ 또는 ‘시민언론’쯤으로 번역되며 ‘퍼블릭 저널리즘’이라고도 부른다. 이 개념은 힘 있는 자보다 힘 없는 자 편을 드는 것을 지향하고 언론의 전통적인 가치인 ‘중립성’과 ‘기계적인 객관성’을 부정한다. 이것은 서양에서도 주로 지방언론을 중심으로 실험되고 있는데 이는 전통적인 객관보도만으로는 거대언론과 경쟁해 이길 수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공공저널리즘은 단순히 지역민의 생활과 밀착된 보도를 한다는 뜻을 넘어 의제설정 단계에서부터 지역시민과 함께 의논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언론과 시민이 힘을 합쳐 적극적인 ‘행동’까지 함께함을 의미한다. 저자는 지역언론이 한발 물러선 관찰자의 견지에서 객관적으로 취재보도만 하는 것은 ‘소식지’ 수준일 뿐이라고 말한다. 

공공저널리즘을 실현하려는 언론이라면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려는 목표를 세웠을 때, 지역관련 단체들과 긴밀히 협의해 공동 목표를 설정하고 언론의 역할과 시민단체의 역할을 서로 분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도시보다는 중소도시가 아무래도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기 쉽다는 점도 공공저널리즘을 구현하기 위한 이점이다. 저자는 ‘공공저널리즘’이 ‘공익저널리즘’으로서 지역언론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은 올 3월까지 15개월간 무려 66개 지역신문을 인수한 뒤 투자자들에게 보낸 연례 주총 서한에서 지역신문의 잠재적 가치를 누누이 강조했다. 

‘지역신문은 지역사회에서 불가결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성공적 신문은 독자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독자들이 다른 데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일들은 대도시에서 발행되는 신문보다 지역신문들이 잘 할 수 있다. 가령 지역주민들은 자기 지역 고등학교 야구에 관한 소식을 듣고 싶을 것이다.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는 그런 정보를 전할 수 없다. 지역신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 이 기사가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불필요)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