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청춘 ‘민달팽이족’ ① 취업해도 못 벗어나는 메뚜기 신세

주거 문제는 대한민국 서민 모두의 고민이지만 비싼 등록금과 높은 생활물가에 시달리는 대학생 등 청년층 가운데는 당장 몸 누일 곳을 못 찾아 고통을 겪는 이들이 특히 많다. 껍데기집이 없는 달팽이처럼 주거 불안에 시달린다고 해서 ‘민달팽이족’이라 불리는 이들은 고시원, 하숙집, 지하셋방 등을 전전하거나 학교 동아리방과 도서관에서 ‘눈치잠’을 자기도 한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청년기자들이 같은 눈높이에서 불안한 청년 주거의 현실을 취재하고 대안을 모색했다. (편집자)

정모(25··취업준비생)씨는 7년 전 서울 용산구의 한 대학에 입학하느라 울산을 떠나 온 후 이사를 모두 8번 했다. 자취방, 하숙집, 고시원, 친척집, 기숙사 등을 전전하느라 짐을 싸고 푸는 데 가 텄다. 비좁은 침대에서 몸을 돌리기도 어려웠던 고시원 생활이 기억에 많이 남지만 최악의 집은 청파동의 자취방이었다. 서울에서 처음 구했던 그 방은 상가 2층을 살림집으로 개조한 곳이었는데 주인할머니와 다른 학생 3명이 정씨와 거실, 화장실을 공동으로 썼다. 보증금이 없고 월세가 25만원이라 부담이 적었지만 전기요금에 극도로 민감했던 주인할머니가 밤이면 복도 불을 모두 꺼버려 앞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한창 돌아가고 있는 세탁기의 전원 버튼을 꺼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오래 살 생각으로 설치비 5만원까지 내고 인터넷선도 깔았지만, 서러운 마음에 결국 인근의 월 35만원짜리 하숙으로 옮겼다.

하지만 하숙집 인심도 만만치 않았다. 주인아주머니는 저녁830분까지로 정해 놓은 식사시간이 1분만 지나도 밥상을 치우고 부엌 불까지 꺼버렸다. 적지 않은 돈을 내는데도 늘 얹혀산다는 불편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하루 세끼 식사까지 포함, 50만원가량을 내야하는 학교 기숙사로 들어갔다. 신축시설이라 환경은 좋았지만 방학 마다 2주 정도 방을 비워야 해 친구 집 신세를 졌다. 그나마 최장 거주기간이 1년이라 또다시 이사를 나왔다. 졸업을 하고 입사시험을 준비 중인 요즘 정씨는 신공덕동의 보증금 1000만원, 월세 30만원짜리 반지하방에 산다. 천장에서 물이 새 주인집에 말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언제 돈을 모아 천덕꾸러기 메뚜기 신세를 면하게 될지 지금으로선 까마득하다.

▲ 연세대학교 중문 쪽에 위치한 원룸·하숙촌에서 한 학생이 걸어 나오고 있다. ⓒ 홍연

좁고 어두운 방, 안전사고에 취약한 고시원

공동냉장고, 공동화장실 모두 20명씩 같이 써요.”

호텔 주방보조로 일하며 방송통신대학에 다니는 김영(22)씨는 지난해 12월 서울 이대전철역 부근에 월 19만원짜리 고시원 방을 구했다. 전에 살던 홍제역 부근의 고시원보다 월 4만원이 싸서 좋아했지만 그만큼 더 불편한 게 생겼다. 227리터(L)용량의 냉장고 하나에 20명이 식재료를 보관하는데, 김치 등 반찬이 담긴 통, 물러 터진 파와 마늘, 무언가가 가득 담긴 검은색 비닐봉지 등이 늘 한 가득이다. 이름을 적어놓아도 우유나 요구르트가 없어지는 일이 다반사다. 고시원 관리자에게 항의해도 사람이 많아 어쩔 수 없다는 대답뿐이다. 김씨는 밥 해먹기를 포기했다. 점심과 저녁은 직장에서 제공하는 밥을 먹고 아침은 거른다. 김씨의 방은 1(3.3) 남짓한 공간으로 침대 발치는 책상 밑에 들어가 있다. 창문이 없어 공기는 탁했고, 복도에도 빛이 들어오지 않아 한낮인데도 어두컴컴했다.

김씨는 호텔주방에서 정오부터 밤 10시까지 일하고 월 120만원가량을 번다. 여기서 고시원 방값 19만원은 큰 부담이다. 김씨는 친구들 중에도 돈이 없어 반지하방이나 원룸을 전전하는 애들이 많다대부분 비상대피로나 소화기 등 안전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곳이라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워킹홀리데이(관광취업) 비자로 호주에서 3년간 일했다는 김씨는 호주도 주거비가 비싼 편이지만 최저임금이 높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며 저임금 비정규직이 안심하고 살 곳을 찾기 어려운 현실에 불만을 토로했다.

▲ 김영 씨가 살고 있는 고시원의 방 내부. 공간이 비좁아 발을 쭉 뻗고 자기도 힘들다. ⓒ 홍연

최저기준 이하 열악한 공간에 사는 청년 139만명

대학시절부터 골프장, 음식점, 술집, 피시(PC)방 등 갖은 아르바이트를 하다 지난해 한 방송 외주제작사에 입사한 이재영(31·가명)씨는 일정한 거처가 없다. 대학생 때는 서울 동작구에 있는 학교의 과방(학과의 공용 공간)에서 잤고, 요즘은 회사 숙직실을 이용한다. 대학시절 그는 후배들 사이에서 과방 그 형으로 통했다. 학생들이 귀가한 늦은 밤 잠자리에 들어 아침 일찍 일어났고 세수는 화장실, 목욕은 학생회관 샤워실에서 했다. 더러 친구 집이나 찜질방에서 자기도 했다.

포항에서 상경한 그는 빚이 많은 아버지와 몸이 아픈 어머니 때문에 등록금과 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해야 했고, 더러는 집에 병원비 등을 보내주어야 했다.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휴학도 많이 했고, 수업도 자주 빠졌다. 온갖 풍파를 겪다보니 저 형 뭐야?” 하는 수군거림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게 됐다. 취업을 한 후에도 숙직실에서 자고 화장실에서 세수하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인건비가 후하지 못한 외주제작사의 여건상 언제 돈을 모아 내 방을 마련하게 될지 알 수 없다.

▲ 서울 모 대학의 과방. 이재영(가명)씨는 이런 곳에서 대학시절 숙식을 해결했다. ⓒ 조용훈

취업을 했지만 대학가 하숙촌을 맴도는 사회초년생도 많다. 지난해 한 리서치 회사에 취직한 이모(26·)씨는 여전히 모교 근처인 서울 청파동에서 월 35만원을 내고 하숙을 한다. 회사 부근에 비해 상대적으로 방값이 싸고 공과금을 따로 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침·저녁이 해결된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래도 월 180만원을 버는 그녀에게 35만원은 큰 부담이다. 그녀는 앞으로 3~4년간 돈을 모을 때까지는 이곳에 살 예정이라고 말했다. 70년대에 지어진 이씨의 하숙집은 겨울에 난방이 잘 안 돼 늘 전기장판을 켜야 한다. 여름엔 더 고역이다. 통풍이 원활치 않은 집이라 낮의 열기가 밤에도 잘 식지 않는다. 선풍기를 틀어도 숨이 턱턱 막힐 때가 많다. 그럴 때 이씨는 24시간 개방하는 모교 도서관 열람실에 담요 한 장을 들고 가 새우잠을 청한다. 15000원을 내고 발급 받은 대학도서관 1년 이용증이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이다.

▲ 대학가 원룸·하숙촌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 옆으로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 홍연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2010년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34세 청년 가운데 1319442명이 최저주거면적(14)에 미달하는 공간, 혹은 지하옥탑방에 살고 있다. 이 중 37.4%(494000여명)가 서울에 몰려있다. 청년주거운동단체인 민달팽이유니온은 지난해 발표한 '청년 주거빈곤 보고서'에서 20~34세 청년의 14.7%139만명 가량이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공간에서 살고 있다며 공공임대 확대 등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 이 기사는 KBS와 단비뉴스의 공동기획 '청년기자가 간다' 시리즈로 <KBS뉴스> 홈페이지와 <단비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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