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장되지 않는 장애인 이동권 ② 여건 더 나쁜 농어촌

"저상버스 이용 잘 안 해요. (버스) 기다리는 시간이나 전동휠체어를 직접 끌고 가는 시간이나 거의 비슷해서 1시간 정도 거리는 웬만하면 그냥 휠체어 타고 다녀요."

하반신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지체장애 1급의 이순주(49·여·충북 청주시 용암동)씨는 장애인이 타기 쉽게 만든 저상버스를 평소 잘 이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먼 거리는 시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전용 콜택시(해피콜)를 불러서 타고, 왕복 2시간 거리 정도는 그냥 전동휠체어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전동휠체어는 최대 시속 12킬로미터(km)로, 배터리(전지)를 가득 충전했을 때 약 25~35km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

이씨는 지난 4월 24일 해피콜을 이용해 외출했다가 돌아가는 택시를 예약하지 못해 저상버스를 기다릴지, 휠체어로 그냥 귀가할지 고민했다. 집까지의 거리는 버스로 20분 남짓이지만 전동휠체어를 타면 1시간이 넘게 걸린다. 긴 이동시간도 문제지만 인도가 휠체어 폭 보다 좁거나 넘어가기 어려운 턱에 걸리는 곳도 있어 일정 구간은 차도로 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기가 막연해 평소엔 험난한 ‘휠체어 귀가’를 선택했던 이씨지만 이날은 <단비뉴스> 취재팀과 함께 일단 버스를 기다려봤다. 버스가 오기까지 20분, 휠체어로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고 출발하는 데 10분, 집까지 이동시간 20분 등 거의 1시간이 걸렸다. 그냥 전동휠체어로 혼자 집까지 가는 시간과 마찬가지였다.  

▲ 저상버스는 대기시간이 불규칙하고 타고 내리는데도 불편함이 많아 아주 먼 거리가 아닌 한 힘들더라도 전동휠체어로 그냥 이동한다는 장애인들이 많다. ⓒ 이청초

또 다른 지체장애 1급 김종인(58·충북 청주시 산남동)씨도 저상버스를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저상버스가 많이 배치된 노선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어 헷갈리고, 버스정보알림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지만 기계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나 쓰지 나이 많은 사람들은 잘 모른다”며 “무작정 기다리느니 그 시간에 직접 전동휠체어를 타고 가는 게 낫다”고 말했다. 버스정보알림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이나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기계장치를 통해 버스 운행 위치와 저상버스 여부 등을 알려준다. 하지만 스마트폰이나 기계를 잘 사용하지 못하는 노인과 일부 장애인 등에겐 무용지물이다.

지자체마다 저상버스 도입률 차이 커

이씨와 김씨가 살고 있는 충청북도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시내버스 540대 중 101대를 저상버스로 운행하고 있다. 충북에는 청주시, 충주시, 제천시에만 저상버스가 도입됐는데, 그 중 청주시가 85대로 충북에서 도입률(21.9%)이 가장 높다. 하지만 저상버스가 운행되는 곳에서도 길고 불규칙한 배차 간격 등으로 장애인들은 불편을 느끼고 있었고, 군 단위 등 시골 지역에는 아예 저상버스가 없어 장애인들이 대중교통에서 소외되고 있다.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평균 16.4%. 이 중 서울이 28.5%로 가장 높고 서울을 제외한 6개 광역시와 8개 광역도는 평균 13.9%에 불과했다. 광역시 중에서는 대전이 17.4%로 가장 높고, 인천이 10.4%로 가장 낮다. 광역자치도 중에서는 강원이 27.9%로 가장 높고 제주는 6%로 전국 최저를 기록했다.

▲ 2013년 말 기준 전국 지자체별 시내버스 대비 저상버스 도입 비율.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은 16.4%였고, 지역마다 도입편차가 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국토교통부

제주도는 지난 2004~2006년에 저상버스 10대를 도입한 것이 전부였다. 지난 2007년 제1차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 5개년계획이 발표된 후에도 제주에서는 현재까지 저상버스가 단 한 대도 추가로 도입되지 않았다. 제주도청 임수길 교통정책담당은 “최근 도입되고 있는 저상버스는 CNG(압축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하지만 현재 제주도에는 CNG 충전소가 없어 (저상버스) 도입자체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 시행령 제14조에 따르면 특별시와 광역시는 운행하려는 버스 대수의 2분의 1을, 일반 시와 군은 3분의 1을 저상버스로 운행해야 한다. 하지만 각 지자체는 이 시행령을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으로 보고 있다. 강원도청 건설방재국 김동환 교통관리담당은 “국토부가 운행 버스를 기준으로 저상버스 도입률을 정해 증진계획을 세웠지만, 그 기준은 법정대수가 아니다”며 “매년 우수 버스업체를 선정하는 데 활용할 뿐”이라고 말했다.

또 시행령은 지역 내에서 운영되는 모든 버스를 기준으로 저상버스를 도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국토교통부 역시 시내버스에 한정해 확충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난 1월 국토부가 내놓은 제2차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2012~2016)에서 저상버스 도입목표는 시내버스에 대해 서울 55%, 6대광역시와 경기도 40%, 8개도지역 30%로 제시됐다.

지역 내 이동도, 타 지역 여행도 어려운 시골 장애인들

도입 대상을 이처럼 시내버스로 한정하다보니 마을버스, 농어촌버스는 저상버스 도입 대상에서 제외됐고, 이런 버스가 주로 운행되는 군 단위 지역에서는 휠체어 장애인들이 버스를 거의 이용하지 못한다. 충북 청주 다사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정책팀 성수현씨는 “특정 지역에 저상버스 도입 쏠림 현상이 나타나 농어촌 등 시골에 사는 장애인들은 대중교통 이용에서 더욱 소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시외로 나갈 수 있는 저상버스가 없다보니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도시 간 이동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지난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의 맞아 장애인단체들은 지역 간 이동 가능한 저상버스를 요구하며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집회를 가졌다. ⓒ 박진우

각 지자체는 저상버스 도입이 부진한 이유로 열악한 재정여건을 꼽는다. 일반버스 도입비용은 약 1억원이지만 저상버스는 그 2배인 약 2억원이 든다. 시내버스운송사업자가 저상버스를 도입할 때 국토부에서는 일반버스 구입비와의 차액(약 1억원)을 지자체와 매칭(분담)해 보조하는데, 일부 지자체는 이렇게 매칭으로 부담하는 재원을 마련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지원 비율은 현재 서울지역 40%, 서울을 제외한 기타 지역 50%다.

버스회사들이 저상버스 도입을 꺼리는 것도 걸림돌이다. 정부가 버스구입비를 보조하지만 유지 및 수리비용은 별도로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버스보다 30% 정도 유지관리비가 더 드는 저상버스를 적극 구매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저상버스 유지비가 일반버스보다 많이 드는 것은 대부분 수입차량이기 때문이다. 대구시청 대중교통과 서방경 주무관은 “지자체에서는 버스사업자를 꾸준히 설득하고 있지만 이를 강제할 수단도 없고 버스업체의 사정도 알고 있다 보니 저상버스 도입 확대 정책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팔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운 이들에게 집밖 세상은 장애물로 가득한 경기장과 같다. 휠체어를 타고 나선 거리에서 그들은 문턱에 걸리고 계단에 좌절하다 경기 자체를 포기하기 일쑤다. 특히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한다’며 정부가 저상버스 등 특별교통수단을 확충하기로 했지만 약속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많은 것을 포기한 채 살아야 하는 장애인들의 현실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청년기자들이 가까이에서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했다.(편집자)

* 이 기사는 KBS와 단비뉴스의 공동기획 '청년기자가 간다' 시리즈로 <KBS뉴스> 홈페이지와 <단비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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