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장되지 않는 장애인 이동권 ① 기다리다 포기하는 저상버스

팔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이기 어려운 이들에게 집밖 세상은 장애물로 가득한 경기장과 같다. 휠체어를 타고 나선 거리에서 그들은 문턱에 걸리고 계단에 좌절하다 경기 자체를 포기하기 일쑤다. 특히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한다’며 정부가 저상버스 등 특별교통수단을 확충하기로 했지만 약속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많은 것을 포기한 채 살아야 하는 장애인들의 현실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청년기자들이 가까이에서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했다.(편집자)

움직이려면 일단 휠체어를 타야 하는 1급 뇌병변 장애인 최강민(40)씨는 지난 4월 15일 오후 친구와 약속이 있는 서울 여의도로 가기 위해 당산동 집을 나왔다. 영등포구청 앞에서 버스를 이용하면 한 정거장이지만, 휠체어와 함께 탈 수 있는 저상버스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어 망설였다. 동행한 <단비뉴스> 취재진이 최씨와 함께 20분 정도 기다려봤지만 저상버스는 오지 않았다.

“이 곳을 지나다니는 저상버스를 거의 본 적이 없어요. 버스를 타려면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죠...어쩔 땐 하루에 6번씩 이동하기도 하는데, 시간을 예측할 수 없어 약속에 늦으면 곤란하잖아요.”

배차 간격 길고 타기도 어려운 저상버스

최씨는 결국 버스를 포기하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오후 2시20분쯤 정류장을 출발해 지하철을 타고 여의도역에 도착하니 2시55분이었다. 버스를 탔다면 5분도 걸리지 않았을 거리를 35분 걸려 도착한 것이다. 

여의도에서 일을 마친 최씨는 또 다른 약속 장소인 마포역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다양한 노선의 많은 버스가 정차하는 전경련회관 앞에서는 저상버스를 타기 쉬울 것 같다고 했다. 15분 정도 기다리자 600번 버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600번 버스는 총 6개 노선에서 운행되고 있는데, 26대 중 5대가 저상이다. 저상버스는 일반버스에 비해 차체가 크고 차 바닥 높이가 훨씬 낮아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최 씨는 저만큼 다가오는 버스를 향해 손을 번쩍 들어 타겠다는 의사표시를 했다. 하지만 정류장에 선 600번 버스는 장애인용 슬로프가 장착된 뒷문을 열지 않았다. 기자가 급히 다가가 “장애인 한 분이 버스를 타려고 한다”고 운전기사에게 말하자 비로소 버스 뒷문을 열고 슬로프를 작동시켰다.

하지만 최씨는 바로 버스에 오를 수 없었다. 슬로프가 내려진 곳 바로 앞을 가로수가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승객들이 버스를 앞으로 이동하라고 요청한 뒤에야 최씨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 저상버스가 가로수 바로 앞에 슬로프를 내려 최강민씨가 올라타지 못하고 있다. ⓒ 유선희

난관은 계속됐다. 저상버스 뒤편의 장애인지정석에 휠체어를 놓으려면 접이식 의자를 벽으로 붙여 접어주어야 한다. 장애인이 직접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기사가 도와줘야 하지만 600번 버스기사는 방법을 몰라 쩔쩔맸다. 몇 번을 시도한 끝에 겨우 의자를 접을 수 있었다. 전동휠체어를 버스에 고정시키는 것도 문제였다. 저상버스를 도입할 때 수동휠체어를 기준으로 만든 탓에 바퀴가 두터운 전동휠체어는 버스에 고정되지 않았다. 대신 장애인용 안전벨트가 있었는데 벨트 끈이 최씨의 손에 닿지 않았다. 

최 씨가 버스를 타고 출발하기까지 거의 10분이 걸렸다. 기다리는 다른 승객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다른 뇌병변 1급 장애인 김정(36)씨도 최씨와 같은 경험을 자주 한다고 말했다.

“노선에 따라 저상버스 배치가 제각각이어서 정작 가려고 하는 노선에 저상버스가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버스정류장을 바로 앞에 두고도 휠체어로 10분 거리에 있는 지하철까지 가야 하죠. 저상버스를 타더라도 기사님이 (휠체어 슬로프) 조작을 잘 못해 시간을 지체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다른 승객에게 미안해요. 아예 슬로프 조작을 못하는 기사님도 계시고 슬로프 자체가 고장 난 경우도 많죠.”

▲ 장애인석에 의자가 그대로 펼쳐져 있어 최강민씨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들이 버스에 타면 의자를 접어주고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버스기사의 의무다. ⓒ 유선희

김씨는 장애인들이 수월하게 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저상버스의 장비 점검과 기사 교육이 충분히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을·시외·고속버스 등에도 장애인 배려 필요

최씨와 김씨가 사는 서울에는 현재 총 2235대의 저상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전체 시내버스의 30.3%에 해당한다. 2013년 말 기준으로 서울 외 나머지 시도들의 저상버스 도입률이 평균 13%정도이니, 서울의 사정은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가까운 동네를 다니는 마을버스는 저상버스 도입대상에서 제외돼 있고 시외‧고속‧농어촌‧공항‧전세 버스 등에도 저상버스는 찾아 볼 수 없다.
 
그래서 저상버스나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곳을 가야 하는 경우 장애인들은 휠체어 탑승설비를 장착한 콜택시나 셔틀버스를 이용한다. 서울시는 오는 2017년까지 장애인 콜택시와 장애인 전용 개인택시를 대폭 늘려 이용자 80% 이상이 30분 내에 승차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특별교통수단 법정 의무도입 대수는 1급 및 2급 중증장애인 200명 당 1대 꼴이다. 2014년 현재 서울시에서 운행하고 있는 장애인 이용차량은 총 433대로 법정대수(409대)를 달성했지만, 장애인의 대기시간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법정대수를 달성한 서울과 경남 등을 제외한 지역은 여전히 법정대수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최강민씨는 “콜택시 담당자와 언제 (전화가) 연결될지 몰라 마냥 기다리는 일도 있고, 대기시간도 길어서 약속시간을 맞추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장애인 콜택시는 지체 및 뇌병변 1·2급 장애인, 기타 1·2급 휠체어 장애인만 이용할 수 있는데 서울시설공단 장애인 콜택시 콜센터를 이용해 신청하는 경우 짧으면 30분, 길면 1시간도 넘게 대기한 적도 있다고 최씨는 말했다. 김정씨는 “야간에 4시간 동안 대기한 적도 있다”고 불평했다.

거창한 확충 약속, 실행은 ‘나 몰라라’

정부는 얼마전 ‘2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12~16년)’을 발표하면서 2016년까지 저상버스를 전국 시내버스의 41.5%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이 계획이 별로 현실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 연차별 저상버스 도입계획 및 예산. 정부는 ‘2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통해 2016년까지 저상버스를 41.5%까지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 국토교통부

남병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은 “(현재 전국평균 16.5%대인 저상버스 도입률을) 5년 내에 30%포인트 가까이 늘리려면 앞으로 모든 대폐차(노후차량을 신차로 교체하는 것)를 저상버스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토교통부 교통안전복지과 곽인헌 사무관은 “대폐차 수량이 별로 없는 게 사실”이라며 “저상버스 도입률을 41.5%로 높이겠다는 계획에 (아직까지) 구체적인 방법이 담겨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남 실장은 “(저상버스를 더 많이 도입하려면) 지방자치단체가 버스 사업주를 유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서울시 버스정책과 류미경 주무관은 “저상버스 도입률을 높이기 위해 시가 하는 일은 매해 버스회사 평가 때 저상버스 도입률에 따라 가점을 주는 정도”라고 말했다.

현재 국토부는 저상버스(2억원)와 일반시내버스(1억원)의 차량가격 차이(1억원)를 각 시도와 매칭(분담) 방식으로 버스사업자에게 지원하는데, 저상버스는 수리비 등 운영비가 일반버스의 1.3배 정도로 많이 들기 때문에 사업자들이 도입을 꺼리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장애인단체들은 정부가 사업자에게 운영비 일부를 지원하는 등 저상버스 확충을 위한 현실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이 기사는 KBS와 단비뉴스의 공동기획 '청년기자가 간다' 시리즈로 <KBS뉴스> 홈페이지와 <단비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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