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와 함께 하는 젊은이들 ③ 수요집회를 지키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위안부 관련 영상을 보여주셨는데, 그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이 문제가 한 순간에 해결될 거라고는 생각 안 해요. 하지만 수요시위를 꾸준히 하면 할머니들을 잊지 않는 사람들이 계속 존재하는 거니까 언젠가는 긍정적으로 해결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월 26일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의 진행을 돕던 구다회(21·이화여대 문헌정보)씨가 말했다. 구씨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 등을 위해 이화여대생들이 만든 동아리 ‘이화나비’의 회원으로, 동료 30여명과 번갈아 집회에 나온다고 밝혔다. 이날 이화나비 회원들은 경쾌한 율동을 보여주며 시위 분위기를 이끌었다. 

▲ 희망과 연대, 해방을 상징하는 노란나비로 머리를 장식한 여학생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 김성숙

“내 나이에 끌려간 할머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위안부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속상해요. 끌려갔을 당시엔 우리 나이일 텐데.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그런데도 일본은 사과도 없고, 보상도 안 해주고…같은 반 친구가 저번 주 수요시위에 참여한 이후로 다 같이 뜻 깊은 일을 하자고 해서 왔어요.”

봄방학을 이용해 친구들과 왔다는 고등학생 강송이(18·경기도 안산)양은 “TV에서만 보던 풍경을 직접 보니 놀라웠다”며 “역사 시간에 잠깐 짚고 넘어가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게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경기도 평택에서 왔다는 고등학생 정현구(18)군은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나비모양 팔찌를 열심히 나눠주었다. 할머니들의 증언을 담은 영상을 보고 팔찌 나눔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됐다는 정군은 ”나비 팔찌는 다 같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늘 관심을 갖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자녀와 함께 나온 부모도 있었다.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나온 주부 류재향(44·경기도 이천)씨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할 일 아니냐”며 “단 한 번이라도 집회에 찾아와 할머니를 기억한다면 그 자체로도 매우 의미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류씨의 아들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스스로 찾아봤다며 ‘고노담화 수용하라’, ‘위안부 피해자에게도 사람의 권리가 있다’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 어머니와 함께 나온 어린이들이 준비해 온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 김성숙

수요시위는 지난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 (宮澤喜一)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을 맞아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기 위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주관으로 시작됐다. 매주 수요일 낮 12시 일본대사관 앞에서 23년째 열리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로 정부에 공식 등록됐던 할머니 중 182명이 일본의 사죄를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현재는 55명만이 남았다. 최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노골적 우경화와 역사왜곡 행보로 할머니들의 분노와 고통이 더욱 커지면서 평균 200~300명의 참가 인원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너의 침묵’이 깨질 때까지, 노랑나비는 멈추지 않아

“23년 동안 우리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려고 애써왔어요. (그러나) 일본대사관은 늘 저 모습으로 서 있었어요.”  

▲ 23년째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 김성숙

이날 행사는 정대협 윤미향(50)상임대표의 기조연설로 시작됐다. 윤 대표는 30분 동안의 연설에서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 책임을 인정한 고노담화(1993)와 식민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담화(1995)에 대해 설명하며 아베 정권의 최근 행보를 비판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귀를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들이 직접 지은 노랑, 진홍 색동치마저고리를 입은 ‘평화의 소녀상’도 듣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몇몇 초등학생들은 이날 행사가 시작되기 전 평화의 소녀상과 악수하거나 포옹했다. 영하의 날씨에 몸을 떨면서도 ‘일본은 사죄하라’, ‘할머니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 등의 팻말을 든 청소년들은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직접 준비해 온 따뜻한 차를 할머니들에게 따라 주는 고등학생들도 있었다.     

▲ 색동치마저고리를 입은 평화의 소녀상에게 어린이들이 인사를 건네고 있다. ⓒ 김성숙

이어진 자유발언 시간에 동티모르에서 유학 온 줄리아나 템파라자(42·여·한신대 신학대학원)씨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일본 정부가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를 겸허히 인정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희망과 연대, 해방의 의미를 지닌 노랑나비를 머리에 장식한 여러 학생 등 청중은 박수로 화답했다. 

오후 1시쯤 참가자들은 일본대사관을 향해 ‘사죄하라’ ‘보상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집회를 끝냈다. 질서 유지를 위해 ‘폴리스라인’을 만들었던 경찰 30여명도 철수할 준비를 했다. 폴리스라인 밖에서는 점심을 마치고 돌아가는 직장인들이 바쁜 발걸음을 옮겼다. 일본대사관은 이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할머니들과 참가자들은 ‘사죄를 받을 때까지’ 다시 모일 것을 기약했다. 


일제 강점기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가 처절한 고통을 겪었던 위안부 할머니들은 아직도 제대로 된 사죄를 받지 못한 채 과거를 부인하는 일본 정부의 망언에 가슴을 치고 있다하지만 그들의 아픔을 위로하며 일본의 반성과 사죄를 함께 촉구하는 젊은이들이 있어 할머니들은 외롭지 않다. ‘희망을 꽃피우는’ 소비 운동으로 역사관 건립을 돕는 청년들노래와 연극 등으로 할머니의 이야기를 전하는 문화예술인들매주 수요집회에 모여 위로와 응원을 건네는 젊은이들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청년기자들이 조명했다.(편집자)

* 이 기사는 KBS와 단비뉴스의 공동기획 '청년기자가 간다' 시리즈로 <KBS뉴스> 홈페이지와 <단비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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