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주제② 기업사회론

“2001년 무렵 참여연대에서 정책위원장 맡을 때 삼성 이건희가 이재용에게 편법으로 상속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몇 십억에서 출발해 수조원까지 가는 사건이었지요. 당시 참여연대가 삼성을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 하는 등 소액주주운동을 했습니다.” 

사회학자인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 2001년 참여연대가 삼성과 맞붙으면서 ‘기업사회’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강연을 시작했다. 

▲ 강연을 하는 김동춘 교수 ⓒ 안형준

또 하나의 경찰, 삼성

“당시 삼성에서 참여연대를 고소하는 바람에 경찰이 압수수색을 했습니다. 그런데 압수수색 중 참여연대측에서 컴퓨터를 뒤지는 경찰들이 어딘지 모르게 수상해 신분증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아니라 삼성직원이었어요. 공권력을 집행하는데 경찰이 전문성이 떨어지니 삼성직원이 온 것이죠. 한마디로 공권력이 농락당한 겁니다. 경찰이나 검찰이 아닌 삼성직원으로부터 수사 받는다. 이게 민주주의고 정당한 사회인가요? 기업권력이 국가 권력 위에 서게 된 현실을 발견하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지요.”

김 교수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대기업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국가 공권력 위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서 <1997년 이후 한국사회의 성찰>에서 한국 사회의 모습을 '기업 사회'라고 정의했다.

그가 말하는 기업사회란 칼 폴라니가 말한 바와 같이 ‘시장이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나와 자율적인 것이 되는 데 머물지 않고 시장이 사회를 식민지화한 상태’를 뜻한다. 시장이 사회조직 일부가 아니라 사회가 시장의 일부인 것으로 나타나는 상황, 기업이 하나의 사회조직이 아니라 모든 조직의 이상형으로 부각되는 현실이 곧 ‘기업사회‘ 이다.

“기업이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시장을 장악하고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입법, 행정, 사법의 영역까지 기업의 논리로 움직이게 된다면 국가의 공공성 영역이 심각하게 침해된다고 생각합니다." 

▲참여연대 소액주주운동 활동모습. ⓒ참여연대 제공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기업이 중심이자 주인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비단 기업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기관에도 기업사회 영역이 확장됐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제가 예전에 청주에서 시민단체 강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터미널에 내리자 '기업 하기 좋은 도시 청주'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습니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15분 동안 같은 현수막이 6개나 걸려 있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탄 지하철에서는 '기업 하기 좋은 나라 감사원'이라는 구호를 봤습니다."

김 교수는 청주와 감사원의 사례를 들며 우리가 사는 일상 속에서도 기업사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지방 중소도시에서 기업유치를 위한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는 기업을 감시해야 할 감사원이 기업을 위한 구호를 내세우며 기업 편을 든 것도 정부가 기업사회를 가속화하는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에 간접고용된 언론과 대학

“대기업 광고에 의존하는 언론의 기자나 PD는 간접적으로 대기업에 고용된 것이나 다름없어요. 한때 한겨레신문 전체 광고의 10%를 삼성에서 받았지요. 그런데 2008년에 그 10%에 해당하는 광고가 끊기니까 기자들 보너스가 끊기고 월급이 깎였어요. 기자들은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들들 볶이는 겁니다. 겉으로는 사명감으로 산다고 하지만 사명감이 밥 먹여주는 건 아니잖아요. 이런 일이 발생하면 한겨레 기자들도 속으로는 삼성이 광고를 주길 바라게 되죠. 하물며 대기업이나 건설회사로부터 더 많은 광고를 받는 언론사는 어떻겠어요? 이것이 간접고용 아닌가요?”

기업이 어떻게 사회를 잠식하고 있는가? 김 교수는 가장 먼저 대기업 광고 수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언론을 꼬집었다. 언론은 단순히 기업의 논리에 의해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소유에도 일정한 제한이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이와 같지 않다.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은 막대한 언론 기부금과 광고비 지출을 통해 언론기관의 보도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언론계의 현실을 ‘언론이 대기업에 간접고용되었다’며 비판했다.

“한번은 고려대학교에 갔더니 학생들이 축구하고 놀던 운동장이 사라지고 프랜차이즈 업체들과 지하주차장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 모든 물건을 살 수 있으니까 편리하다’고 말하더군요. 저는 그걸 보면서 ‘학교에 경찰이 상주하던 시대와 학교에 프랜차이즈가 들어와 있는 시대는 깊은 연속성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학문의 상아탑인 대학조차 기업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 경영학이 인기를 끌면서 인문학은 등한시되었다. 수많은 학생이 기업 입사 준비와 고시 공부에 매달리는 것은 대학사회의 일상적 풍경이다.

학교가 자본주의를 확산하는 양성소로 변해버린 셈이다. 김 교수는 이처럼 우리 사회가 빠르게 기업사회로 옮겨가게 된 계기를 사람들이 ‘과거 군사독제체제의 억압에 길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군사정권에 복종했고 지금은 기업이 권력이니까 기업에 복종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복종이라 생각하지 않고 복종을 효율의 이름으로 합리화한다. ‘재정이 빠듯하니까, 돈이 부족하니까’ 라고 하면서.

“기업사회 논리는 결국 군사독재 시절 병영문화와 같습니다. ‘목표를 이루면 수단은 다소 편법적이나 불법적이어도 괜찮다’는 생각에 우리 국민이 많이 길들여져 있는 것이죠. 결국 이런 길들여짐이 오늘날 우리사회를 도덕적 무방비 상태로 만들었고 자본주의의 천국인 미국보다 더 심하고 빠르게 기업사회로 변하게 했습니다.”

효율 지상주의에 젖어 과정이 아닌 결과를 중시하는 기업문화가 우리 사회에 정착하면서 사람들은 치열한 경쟁에 내몰렸고 사회는 개인으로 쪼개졌다. 김 교수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양극화와 자살문제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경쟁에 내몰린 사람들이 개인화해 자신이 처한 문제를 집단적 문제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경쟁을 하게 되면 경쟁에 유리한 사람들이 훨씬 더 유리해집니다. 반대로 불리한 사람은 훨씬 더 불리해지겠죠. 2000년 대 중반부터 새해 인사가 바뀌었어요. 사람들은 ‘부자 되세요’란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 말은 굉장히 폭력적이에요. 부자가 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부자가 되라는 것은 내가 부자가 아니면 죽으라는 소리와 같기 때문이죠. 내가 부자가 될 수 없는 이유를 개인에 두는 것이 바로 전형적인 기업사회의 폐해입니다.”

▲ 자본주의의 심화로 CEO형 총장이 주목받았지만 그 끝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 한겨레 지면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CEO가 가장 이상적인 리더 모델이 되었다. ‘기업 따라 배우기’, 한국의 잘나가는 ‘CEO처럼 되기’ 등 모든 조직에서 기업 경영 방법을 도입하고 CEO형 지도자가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고 있다.

“과거에는 CEO가 기업에서만 필요했는데 기업 사회는 물론 공직 사회에서도 유능한 CEO 인재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도 펀드를 많이 끌어오고 장학금 많이 끌어오는 CEO출신 총장이 유능하다고 인정받지요. 종교조직도, 엄마도 아빠도 사회에서 모든 역할이 CEO처럼 되었습니다.“

물론 김 교수도 ‘CEO형 인재가 부분적으로는 사회에 필요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에는 동의했다. 그러나 본령이 돈을 많이 끌어 오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는 “돈은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것이지만 잘못 사용되면 우리 사회를 오염시키는 것”이라며 ‘자본이 곧 권력’인 기업사회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기업이 사회를 잠식하면서 인간소외가 만연해진 우리 사회의 현실을 ‘신 노예사회’라고 지적했다.

신 노예사회로 가는 한국 사회

“과거 중세시대에 있었던 노예제도처럼 현재 우리 사회에는 신 노예사회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의 월급쟁이 절반은 반 노예처럼 살고 있습니다. 일터에는 비정규직이 늘어가고 이들은 정규직과 달리 각종 위험한 일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기업과 비 정규직의 관계를 전 근대 시절에 있었던 양반과 상놈의 관계와 다를 게 없다고 강조했다. ‘겉으로는 평등한 관계로 보일 수 있으나 실제 심각한 불평등관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레닌은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춘다’고 말했습니다.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져도 기업에 들어가면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이죠. 기업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업이 반사회적인 활동을 했을 때 국가가 나서서 징계하지 않으면 황소개구리가 생태계를 파괴하듯 기업 생태계가 무너지고 소비층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나중에는 기업도 죽게 되죠.”

김 교수는 “국가가 큰 기업을 잘 감시해야 작은 기업도 살고, 작은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들이 살아 소비가 증진되고 경제가 산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선 기업의 부도덕한 행위를 견제하는 “공공기관의 감시와 규제 기능이 확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사회교양특강>은 김현대, 박상훈, 전중환, 유시민, 김동춘, 이종현, 홍기빈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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