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 이종현 가천대 교수
주제① 신자유주의의 정치경제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신자유주의는 인간 탐욕의 산물이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어요. 인간이 조금만 욕심을 덜 부렸으면 신자유주의의 재앙을 막을 수 있었을까요?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신자유주의 비판에 골몰해 온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웃할 만한 이야기다. 이종현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사회교양특강’에서 “신자유주의는 한때 앙시앙 레짐(구체제)의 대안이었다”고 말했다. 비판에 앞서 신자유주의가 어떤 조건에서 태동했고, 진행됐는지 살피는 것이 우선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이 교수는 우선 2차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브레튼우즈 체제’를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약 25년간 지속된 이 세계경제질서에 균열이 발생했기 때문에 70년대 이후 경제질서가 신자유주의 체제로 넘어왔다는 것이다.

미국이 주무르던 자본주의 황금기

1930년대 대공황에 이어 2차세계대전을 거치며 각국이 펼친 무역제한조치와 외환통제로 국제통화질서는 위기를 맞는다. 자본주의 경제의 불안정성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국제통화질서가 필요했다.

▲ '신자유주의'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 이종현 교수. ⓒ 임종헌

“2차세계대전 종전을 앞둔 1944년, 전쟁이 마무리되어 간다고 판단한 서방국가들이 모여 세계무역기구(WTO)의 전신인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맺고, 국제통화기금(IMF)을 만들어 세계경제질서를 구축하자는 합의를 합니다."

1944년 7월 미국 브레튼우즈에서 44개 연합국대표들은 고정환율제를 도입해 금 1온스 당 35달러로 달러화 가치를 고정시키고, 달러를 기준으로 각국의 통화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하자는 합의를 했다. 이 새로운 통화질서가 바로 브레튼우즈 체제다. 이 교수는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은 실물과 금융이므로 이를 주관하는 국제적 시스템을 만든 것도 브레튼우즈 체제”라고 설명했다. GATT를 통해 관세장벽과 수출입 제한을 제거해 무역을 활성화하고, IMF를 통해 통화가치와 외환금융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합의를 한 것이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가능했던 이유는 미국이 전후 세계의 실질적인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전 세계 생산량의 50%를 생산하고 있었고, 통화 가치의 기준을 삼는 금은 전 세계 보유량의 70%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달러 중심으로 고정환율제를 운영할 수 있는 조건을 미국이 갖추고 있었던 겁니다.”

전후 25년간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시장은 황금기를 누렸다. 소위 케인지안 복지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 지속적인 성장을 바탕으로, 소득∙소비∙복지가 선순환하던 시기였다. 서구 자본주의 기준의 평가라는 한계가 있지만 자본주의 200년 역사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시기였다.

무너진 균형, 높아지는 자본주의 불신

브레튼우즈 체제의 균형은 1960년대 들어 깨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대외원조정책 ‘마셜 플랜’에 힘입어 영국, 프랑스 등 주요 유럽 국가들이 전후 복구와 함께 생산성을 회복했다. 일본도 빠르게 전후 복구가 진행돼 생산성이 올라갔다. 1970년대 이후 실물부문에서 국가간 생산성 격차가 좁혀지면서 미국의 국제수지가 악화됐다.

미국의 지나친 달러팽창정책도 발목을 잡았다. 1964년 미국은 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베트남전에 전면 개입하면서 전비 조달 목적으로 달러를 남발했다. 이 때문에 통화 기준인 달러의 가치가 급락했고, 미국에 달러를 금으로 바꿔달라는 금태환 요구가 쇄도했다. 이 교수는 “당시 미국은 이미 금태환 보장 한도 이상으로 달러를 발행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미국은 달러 가치를 유지할 수가 없었고 1971년 8월 닉슨 대통령이 달러화의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면서 고정환율제는 막을 내렸다.

▲ 프랑스의 경제성장률. ⓒ 펜월드테이블(PWT)

“60년대 후반부터 선진국들의 경제성장률이 5% 대에서 2% 이하로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장기 저성장 국면을 맞이합니다. 1970년에는 물가와 실업률이 같이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까지 발생해 선순환 구조에 균열이 생겼어요.”

이 교수는 또한 “국가의 시장개입을 정당화했던 케인지안 복지국가 시스템이 1960년대 들어 관료주의의 문제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더불어 비대해진 관료부문의 경직성과 비효율성이 나타나면서 대중들은 공공부문 시스템, 즉 국가를 불신하기 시작했다. 1968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5월 혁명을 계기로 경제∙사회∙문화 모든 부문에서 반자본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소련의 소비에트 아카데미에서는 자본주의 일반위기론을 들고 나와 자본주의는 이제 소멸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했어요.”

금융시장 고삐 풀리다

“7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점차 현실로 다가옵니다. 1차 석유 위기를 계기로 세계 산업구조가 변화했고, 변동환율제가 도입되면서 국제금융시장이 활성화했어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들이 석유자원을 국유화하면서 1973년에 1차 석유 위기가 발생했다. 배럴당 2달러 선이었던 원유가격은 20달러까지 올랐다. 이 교수는 “기존의 제철∙화학 같은 중후장대형 산업은 경박단소형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노동력을 줄이기 위해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컴퓨터 산업이 부상했다”고 설명했다.

변동환율제는 금융산업을 새로운 자본주의 질서의 주도산업으로 만들었다. 활발해진 해외투자가 새로운 이윤기회를 창출했다. 시장을 확대하고 이윤 기회를 넓혀야만 작동될 수 있는 자본주의 질서가 새로운 생존력을 확보하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산유국들은 막대한 오일 머니를 선진국 금융기관에 투자했어요. 투자를 받은 선진국 금융기관도 수익을 내기 위해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개발성장을 촉진했습니다. 금융산업이 경제의 세계화를 추동한 겁니다.”

80년대에는 본격적인 금융의 시대가 펼쳐진다. 수익증권, 즉 ‘펀드’가 이 시기에 등장했다. 수익증권은 금융기관별 각종 금융상품을 섞어 만든 복합상품이다. 이 교수는 “펀드 같은 새로운 금융상품의 개발이 금융시장을 더 활성화하고 확대하는 기능을 했다”고 말했다.

이 즈음부터 공장에서 생산한 상품을 판매해 돈을 벌던 회사들도 자산운용팀을 만들기 시작했다. 금융시장에 투자해서 성공하면 상품을 팔아서 버는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상업은행이 투자은행업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글래스-스티걸 법을 폐지하자는 논의가 나왔고, 결국 무력화했다. 이 교수는 “80년대는 금융 규제가 전면적으로 해제되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 학생들은 <사회교양특강>을 통해 인문사회학적 소양을 쌓고 있다. ⓒ 임종헌

금융 활성화의 빛과 그림자

이 교수는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질서는 구체제(브레튼우즈 체제)의 위기에서 태동한 나름대로 합리적 대안이었다”고 평가했다. 산업구조 변화, 금융 세계화, 해외투자 확대, 시장기능 강화는 불황에 빠진 세계 경제의 새로운 활로였다. 신자유주의가 경제성장을 이끈 긍정적 효과도 있었다는 말이다.

“79년 이후 중국의 개혁•개방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밑바탕에 거대한 해외투자 흐름이 있었어요. 80년대 이후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는 과정에서 동구권 경제를 큰 혼란 없이 수용할 수 있었던 데에도 세계화한 금융시장의 역할이 컸습니다.”

금융이란 실물경제와 달리 가공수요를 무한히 창출하는 혁신적인 영역이었다. 즉, 금융이 팽창하면서 수익기회를 무한히 확대하는 것이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중반쯤 국제 외환시장 거래의 단 2%만 실물거래를 변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강하게 이야기 하자면, 나머지 98%는 대부분 실물거래와 전혀 상관없는 투기적 거래라고 볼 수도 있죠. 그 후 탄생한 다양한 파생상품들은 부실채권까지 모아서 파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파생상품은 불안정성을 안고 가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낳는다. 파생상품은 금융의 가공수요를 계속 늘리는 역할을 했다. 금융이 팽창하면 수익기회가 무한히 확대될 것처럼 보인다. 그는 “그러나 무한히 팽창할 것 같은 가공수요의 거품은 언젠가 터진다”고 말했다. 90년대 이후 일본의 버블 붕괴, 90년대 후반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신자유주의 금융 시스템에 내재한 불안정성이 만들어낸 ‘구조적 위기’였다.

논문으로 받은 노벨상금, 투자로 날리다

브레튼우즈 체제와 신자유주의는 많은 차이가 있다. 국민경제 시스템에서 세계경제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실물경제보다 금융경제를, 국가규제보다 시장자유를 우선시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 교수는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안정적으로 성장한 자본주의에 위기가 도래했고, 그 돌파구로 신자유주의를 택한 것“이라 밝혔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스템도 문제가 발생했다. 노벨경제학상을 둘러싼 해프닝은 위기의 변곡점에서 나타난 극적인 일화이다.

▲ 1999년 2월 숄즈는 헤지펀드계를 떠난다. ⓒ 매일경제 지면
1998년 인도 출신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다. 그는 빈곤과 기아에 시달리는 인도의 현실에 주목하여 불평등과 복지를 중심으로 경제학을 연구했다. 이는 1997년 노벨수상자인 머튼과 숄즈의 연구 경향과 정반대였다. 머튼과 숄즈는 위험도 높은 선물상품의 가격 수준을 결정하는 모델을 개발해 옵션과 선물시장이 현실적으로 운용될 수 있는 전환점을 만들었다. 두 사람은 “수상 상금 100만 달러의 반은 쓰고 반은 금융시장에 투자하겠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금융시장이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이 발언은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이듬 해 미국 대형투자회사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가 파산위기에 처했다. 미국 정부는 36억5천만달러를 투입하여 LTCM의 파산을 막았다. ‘시장논리에 의해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기업은 파산해야 한다’는 미국의 기존 입장과  상반되는 조치였다. 재미있는 것은 머튼과 숄즈가  LTCM의 고문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교수는 “노벨상위원회는 1년 전 상을 줬던 이들이 파트너로 있는 투자회사가 세계 금융위기에 불을 지피자, 그들과 대척점에 있는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에게 노벨상을 수여함으로써 실수를 만회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가 세계경제 주변부에서, 롱텀캐피탈 사태는 중심부에서 발생한 1차 경고였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를 신봉한 이들은 별다른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그 결과 2008년에 중심지에서 큰 위기가 터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다. 세계경제의 중심 미국에서 시작한 위기는 전세계로 퍼졌다. 이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개별 국가의 건전성 규제 여부보다 신자유주의 금융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 동의하기 시작했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낙관보다 나눔이 필요한 시기

“인간이 단지 탐욕적이고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위기가 온 것이 아닙니다.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 성장을 위한 대안으로 7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선택한 것이죠.”

이렇게 등장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자본주의 질서에 또 다른 난제를 던졌다. 개발과 ‘지구’의 정면 충돌이 그것이다. 자본주의는 약탈할 수 있는 풍부한 자연자원이 있을 때 안정적이다. 잘 사는 나라는 투자를 통해 돈을 벌고자 하고 못 사는 나라는 개발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 이 교수는 제3세계 국가에서 개발은 인권문제와 같다며 “개발하지 않고 비참하게 사는 것은 인권이 파괴되는 것이며, 성장과 개발은 인간이 자유를 획득하고 인권을 실현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생존을 위한 개발이 지구적 차원의 환경문제를 야기하면서 전체의 생존 기반을 파괴하고 있다.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활동은 이처럼 생존과 또 다른 생존이 부딪치는 모순적 상황을 여실히 보여 준다.

“그린피스는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아마존 개발을 막기 위해 수십 미터 나무 위에 올라 개발을 저지하죠. 하지만 제3세계 국가에서는 당장 개발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어요. 개발을 막으려면, 개발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보상을 주어야 합니다. 그린피스에 그런 능력은 없죠.”

선진국이 가진 것을 내놓아 나누어 먹으면 된다는 말은 이상일 뿐이다. 아프리카 기근을 해결할 수 있는 식량의 양보다 서방세계에서 먹고 버리는 쓰레기가 더 많거나 비슷한 양이지만, 이를 조정할 수 있는 국제기구는 없다. 이 교수는 “나눌 수 있는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개발을 막는 것은 폭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발의 속도를 조절하지 않으면 자연자원의 부족과 환경문제로 지구 자체의 물리적 생존력이 파괴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우려한다. 진단이 심각해지면서 명쾌한 답을 찾기는 어려워졌다.

“위기는 항상 기회를 가지고 온다는 생각으로 미래를 낙관할 수 있다 해도, 현실적으로는 당장 무엇인가 나누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입니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대안으로 신자유주의를 선택했던 인류. 점점 줄어드는 자원, 장기 저성장, 불공정한 분배. 신자유주의의 위기에서 인류는 또 어떤 ‘합리적 선택’을 하게 될까?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사회교양특강>은 김현대, 박상훈, 전중환, 유시민, 김동춘, 이종현, 홍기빈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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