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기자포럼] ⑨ MSG 이야기

‘감칠맛’의 오해와 진실

한 손님이 돈을 넉넉히 내놓고 자장면을 시키며 말한다. “조미료를 먹으면 두드러기가 나니까 절대 넣지 마세요!” 진짜 두드러기가 나는지 궁금했던 요리사는 자장면에 조미료를 넣는다. 식사를 마친 손님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껏 중화요릿집 많이 다녀봤지만, 오늘이 최고였어!”

허영만 만화 <식객>의 한 장면이다. ‘조미료는 몸에 해로운 것’이라는 통념이 잘 나타난다. ‘참살이’니 ‘웰빙’이니 하면서 특히 MSG가 거부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무(無)첨가 식품들이 속속 등장했고 MSG를 쓰지 않는 ‘착한 식당’이 인기를 끌고 있다.

몸에 해로운 ‘인공화학조미료’로 알려진 MSG는 사실 위험한 물질이 아니다. MSG는 우리 식탁에 자주 오르는 사골국물이나 젓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감칠맛을 내는 성분이 사골국물에 있는 것과 같고, 젓갈을 발효시키듯 사탕수수를 발효시켜 만든 조미료다. 그런데도 유독 MSG만 냉대받는 이유는 뭘까?

잘못된 언론보도로 냉대

지난 4일 정승 식품의약품안전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식품기자포럼에서 이덕환(58)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잘못된 언론보도로 MSG에 대한 인식이 왜곡됐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 MSG에 대해 강연 중인 이덕환 서강대 교수. ⓒ 김동현

“MSG가 1급 발암물질이라는 언론 보도는 왜곡입니다. 1급은 Group1이라는 영어를 잘못 번역한 것이고, Group1은 1군을 의미합니다. Group1에 MSG는 포함돼 있지 않고 우리가 자주 섭취하는 알코올(술)과 젓갈이 포함돼있습니다. ‘군’은 인체 발암성이 확인된 물질을 나눈 것일 뿐, 발암성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이 교수 말대로 MSG는 언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최근 <채널A> 시사프로그램, ‘먹거리 X파일’에서는 MSG를 사용하지 않는 식당을 ‘착한 식당’이라 소개했고, 요리 프로그램에서는 천연조미료 사용을 권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MSG 비판에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 이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MSG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 인공조미료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은 조미료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을 심화한다. ⓒ <채널A> 화면 갈무리

우선 MSG의 명칭 문제다. MSG의 학술 명칭은 ‘L-글루탐산소듐’ 또는 ‘글루탐산나트륨’이다. 그런데도 언론에서는 ‘글루타민산’, 글루탐산염’으로 혼동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이 둘은 엄연히 다르다. MSG를 ‘화학조미료’라고 부르는 것도 잘못이다. 실제 MSG는 화학적 합성법 대신 사탕수수 잔여물로 미생물을 발효시켜 만들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천연조미료라는 말도 회사들의 마케팅 수단으로 등장한 것일 뿐 제조 방법은 MSG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조미료는 어떤 것이나 맛을 내는 원리가 비슷하다는 설명이다. MSG를 최초로 발견한 것도 다시마를 산분해하여 추출하는 과정에서였다.

‘마법의 가루’에서 ‘나쁜 첨가물’로

일본의 화학자 이케다 키쿠나에(池田菊苗)는 새로운 맛을 찾으려 했다. 그는 일본인이 즐겨 먹는 다시마 국물의 풍미가 기본 4가지 맛(단맛, 짠맛, 쓴맛, 신맛)의 혼합으로는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제5의 맛을 연구했다. 1908년 그는 드디어 다시마에서 새로운 맛을 내는 성분인 ‘MSG(Mono Sodium Glautamate)’를 분리해냈다. 그는 MSG가 내는 맛을 ‘우마미(うま味: 감칠맛)’라 칭했다. 다음 해 그는 MSG에 ‘맛의 정수’라는 뜻의 ‘아지노모토(味の素)’라는 상품명을 붙이고 대량생산했다. 싼값에 대량생산이 가능한 MSG는 세계 곳곳에서 사용됐다.

▲ 일제 강점기를 풍미했던 아지노모토 광고. 적은 양으로 감칠맛을 내는 아지노모토는 '약방 감초'였다. ⓒ 아지노모토

1968년, 상승하던 MSG 인기가 꺾였다. 미국 학술지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MSG가 많이 첨가된 음식을 먹고 어지러움을 호소하거나 얼굴에 붉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는 글이 실리면서부터다. 이런 증상은 중국 음식점에서 식사한 뒤 많이 나타난다고 해서 ‘중국음식점 증후군(Chinese Restaurant Syndrome)’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중국음식점 증후군’으로 확산된 MSG 문제는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식품의약청(FDA)과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MSG의 일일섭취허용량을 설정하고 신생아용 음식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MSG 사용량은 점점 줄었고 특히 가정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MSG에 관한 후속 연구들은 ‘중국음식점 증후군’과 MSG의 연관성을 입증하지 못했다. 1995년 미국 FDA는 ‘MSG는 일상적으로 먹을 수 있는 레벨’이라는 판정을 내렸고 미국에서 MSG에 대한 규제는 폐지됐다.

우리나라에는 일제 강점기에 MSG가 들어왔다. 이후 1962년 MSG를 식품첨가물로 지정했고, 현재 MSG 사용에 대한 별도 기준은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MSG를 ‘인체안전기준치인 1일 섭취허용량을 별도로 정하지 않은 ‘NS(Not Specified) 품목’이라고 밝히고 있다. ‘평생 먹어도 안전한 첨가물’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MSG의 주성분인 글루탐산은 우리 몸을 조절하는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멸치, 다시마, 쇠고기, 버섯 등 수많은 천연물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식품과 MSG를 통해 섭취하는 글루탐산은 똑같습니다.”

계속되는 불신과 우려의 목소리

안정성이 입증됐다는 보건당국의 발표에도 불신은 여전하다. 경북 포항시는 작년부터 전국 지자체 가운데 최초로 ‘MSG 사용 안 하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실험을 통해 유해성을 밝히려는 노력도 있다. 신생 쥐에게 MSG를 투여하면 비만 쥐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 밝혀졌고, MSG를 투여한 초파리는 번데기가 날개 있는 성충이 되는 비율, 곧 우화율이 떨어진다는 결과도 나왔다. 그러나 실험결과만으로 MSG가 인체에 유해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과다섭취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아무리 안전하다 해도 MSG를 너무 많이 먹으면 몸에 해롭지 않을까’ 하는 사람들의 인식은 변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MSG는 미각의 역치(한계치)가 작아서 많이 먹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MSG가 많이 첨가된 음식은 사람이 먹지 못할 정도로 거부감이 들기 때문에 과다섭취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논리다.

▲ 식품기자포럼에 참석한 청중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 김동현

MSG 자체의 유해성을 의심하지 않더라도 음식재료의 질 저하는 우려되는 부분이다. MSG를 사용하면 품질이 낮은 재료나 심지어 상한 재료도 감출 수 있다. 조미료 특유의 ‘감칠맛’이 원재료의 맛을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MSG로 값싼 육수를 만들고 이를 고기 육수로 속여 파는 경우나 오랜 시간 끓여야 맛이 나는 사골 대신 MSG를 넣어서 국물 맛을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MSG만으로 음식 맛을 내는 것이 가능한 시대다. 오랜 시간을 들여 육수나 장을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MSG가 첨가되지 않은 음식을 맛보고는 “밍밍하다”며 조미료를 찾는 게 현실이다. 우리 고유의 맛은 사라지고 감칠맛이 식탁을 장악하고 있다. 사람들이 단순히 과학 지식 부족 때문에 MSG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MSG에 의해 단순해지고 초라해져 가는 현대인의 식단에 대한 반감도 분명 있을 터이다.


*이 기사가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 주세요. (로그인 불필요)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