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기자포럼] 유산균 이야기

화장실에 가면 나를 한참 기다리게 하는 친구가 있다. 변비 탓이다. 얼마 전 어느 날도 화장실에 간 친구는 영 함흥차사더니 15분쯤 지나 누렇게 뜬 얼굴로 힘없이 걸어 나왔다. “화장실에서 힘쓰다가 왕(王)자 복근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친구 말이 ‘웃픈’(‘웃기다’와 ‘슬프다’를 합성한 속어) 순간이었다. 그 길로 편의점으로 향한 친구는 유산균이 필요하다며 캡슐 요구르트를 사 마셨다. 그것이 과연 변비 해소에 도움이 될까?

지난 6일 서울성모병원에서 열린 제5회 ‘한국식품기자포럼’에서 경희대 김동현 교수(약대)는 유산균에 대한 궁금증들을 속 시원히 풀어주었다. 김 교수는 ‘유산균의 역사’를 짚어보는 것을 시작으로, 유산균에 대한 잘못된 상식과 올바른 섭취법을 일깨워주었다.

인간의 ‘속’을 책임져온 유산균의 역사

▲ 경희대 약대 김동현 교수가 유산균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말하고 있다. ⓒ 허정윤

사실 우리는 유산균 관련 문명사를 좀 안다고 생각한다. 파스퇴르와 메치니코프의 이름이 유산균 제품 선전을 위해 많이도 불렸기 때문이다. 파스퇴르는 유산균을 만드는 데 중요한 성분인 초산균을 발견했다. 이어 현대 면역학의 아버지로 유명한 메치니코프는 불가리아와 코카서스 지방 농부들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비결이 발효시킨 우유에 있다고 여겨 연구 끝에 유산균을 발견했다.

이보다 훨씬 전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도 소화기에 가장 좋은 것은 발효식품이라 했다. 성경에서도 유산균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데 창세기 18장 8절에 아브라함이 버터와 우유를 먹은 기록이 남아있다. 이를 두고 김동현 교수는 175세까지 산 아브라함의 장수 비결에 발효된 산유, 즉 유산균이 한몫했다고 말했다. 이렇듯 유산균은 오래 전부터 인간의 ‘속’을 책임져 왔다.

유산균의 의미 있는 죽음

많은 유산균 제품 광고를 봐왔지만,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광고가 있다. 아기자기한 유산균 캐릭터가 캡슐 안에 들어가 위산을 이겨내고 장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모습은, 보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구매욕을 불러일으켰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유산균은 위산에 약해 장까지 가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유산균이 장까지 살아서 갈 수 있도록 코팅된 제품을 선호한다.

그렇다면 장에 이르지 못한 유산균은 인체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채 헛된 죽음을 맞이하는 걸까? 김동현 교수는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자문자답했다. 그는 “죽은 유산균이 살아있는 유산균의 먹이가 돼 유산균의 활성을 돕는다”며 유산균 효과를 기대한다면 코팅 제품을 섭취하는 것보다 꾸준한 유산균 섭취를 통해 장에 도착하는 유산균 수를 늘릴 것을 권유했다.

코팅된 유산균은 그 과정에서 손상을 입게 되고, 안전하게 장에 도달해 코팅이 벗겨질 때도 코팅을 하지 않은 유산균들에 비해 활동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코팅비용이 만만치 않아 코팅 유산균 제품은 비싸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다다익선’을 추구하는 게 소비자에게 유리한 방법이다.

식물성 유산균이 좋은 이유

모든 유산균이 산성에 약하다는 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사실 유산균 종류도 여러 가지다. 비피두스, 락토바실루스 카제이, 락토바실루스 아시도필루스 등 기능성 유산균은 산에 잘 견뎌 캡슐 없이도 위산에 죽지 않고 장에 도착한다. 특히 유제품 유통시장 대부분을 차지하는 동물성 유산균이 함유된 제품보다 김치나 청국장 등 전통 발효식품에 풍부한 식물성 유산균이 장에 더 좋다. 식물성 유산균은 평소 식단을 짤 때 좀 신경을 쓰면 추가비용 없이도 섭취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산성농도가 PH2.5로 같을 때, 동물성 유산균이 20~30% 생존한다면 식물성 유산균은 90% 이상 생존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식물성 유산균은 염도가 높고 산성이 강한 척박한 환경의 식물성 식품에서 배양되기 때문에 동물성 유산균보다 생존력이 강하다.

▲ 유산균이 함유된 대표적인 발효식품들. 우리나라 김치나 일본 다꾸앙 등의 식물성 유산균은 장에 부담이 가지 않고 칼로리도 낮다. ⓒ 허정윤

특히 다이어트를 위해 치즈나 요구르트 같은 동물성 유산균 제품 열량 섭취를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에게는 식물성 유제품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는 동물성 유산균 제품보다 적은 칼로리로 그보다 더욱 원활한 장 활동을 누리게 해준다. 동시에 장에서 흡수되는 지방의 양을 줄여준다. 그런 요소들이 건강한 다이어트를 할 수 있도록 도와 적당량을 섭취한다면 일거양득의 효과를 볼 수 있다.

항생제와 함께 먹으면 안 되는 유산균 제품

유산균은 메치니코프가 ‘불로장수설’을 자신할 정도로 많은 효능을 가지고 있다. 소화기관 건강도 지켜주고 체내 면역력도 높여준다. 또 헬리코박터균과 같은 유해균이 장내에서 발암물질을 생성하는 것을 억제해 소화기계 암을 예방하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려 고혈압으로 인한 뇌졸중과 심근경색의 발병률까지 낮춰준다. 이쯤 되면 ‘큰 병’도 유산균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유산균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균은 아니다. 김 교수는 장기이식을 받은 환자는 유산균 섭취를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식 장기는 수술 뒤 일정 기간 새로운 환경(몸)에 적응해야 한다. 이때 유산균이 필요 이상으로 면역력을 높이면 이식 장기가 온전히 환자 몸에 정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 <유산균이 내 몸을 살린다>의 저자이기도 한 김동현 교수가 유산균의 효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허정윤

이어 항생제를 복용하는 환자들 역시 유산균 제품을 먹을 때 두 성분의 성질을 잘 알고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항생제는 우리 몸에 해로운 ‘병균’을 박멸하기 위해 먹는 약이다. 다만 말 그대로 ‘균’을 죽이는 약이라서 유산균과 같은 유익한 균도 죽인다는 게 맹점이다.

이런 특징을 이해하지 못하고 항생제와 유산균 제품을 동시에 섭취하면 항생제는 박멸해야 할 ‘균’이 많아져 그 기능을 제대로 못 하게 된다. 결국 환자는 항생제와 유산균의 효능 중, 어느 것도 못 누리는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항생제를 먹는 동안만큼은 유산균 제품 섭취를 잠시 쉬는 게 좋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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