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기자포럼] 기후변화와 식품

기온 1도 오르면 전세계 생물 10% 멸종 위기

올 여름 날씨는 한나절 앞을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유난스러웠다. 두 달 넘는 긴 가뭄 끝에 내린 장마는 짧았고 이어서 18년 만에 처음이라는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수도권에서 지속된 난데없는 폭우는 태풍 ‘볼라벤’의 강풍으로 이어졌다. 이런 이상기후 조짐은 최근 몇 년 새 유독 짧아진 봄•가을과 길어진 여름으로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 박현진 고려대 교수가 '식품기자포럼'에서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크게 받은 농작물들을 설명하고 있다. ⓒ 허정윤

기후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건 농작물들이다. 태아가 자궁 속 알맞은 온도와 습도에서 자라는 것처럼 작물들도 적절한 기후조건이 갖춰져야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 기후가 들쑥날쑥하면 작물은 적응에 실패하고 낟알이 여물지 못한다. 농작물 수확량이 적으면 그 작물을 먹고 사는 인간에게 피해가 돌아올 수밖에 없다.

지난 6일 서울 성모병원에서 열린 제5회 ‘한국식품기자포럼’(회장 박태균)에서 고려대 박현진 교수(식품공학과)는 ‘기후변화와 식품’이라는 제목의 주제발표를 통해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의 정책과 국민의 인식을 우려했다. 포럼에서는 이 밖에도 경희대 김동현 교수(약대)가 ‘요구르트 이야기’, 유가공업체 다논코리아의 모진 대표가 ‘한국의 유제품 시장’, 식품의약품안전청 박혜경 영양정책관이 ‘농수산식품 정책’을 주제로 발표했다.

최근 나타나는 이상기후와 환경오염은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높아진 기온 탓에 각종 열대질병도 나타나고 있다. ‘기후변화와 경제학’ 보고서에 따르면, 평균기온이 1도만 상승해도 전 세계  생물 10%가 멸종 위기에 놓이고, 5000만명이 물 부족에 시달리며, 매년 30만명이 기후 관련 질병으로 사망하게 된다.

보성 녹차밭이 강원도 고성으로 옮겨간다면

박 교수는 “한국에서도 2001년부터 2010년까지 평균기온이 1도 상승했고, 부산의 경우 한 해에 20도가 넘는 날이 100년 새 22일이나 늘어났다”고 밝혔다. 국내 기후가 변하면서 우리는 대구 사과를 더 이상 맛볼 수 없게 되었다. 대구에서 재배되던 사과는 영월 등지로 재배지가 옮겨졌고, 제주도 한라봉은 김제에서, 청도 복숭아는 파주에서 재배되는 실정이다. 따뜻해진 해수 온도로 동해안에서 상어가 자주 출몰하고, 보지 못하던 성충이 산림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조만간 우리는 푸른 녹차 밭을 보성이 아닌 강원도 고성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 기후 변화로 이동한 농작물 재배지. 작물이 흑백으로 표시된 곳이 80년대 재배지이고 컬러로 표시된 곳이 30년 뒤인 2010년대 재배지이다. ⓒ 허정윤

재배지만 바뀐다면 별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지구 온도가 높아질수록 식량 생산이 줄어드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박 교수는 기후변화로 2080년까지 전세계 식량 생산량의 0.6~0.8%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 자료를 제시했다. 이는 섣부른 예측이 아니다.

최근 미국 주요 옥수수 재배 지역인 ‘콘-벨트’(Corn-belt)의 90%는 50년 만에 겪는 극심한 가뭄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가뭄이 들면 재배 작물인 옥수수, 대두, 콩, 쌀 가격만 크게 뛰는 게 아니라 이 작물을 먹고 자라는 소, 돼지 등 축산물도 함께 영향을 받는다. 미국 농무부는 이 가뭄으로 미국 소비자 식품 가격이 2.5~3.5% 오르고 소고기는 5% 상승할 것이라 발표했다.

식량자급률 낮은 한국에 큰 타격

박 교수는 “미국이 대다수 작물의 교역량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만큼 이번 흉년은 전 세계 흉년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곡물 수요의 70%를 수입에 의존할 정도로 식량자급률이 낮을 뿐 아니라 곡물 수입을 중개하는 에이전트도 전무한 실정이다. 이래서 미국 흉년에 따른 한국의 타격은 다른 나라들보다 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이 30% 이하로 떨어진 이유는 국민들의 달라진 식습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쌀을 주로 생산하는 우리나라의 곡물 재배 사정과 달리 국민들의 쌀 소비량은 점점 줄고 있다. 반면에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밀, 옥수수, 대두의 소비량은 점점 더 늘고 있다.

박 교수는 “1인당 열량 공급량은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열량 섭취량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며 “이러한 식량 낭비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량안보 위험 인식 수준이 얼마나 낮은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달라진 식습관과 세계시장 개방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지만, 식량 과소비와 낭비는 국민이 노력하면 줄일 수 있는 부분이다.

▲ 1인당 열량 공급량은 꾸준히 상승하는 반면 열량 섭취량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는 곧 식량 손실로 이어진다. ⓒ 허정윤

‘하루 세끼 식사의 행복’을 위해 지금 해야 할 일

▲ 식량 안보에 대한 국민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박현진 교수. ⓒ 허정윤

박 교수는 이상기후에 따른 식량안보 위험성을 자각하고 정부도 식량에 대한 안이한 생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쌀 자급 성과를 바탕으로 자급이 가능한 다른 식량을 증산하고, 전문 곡물 에이전트를 설립하는 한편 식량 외교통상 전문가를 육성하는 것 등을 위기 대응 방안으로 제시했다.

보다 거시적으로는 지구온난화를 막으려는 범지구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정책들은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비하자는 여론이 형성되어야 추진동력이 생기게 된다. 박 교수는 현재 그가 몸담고 있는 ‘기후변화대응 식품안전관리 연구사업단’을 통해 온라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기후 변화와 식량 위기 문제들을 알리는 노력들을 하고 있다.

춥다가 덥고, 건조하다가 습해지는 등 변화무쌍한 기후가 일상적 불편을 넘어 평범한 일일삼식(一日三食)의 행복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는 머지 않은 장래에 하늘을 쳐다보며 한 끼 식사에 감사해야 하는 날이 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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