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기자포럼] ⑧ 음식의 인문학

우리는 왜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사용하는 식습관이 생겼을까? 왜 곡물을 주식으로 하고 찌개 하나를 여럿이 나눠 먹을까? 왜 식사할 때 양손을 사용하거나 그릇을 들고 먹는 걸 못하게 할까? 우리에게는 당연한 ‘밥상 예절’이지만 외국인 눈에는 궁금한 점 투성이다.

▲ 우리에게 익숙한 한식 상차림은 한국 사회의 역사적, 사회문화적 맥락을 담고 있다. ⓒ 정책공감 블로그

음식문화는 역사적 경험과 자연환경 등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에 나라별, 지역별 특색이 뚜렷하다. 음식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개인 식습관을 알면 그 사람뿐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의 특성까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오랜 습관이 만든 음식문화는 다양한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지난 6일, 서울성모병원에서 열린 제8회 ‘한국식품기자포럼’(회장 박태균)에는 식품 관련 기자, 교수, 의사, 업계 종사자 등 20여 명이 참석해 강연을 듣고 토론을 했다. 포럼에는 다양한 의제들이 등장했는데, 식품의약품안전청 강백원 영양정책과장이 식품업계 현안인 ‘신호등표시제’의 현황과 계획을 발표했고, 오혜영 식품기준부장이 식품 등의 기준과 규격을 설명했다. 또 광주요 조태권 대표는 한식의 세계화에 대해 주제발표를 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교수(민속학)는 ‘음식의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식품 소비를 사회문화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에 대해 발표했다. 주 교수는 문화인류학과 민속학을 전공한 음식 전문가로 <맛있는 세계사> <음식 인문학> <음식전쟁 문화전쟁> 등을 저술했다. 

우리는 왜 포크와 나이프 대신 수저를 쓸까

음식이 문화적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것이 ‘선택된 것’이기 때문이다. 주 교수는 인간을 ‘조리하는 동물(cooking animal)’이라고 표현했는데, 여기서 ‘조리’는 실제로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어떤 그릇에 담고 어떤 도구를 사용하고 어떤 식탁에 놓고 어떻게 먹도록 하는가까지 다 포함한 의미다. 그는 이런 특징은 여러 동물들 중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 안에서 조리하는 방법, 자연환경, 역사적 경험이 기술로 만들어져 하나의 문화적 특성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주 교수나 다른 학자들의 저서 등을 참고해서 설명을 덧붙인다면, 우리 밥상도 이런 문화적 특징을 지닌다. 성리학을 중시했던 조선 시대를 거치며 우리 음식 문화는 중국 <주례(周禮)>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조선 시대까지는 부부도 겸상을 하지 않고 따로 밥상을 받는 전통을 지켜왔다. 밥상의 크기와 모양이 다양한 것은 그 이유다. 하지만 식민지 시대와 전쟁, 근대화를 거치며 한 상에 둘러앉아 먹는 문화로 바뀌었다.

▲ 양 손을 사용해 밥을 먹는 습관은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젊은층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는 일본식 우동이 국내에서 유행하면서 자연스러워졌다. ⓒ 주영하

동양에서 나이프와 포크 대신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는 식사법은 요리법과 함께 발달해 온 것이다. 동양에서는 한 입에 먹을 만한 크기로 음식을 만들어 수저를 사용하는 것이 더 편리했다. 수저를 함께 사용하는 것은 <주례> 예법에도 나온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중국에서는 숟가락 사용이 일반적이었지만 명나라 중기 이후 점점 줄었는데, 이는 차의 발달로 국물이 있는 음식이 차츰 적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한다. 반면 한국음식은 국물이 있는 음식과 없는 음식을 병행해서 상을 차려 수저를 함께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식기도 숟가락 사용과 연관이 있다. 중국의 식기는 도자기였고 일본은 도자기나 나무로 만든 칠기였다. 이들은 비교적 가벼워 손으로 들기 편했는데, 우리는 주로 보온에 유리한 무거운 놋쇠그릇을 사용했다. 중국이나 일본처럼 밥을 덜어 먹는 작은 그릇을 쓰지도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밥그릇을 들고 먹는 습관이 정착되지 않은 이유이다. 식습관이 하나의 규범이 되어 어릴 적 그릇을 들고 식사를 하면 야단을 맞기도 했던 것이다. 

국가정책도 우리 입맛을 좌우한다

식습관에는 계층적경제적 요인도 작용한다. 같은 지역과 문화영역에 속하는 사람들이라도 소속 계층이나 지역에 따라 특정 음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이 음식을 선택하는 맛의 기준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 학습으로 습득한 것이어서 개인의 입맛은 일차적으로 가족이 가진 문화적 속성에 따라 자리 잡게 된다. 이후 학교와 군대 생활을 통해 변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국가 정책도 우리 입맛을 좌우하는 한 원인이 되는 셈이다.

주 교수는 197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유행한 음식들을 살펴보면, 국가의 정책과 도시의 확장이 특정 음식을 전국적으로 유행시키는 양상을 보여왔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전주비빔밥을 들 수 있다. 한식의 세계화가 국가 차원의 정책과제가 되면서 궁중에서 먹었던 전주비빔밥이 전국 브랜드로 자리 잡았는데, 이 과정에서 다양한 지역의 특색 있는 비빔밥이 그 색을 잃게 됐다.

▲ 음식의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는 주영하 교수. ⓒ 이보람

그는 이처럼 지역에 가서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줄어들고, 오래된 지역 식당보다 획일화한 음식점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모습은 우리나라만의 특성이라고 했다. 식재료 맛이나 양념의 배합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전국적으로 표준화하는 현상은 특히 70년대 이후 두드러졌다고 한다.

분식이 좋다더니 쌀밥이 좋다고 말 바꾼 영양학

“산업혁명 이후 음식은 권력이 됐습니다. 산업혁명과 대량생산, 플랜테이션 농장의 착취, 소비의 집중화, 식품유통의 전지구화, 방부제를 비롯한 식품첨가물, 영양학과 위생의 정치학… 특히 서구중심 사고에서 세계적으로 서구 음식을 유통시키기 위해 영양학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정치적으로 이용된 측면이 있습니다.” 

주 교수는 우리의 선택이라 생각했던 입맛이 누군가의 의도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일본인들은 세끼 중 한 끼를 밀가루 음식으로 소비하는데 그 배경 중 하나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잉여농산물 유입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밀가루 소비가 늘어난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전쟁 후 미국 정부는 ‘상호안전보장법(MSA) 402’를 근거로 그들의 잉여농산물을 사도록 강요했다. 이는 1954년에 기존 법을 개정하면서 원조를 제공받는 국가가 원조액의 일정 비율로 미국 잉여농산물을 구매하도록 한 규정인 402조가 더해진 것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농촌 생산시스템을 대량체제로 바꾸면서 과잉생산이 발생했다. 전쟁에 참전하면서 군인 식량으로 이를 소비했고 전쟁 후에는 서유럽에 군사동맹을 내세워 농산물 수입을 강요했다. 한국전쟁도 또 다른 소비처였다. 휴전 이후 새로운 조처가 필요했던 미국은 ‘402조’를 이용해 자국 농산물 소비를 촉진했다. 

▲ 혼분식장려운동을 홍보하는 대한뉘우스. 쌀 소비를 줄이고 구호품인 저렴한 밀 소비를 늘리려고 1969년에는 매주 수요일을 '분식의 날'로 지정했다. ⓒ 대한뉘우스 화면 갈무리

아울러 1954년 7월 미국의회는 그 조항을 개정해 ‘잉여농산물처리법(PLO480)’을 성립시켰는데 이 법에 미국의 잉여농산물을 원조국의 빈곤층 원조, 재해구제 원조 그리고 학교급식에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1955년 이후 국민학교에 식빵과 밀가루가 무상으로 공급된 계기가 바로 이것이다. 이때부터 밀가루를 재료로 한 수제비와 칼국수 등이 가정에서는 물론이고 식당에서도 끼니를 해결하는 데 쓰였다.

이 법에는 구입한 잉여농산물을 효과적으로 소비하기 위해 영양교육을 시행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겨있어 당시 학자들 중에서는 쌀 소비를 줄이고 면류 음식을 개발해 영양가를 높이자고 주장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주 교수는 “1989년쯤 국내에 쌀이 남아돌 때 학회에 가니까 밀가루로 만든 분식이 좋다고 하신 분들이 다시 쌀이 좋다고 말씀하시더라”며 영양학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문제를 지적했다.

농식품정책에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

미국에서는 인문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을 결합한 ‘푸드 스터디(food study)’를 만들어 종합적으로 음식 문화를 분석한다. 이 연구는 음식 역사에 대한 연구, 식품ㆍ조리학적 관점에서 ‘공공영양’에 관심을 둔 연구,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음식에서 나타나는 다문화 현상에 대한 연구 등 3가지 방향에서 이뤄지고 있다.

주 교수는 우리나라도 기존의 역사 이야기에 치중한 분석이나 개인 차원의 연구를 넘어 학문적 영역에서 공유하는 음식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언론이 농ㆍ식품 정책, 영양에 대한 공공정책을 무비판적으로 다루는 것은 인문학적 고민이 없기 때문이라면서 식품 소비와 관련된 사회문화적 요소를 어떻게 해석하고, 문제점이 있다면 어떻게 저항할 것인지에 중점을 두고 인문학적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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