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김희진 기자

 

▲ 김희진 기자

영화 <26년>을 보다가 아버지 생각이 났다. 1980년 5월 광주의 ‘그날’, 아버지는 계엄군이었다. 어린 시절 TV에서 광주 항쟁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나는 철없이 묻곤 했다. “아빠도 그럼 총 쐈어? 사람도 때렸어?” 아버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랬지”하곤 말끝을 흐렸다. 아버지 표정에 회한이 지나가는 듯했다.

아버지가 광주에 투입된 것은 제대 6개월 전이었다. 그때는 누구를 위해 총을 겨눠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몽둥이를 휘둘러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일개 병사에게 ‘판단할 권리’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분대장으로서 공포에 휩싸인 분대원을 이끌고 시민군과 맞서야 했던 아버지 역시 겁에 질린 스물다섯 청년이었다. 딸의 눈에는 아버지도 피해자의 한 사람일 뿐이었다.

문제는 학살을 지시한 사람들이다. <26년>의 줄거리는 학살을 지시한 ‘그 사람’을 단죄하기 위해 희생자 2세들이 모여 작전을 펼친다는 것이다. 광주 건달, 국가대표 사격선수, 경찰의 조합이라니, 황당한 설정이다. 게다가 암살을 주도하고 계획한 사람이 다름 아닌 계엄군 출신 대기업 총수라니 원작인 만화적 발상답다.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광주의 그날이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국가의 폭력 앞에 스러져 간 자는 무고한 시민들이었다. 공식 사상자 수 4122명. 그 뿐이랴? 사랑하는 가족이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이들은 가슴에 무덤을 안고 살아가야 했다. 영문도 모른 채 성난 군중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야 했던 젊은 영혼들은 밀려오는 죄책감에 두고두고 절망했을 터이다. 이 모든 사건 위에 서 있던 한 사람, 단 한 번 진정한 사죄도 없이 광주항쟁을 ‘폭동’이라 말한 그 사람들은 어쨌든 ‘선거’를 거쳐 두 번이나 내리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다시 대통령을 뽑는다. 한 나라 국민의 운명이 상당 부분 한 사람에게 맡겨지는 대통령제에서 대통령 선거만큼 중요한 행사가 또 있을까? 국민 위에 군림하고 사리사욕을 채우기보다 국민의 편에 서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대통령을 뽑는 것은 우리 청년들에게도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대학입시와 취직, 결혼의 문제처럼 살아가면서 더없이 신중하게 따져보고 선택해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대선이 코앞에 닥친 지금, 새 정치에 대한 열망조차도 어떻게 수렴될지 매우 불투명하다. 단일화의 벽을 넘지 못한 ‘안철수 현상’은 문재인 후보를 통해 성취될 수 있을 것인가? 박근혜 후보는 구체적 정치쇄신 방안을 내놓기는커녕 새 정치의 유력한 수단인 TV토론까지 기피하고 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곳에서는 “투표권을 포기함으로써 투표권을 행사하겠다”는 글도 보인다. 여론조사 결과는 아직도 부동층이 10%에 가까운 것으로 나온다. 영화 <26년>은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개봉 6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데 그 열기는 과연 투표장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뽑을 후보가 마땅치 않거나 선거운동이 ‘네거티브’에 크게 의존해 실망한 유권자들로 가득한 선거에서는 투표율이 낮을 뿐 아니라 감정에 의존해 표를 던지기 십상이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1996년 러시아 대선을 떠올려 보자. 지지율 6%였던 옐친은 ‘스탈린 시대’ 공포를 조장하는 네거티브 전략을 펼쳐 53.8%의 지지율로 재집권했다. 안개가 걷힌 뒤 드러난 현실은 회복 불능의 불황과 정치의 퇴보가 아니었던가? 궁극의 피해자는 유권자이다.

‘실망’이 ‘포기’가 되어서는 안 되리라. 지도자 선출은 동시에 나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잘못된 선택으로 무고한 다수가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타협’이란 말도 있지만, 선거는 어쩌면 최선이 아니라 차선을 택해야 하는 행사인지도 모른다.

민주화를 위해 피를 흘리거나 정신적 외상으로 지금도 고통받는 사람이 많은데, 내게도 민주주의를 위해 할 일이 있다면 그 자체가 보람 있는 일 아닌가? 투표를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에서 ‘그 사람’을 단죄하는 것은 ‘가상현실’에 그치겠지만, 투표의 결과는 앞으로 5년간 우리의 ‘진짜 현실’을 좌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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