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선거철 총선 후보들의 오락성 ‘숏폼’ 유행

이제 숏폼(short-form, 16:9 세로 비율의 1분 남짓 영상을 주로 가리킨다)을 소비하지 않는 청년 세대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2016년 중국 IT 기업 바이트댄스가 숏폼 동영상 플랫폼 ‘틱톡’을 출시한 지 불과 8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이 작년 10월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5%가 숏폼 영상을 시청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연령대가 낮을수록 숏폼 이용 비율이 높았고, 60대 이상 고령층의 비율도 약 60%로 절대 적지 않았다. 나이를 불문하고 거의 모든 세대가 숏폼에 익숙해진 것이다.

숏폼의 매력이 무엇일까. 숏폼 이용자가 그저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의 화면을 쓸어 올리기만 하면 국내외 크리에이터가 제작한 짧고 흥미로운 비디오가 끝없이 그리고 무작위로 쏟아져 나온다. 재밌는 비디오를 시청하기 위해 이용자는 콘텐츠를 선택하는 노력조차 들일 필요가 없다. 1분 남짓의 짧은 길이도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를 지향하는 젊은 세대에게 매력적인 요소다. 이는 제작자에게도 마찬가지다. 길이가 짧으니 편집하는 데 부담이 없고, 세로 비율의 영상이라 카메라를 따로 구매할 필요 없어 진입 장벽이 낮다.

이제 연예인, 인플루언서, 개인뿐만 아니라 근엄한 이미지의 언론사나 국가 기관도 숏폼의 매력에 빠져 이를 적극 생산하고 있다. 뉴스를 TV가 아닌 SNS에서 접하는 청년 세대를 위해 언론사는 자신들의 SNS에 뉴스의 하이라이트를 따로 편집해 올린다. 정부 기관도 유튜브 쇼츠를 사용해 중요한 정책 안건과 이슈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숏폼 영상은 유쾌할수록 높은 조회수를 기록할 수 있다. 숏폼은 딱딱하고 알찬 메시지 대신 재미를 추구하는 데 최적화된 포맷이기 때문이다. 이용자가 10분 이상의 ‘롱폼’에서 보였던 인내심은 숏폼의 세계에서 필요하지 않다. 어쩌다 눈에 띈 영상이 마침 흥미롭다면 이용자들은 곧장 친구에게 공유한다. 그러다 가끔 영문도 모르게 ‘터진’ 영상이 나온다. 틱톡에서 조회수 2억 회를 넘긴 10초짜리 영상 ‘슬릭백 챌린지’처럼 말이다.

총선에 불어온 숏폼 챌린지 열풍

2020년대 들어 숏폼이 큰 반향을 일으키자, 콘텐츠 제작자들이 트렌드에 맞춰 발 빠르게 움직였다. 숏폼에 새로운 참여자도 등장했다. 바로 유권자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정치인들이다.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신선한 홍보 전략이 필요한 후보자들은 앞을 다퉈 청년들이 모여 있는 숏폼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2022년 대선은 ‘숏폼 마케팅’의 서막이었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탈모 치료 관련 공약을 15초에, 윤석열 전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전기차 충전 요금 동결’ 등 공약을 59초에 담아 유튜브에 공개해 호응을 얻었다.

짧은 시간 내 메시지 전달을 목적으로 숏폼을 제작하던 2022년 대선 때와 달리, 이번 총선 후보자들의 숏폼 활용법은 조금 다르다. 만약 SNS를 즐겨 본다면 당신도 이미 보았을 것이다. 한 국회의원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최근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하이디라오 나루토 춤’을 추는 한 영상은 2월 중순 기준 조회수 누적 700만 회를 기록했다.

유지곤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가 국회의사당 앞에서 ‘하이디라오 나루토 춤’을 추고 있다. 나경원 국민의힘 예비후보가 인스타그램 계정 ‘CAST U'가 제작한 릴스에 등장해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좌측 유지곤, 우측 CAST U 인스타그램 갈무리
유지곤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가 국회의사당 앞에서 ‘하이디라오 나루토 춤’을 추고 있다. 나경원 국민의힘 예비후보가 인스타그램 계정 ‘CAST U'가 제작한 릴스에 등장해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좌측 유지곤, 우측 CAST U 인스타그램 갈무리

중국어가 흘러나오는 배경 음악에 맞춰 발끝을 번갈아 가며 세우며 팔을 휘두르는 ‘나루토 춤’, 춤과 어울리지 않는 국회의사당 배경 그리고 단정한 옷차림. 이 영상의 주인공은 유지곤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다. 총선 출마를 앞둔 유 후보는 2월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초등학생) 딸과의 약속” 때문에 춤을 추게 되었다며 영상을 공개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특이한 춤을 정치인이 완벽하게 소화하는 모습은 보는 이의 웃음을 자아낸다. 댓글을 통해 이용자들끼리 즉각적인 소통을 할 수 있는 SNS 속에서 유 후보는 호의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자신을 희화화한 콘텐츠로 친근한 이미지를 얻은 것이다.

이번 총선 예비후보들 사이에서 오락성 숏폼 붐을 일으킨 또 다른 정치인은 나경원 국민의힘 예비후보다. 나 후보는 작년 12월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을 대상으로 길거리 인터뷰를 진행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CAST U'에 깜짝 등장해 자기 외모 점수를 묻는 말에 유쾌하게 답했다. 이 영상은 여러 언론사에 보도되며 신선하다는 반응을 얻었다. 그 후에도 나 후보는 제한된 시간에 법학적성시험을 푸는 콘텐츠, 개그 유튜버 '피식대학'의 콘텐츠를 모방한 퀴즈쇼 콘텐츠를 본인의 인스타그램 릴스(인스타그램 숏폼)에 올려 화제를 모았다.

좌측에서부터 김기남 국민의힘 예비후보의 ‘뽀삐뽀 챌린지’,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의 ‘MBTI 챌린지’, 이창성 국민의힘 예비후보의 ‘은행 플러팅 챌린지’, 박정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의 ‘슬릭백 챌린지’ 영상이다. 김기남·이수진·이창성·박정 인스타그램 갈무리
좌측에서부터 김기남 국민의힘 예비후보의 ‘뽀삐뽀 챌린지’,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의 ‘MBTI 챌린지’, 이창성 국민의힘 예비후보의 ‘은행 플러팅 챌린지’, 박정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의 ‘슬릭백 챌린지’ 영상이다. 김기남·이수진·이창성·박정 인스타그램 갈무리

두 정치인이 도전한 숏폼은 청년층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른바 ‘챌린지’를 모방한 것이다. 챌린지는 특정 문제나 노래, 춤에 도전하는 SNS 밈을 말한다. 먼저 챌린지에 뛰어든 정치인들의 숏폼이 긍정적인 반응을 얻자, 많은 총선 후보가 각종 챌린지 영상을 촬영해 자신의 SNS에 공유하기 시작했다. 김기남 국민의힘 예비후보는 반려동물을 뽐내는 ‘뽀삐뽀 챌린지’, 이수진 민주당 예비후보는 성격을 테스트하는 'MBTI 챌린지‘에 참여했다. 이창성 국민의힘 예비후보는 은행 이름이 등장하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은행 플러팅 챌린지’, 박정 민주당 예비후보는 미끄러지듯이 옆으로 뛰어가는 ‘슬릭백 챌린지’ 영상을 만들었다. 전통 시장에서 시민을 만나던 선거 운동이 온라인으로 옮겨져 ‘유행 따라잡기’로 변모한 것이다.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총선 후보들의 챌린지 사랑은 당분간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덕분에 한바탕 웃었지만, 영상을 시청한 후 찝찝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유행을 따르다 보니 한차례 웃음밖에 남지 않은 이번 총선 후보들의 숏폼 활용법, 이대로 괜찮을까.

정치인이 재미만 쫓는 숏폼을 생산하는 이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틱톡 계정에 올라온 영상 속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두 개의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밸런스 게임’을 하고 있다. 영상 중반엔 눈에서 붉은색 레이저가 나오는 이미지도 등장했다. 이 인물은 바이든의 '부캐' ‘다크 브랜든’이다. 조 바이든 틱톡 갈무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틱톡 계정에 올라온 영상 속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두 개의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밸런스 게임’을 하고 있다. 영상 중반엔 눈에서 붉은색 레이저가 나오는 이미지도 등장했다. 이 인물은 바이든의 '부캐' ‘다크 브랜든’이다. 조 바이든 틱톡 갈무리

젊은 세대의 표심을 확보하기 위해 숏폼을 적극 활용하는 건 해외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미국 최대 스포츠 축제라 불리는 슈퍼볼(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 결승전) 당일인 지난 1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틱톡 계정에 27초짜리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 속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슈퍼볼 승리팀을 예상해보라, 트럼프와 바이든 중 한 명을 뽑아보라는 양자택일 질문을 받았다. 이른바 ‘밸런스 게임’이다. 그러나 해당 영상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비난받았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부터 중요한 정보가 모기업인 바이트댄스를 통해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며 연방정부 공무원의 틱톡 사용을 금지해 왔기 때문이다. 공무원에겐 사용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선거철이 다가오니 자신의 틱톡에 영상을 올리는 모습에 ‘내로남불’ 논란이 불거졌다.

왜 정치인들은 숏폼 영상에 집착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제작한 숏폼이 알고리즘에 포착되면 저렴한 비용으로 엄청난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유지곤 후보의 ‘나루토 춤’ 숏폼은 인스타그램에서 23만 회 이상 공유되었다. 나경원 후보가 법학적성시험을 푸는 영상도 조회수가 200만이 넘었다. 선거를 앞둔 후보자들에게 숏폼은 젊은 층에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훌륭한 홍보 도구다.

문제는 후보자들이 숏폼이 불러올 화제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2022년 대선 때만 하더라도, 숏폼은 주로 공약을 쉽고 빠르게 설명하는데 사용되었다. 물론 당시에도 재미만을 겨냥해 제작된 정치인의 숏폼이 있었다. 박용진 의원은 걸그룹 브레이브걸스의 ‘롤린’ 춤을 추는 영상을 올렸고,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힙’한 옷차림으로 춤을 추는 영상을 올렸다. 잠시 화제를 모으긴 했지만, 이렇게 정치적 메시지가 없는 단순 오락성 영상은 지금만큼 유행처럼 번지지 않았다.

숏폼 하는 정치인, 무엇으로 기억해야 하나

정치인의 선거 전략은 미디어의 진화와 함께 변화해 왔다. TV 연설과 토론, 그다음엔 유튜브와 트위터, 이젠 숏폼이다. 영상은 가공된 이미지고, 숏폼은 그 특징이 극도로 증폭된 장르다. 편집자의 손길이 닿아 배경음악이 추가되고, 자막이 들어간다. 출연자의 실수는 자를 수 있고, 완벽한 모습만 보여줄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1분 안에 끝난다. 1분짜리 숏폼엔 맥락이 없으며, 숏폼의 시청자 머릿속엔 단편적인 이미지만 남을 뿐이다.

알고리즘을 타기 위해 재미를 강조한 영상들은 웃음기만 남아 있는데, 우린 ‘웃기기만 하는’ 후보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평가해야 할까. 소탈함은 후보자의 매력적인 덕목이다. 그러나 진정한 소탈함은 평소 언행에서 자연스레 묻어나오는 것이지, 편집된 짧은 영상 속에서 잠시 보이는 것이 아니다. 웃기기 위해 제작한 영상을 본 시청자들이 재밌다고 느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재밌다고 해서 꼭 믿음직스러운 정치인인 것은 아니다.

선거를 앞둔 후보들이 길거리에 나가 시민들과 눈을 맞추고 손을 잡으며 안부 인사를 건네는 것이 지금까지 관습이 된 이유가 있다. 그곳에선 서민, 소상공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고, 덤으로 ‘친서민’ 이미지까지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철에만 모습을 보이는 일부 정치인의 행보를 비난하며, 사람들은 이를 소통이 아닌 ‘쇼통’(Show通)이라고 풍자해 왔지만, 챌린지 영상을 촬영하는 정치인의 숏폼 시대엔 그마저도 귀하게 느껴진다.

이미지만을 내세우고, 이미지만으로 휘둘리는 정치를 성숙한 정치로 보기 어렵다. 현란한 춤사위, 노래 실력과 재밌는 챌린지로 만들어낸 이미지만으로 우리는 그가 또는 그녀가 우리를 대변할 정치인이 될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없다. 만약 총선 후보의 챌린지를 우연히 보게 된다면 피식 웃더라도, 경계하고 또 묻자. 챌린지의 주인공은 과연 좋은 국회의원이 될 수 있을까. 1분짜리 영상은 그저 편집된 현실이라는 걸 우린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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