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미디어에서 사용되는 사투리

‘기강 잡힌’ 미디어 사투리

최근 소셜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화제가 된 영상이 있다. 바로 유튜브 채널 ‘하말넘많’(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지만의 줄임말)이 게재한 ‘미디어 사투리 기강 잡으러 왔어예’이다. 지난달 29일 업로드된 해당 영상은 20일 기준 조회 수 176만 회를 기록, 댓글 수만 3400개가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영상에서 대구 경북 지역의 사투리를 가르치는 유튜버 강민지는 인터넷 강의 일타 강사의 모습으로 미디어에서 어설프게 사용되는 대구 경북 지역의 사투리를 바로잡는다.

유튜브 채널 '하말넘많'의 한 장면. 유튜버 강민지 씨가 사투리로 인사하며 등장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하말넘많' 화면 갈무리
유튜브 채널 '하말넘많'의 한 장면. 유튜버 강민지 씨가 사투리로 인사하며 등장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하말넘많' 화면 갈무리

그는 영상에서 “안녕하시소”라고 인사하며 등장한다. 대개 미디어 속 경상도 사투리 인사말은 “안녕하이소”로 발음된다. 그런데 “안녕하이소”라는 말은 부산과 경남 지역에서 주로 사용되는 사투리다. 경상북도와 경상남도 사투리의 미묘한 차이를 파악하지 못하는 서울 지역의 미디어 제작자들이 전체 경상도를 대표하는 인사말로 흔히 사용한다. 이 때문에 대구 경북 지역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안녕하시소”라는 그의 첫인사는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시청자의 귀를 쫑긋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실제로 많은 댓글이 그의 첫인사만으로 영상 전체의 신뢰도가 올라갔다고 반응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지난 2일, ‘하말넘많’은 최근 방영된 <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이하 내남결)’에 등장한 경북 사투리를 ‘진짜 경북 사투리’로 고쳐보는 내용의 새 영상을 올렸다. 해당 영상 역시 조회 수 150만 회를 넘을 정도의 인기를 끌었으며 인스타그램과 같은 다른 소셜네트워크로 확산됐다. 

드라마 흥행의 열쇠

'소년시대' 2화의 한 장면과 '내 남편과 결혼해줘' 3화의 한 장면. 두 드라마는 사투리 사용으로 정반대의 반응을 얻었다. 왼쪽 '소년시대'는 쿠팡플레이 화면 갈무리이며 오른쪽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유튜브 화면을 갈무리했다. 그래픽 양진국
'소년시대' 2화의 한 장면과 '내 남편과 결혼해줘' 3화의 한 장면. 두 드라마는 사투리 사용으로 정반대의 반응을 얻었다. 왼쪽 '소년시대'는 쿠팡플레이 화면 갈무리이며 오른쪽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유튜브 화면을 갈무리했다. 그래픽 양진국

‘하말넘많’과 같은 유튜브 콘텐츠가 생겨나고 대중의 인기를 끄는 건 그만큼 여러 미디어에서 지역 사투리를 사용하는 콘텐츠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드라마의 경우 사투리가 해당 드라마의 인기를 좌우하고 작품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11월 공개된 <쿠팡플레이> 드라마 ‘소년시대’는 1980년대 충청남도 부여를 배경으로 배우들이 완벽한 사투리 연기를 펼쳤다며 시청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반대로 ‘하말넘많’의 분석 대상이었던 드라마 ‘내남결’ 속의 사투리를 두고 시청자들은 어색할 뿐만 아니라 극의 흐름까지 깬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사투리 연기로 호평을 받았던 대표 드라마들이다. 왼쪽부터 '응답하라 1994', '오월의 청춘', '우리들의 블루스'. 그래픽 양진국
사투리 연기로 호평을 받았던 대표 드라마들이다. 왼쪽부터 '응답하라 1994', '오월의 청춘', '우리들의 블루스'. 그래픽 양진국

드라마와 같은 극 장르에서 사투리는 사실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13년 tvN에서 방영된 ‘응답하라 1994’는 해당 지역 사투리를 완벽히 소화하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지역 캐릭터를 내세워 호평받았다. 2021년 방영된 <KBS> 드라마 ‘오월의 청춘’에선 배우 고민시가 전라도 사투리를 수준 높게 소화했다는 평을 받았으며, 2022년 방영된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선 제주도 출신 배우 고두심의 사투리가 마치 진짜 제주도 할머니를 데려다 놓은 것처럼 인상 깊었다는 평이 많았다. 이처럼 드라마의 사투리는 그 자체로 즐거움과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해당 극의 시공간적 배경을 명확하게 해주며 유려한 서사적 흐름을 위한 중요한 장치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하위문화로써의 사투리를 즐기는 청년 세대

청년층이 각 지역의 사투리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레거시 미디어뿐만 아니라 유튜브를 비롯한 청년층이 주로 소비하는 개인 소셜네트워크에서는 사투리 사용이 일종의 웃음 요소로 쓰이고 있다. 구독자 23만 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뭐랭하멘’은 제주도 사투리를 활용해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숏폼 형태의 영상을 중심으로 제주도의 언어 및 문화를 보여준다. 이때 약간의 연기를 가미한 제주 사투리를 구독자들의 웃음을 끌어내는 장치로 사용한다.

코미디 레이블 ‘메타코미디’ 소속의 정재형, 김민수, 이용주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에선 ‘메이드 인 경상도’라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해당 콘텐츠에선 울산 출신의 김민수가 피식대학 팀의 타지역 출신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경상도 지역을 여행하며 엉터리 사투리를 활용해 웃음의 소재로 삼는다. 이들의 엉터리 사투리는 인터넷상의 유행어인 ‘밈’이 되어 일종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유튜브 채널 등에서 사용되는 사투리는 타지인에게는 신선한 재미를 안겨주면서 동시에 해당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소소한 공감 또는 엉터리에서 비롯된 웃음을 끌어낸다.

유튜브 '피식대학' 채널에서 제작하는 '메이드 인 경상도' 콘텐츠에서 멤버인 김민수 씨가 엉터리 사투리로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피식대학' 유튜브 화면 갈무리
유튜브 '피식대학' 채널에서 제작하는 '메이드 인 경상도' 콘텐츠에서 멤버인 김민수 씨가 엉터리 사투리로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피식대학' 유튜브 화면 갈무리

청년세대는 이미 레트로 문화, 아날로그 문화 등 과거 유행했던 문화를 찾아 즐기고 있다. 으레 20대 청년들이 할 법한 문화란 것이 이제는 명확하지 않다. 각자의 개성과 취향에 따라 비주류인 문화, 소수 집단의 문화, 때로는 반항적인 문화까지 소비한다. 즉 사투리 역시 표준어라는 한국 사회의 ‘헤게모니 언어’를 비켜난 하나의 하위문화로써 청년 세대의 새로운 즐길 거리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인터넷에선 각 지역의 사투리를 퀴즈와 같은 형태로 만든 게임들이 있으며,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엉터리 사투리는 밈이 되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사투리의 왜곡된 사용을 넘어서야

앞서 말했듯이 미디어에 사용된 사투리와 이를 활용한 일종의 밈 문화는 청년 세대의 하위문화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하위문화의 확산에도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하위문화가 때론 주류 문화를 긴장시키지만, 주류 문화의 지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표준어는 우리 사회 수도권이라는 일종의 ‘헤게모니 집단’의 언어이다. 이런 점에서 지역의 언어는 수도권 주민이 비수도권 지역과 주민을 인식하는 도구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때때로 사투리와 결합한 해당 지역에 대한 시선과 인식은 고정관념이 되어 편견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하말넘많'의 유튜버 강민지 씨가 경상도 사투리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에게 조금 더 가벼운 리듬을 구사하라며 조언하고 있다. 유튜브 '하말넘많' 화면 갈무리
'하말넘많'의 유튜버 강민지 씨가 경상도 사투리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에게 조금 더 가벼운 리듬을 구사하라며 조언하고 있다. 유튜브 '하말넘많' 화면 갈무리

흔히 기성 미디어에서 볼 수 있는 경상도 여성의 “오빠야”라는 일종의 애교 표현이 대표적인 예시다. ‘하말넘많’의 유튜버 강민지는 경상도 말은 일반적으로 무뚝뚝한 뉘앙스의 언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미디어에서 자주 등장하는 경상도 여성의 “오빠야”라는 애교는 실제 생활에선 찾아보기 힘들며, 오히려 건조한 어투의 “오빠”라는 단정적인 언어가 통용된다고 말한다. 또한 ‘경상도 남성은 거칠다’는 편견 역시 기성 미디어를 통해 자리 잡기도 한다. 영화 ‘친구’와 ‘범죄와의 전쟁’에서 경상도 남성의 언어는 매우 거칠고 투박했다. 하지만 이는 실제 경상도 지역의 남성이 쓰는 말과는 거리가 먼, 이른바 각색된 ‘건달의 언어’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하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재미를 위해 미디어에서 재현된 사투리가 때로는 우리 사회 존재하는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지배적 관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소비될 수 있으며 이러한 관념이 해당 지역의 특징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사투리는 그 자체로 해당 지역민들의 오랜 역사를 담고 있다. 기후, 음식, 생업과 밀접한 연관을 맺으며 발전되어 왔다. 이제는 세대에 따라서도 오래된 사투리, 젊은 사투리로 나뉘기도 한다. 사투리가 여러 미디어에 등장하는 건 우리 문화의 다양성이 더 증가하는 방향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표준어를 사용하는 주류 집단의 웃음을 위해 투박하고 단순하게 소비된다면 오히려 사회 구성원들의 오해와 왜곡된 인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왜곡과 과장,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여러 지역의 사투리가 미디어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등장하길 바란다. 그때까지 미디어는 사투리로 참 하고 싶은 말이 많겠지만, 더 뛰어난 관찰과 묘사를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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