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성+인물

성은 부끄러운 것인가?

대한민국에서 성(性)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성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성욕은 끼니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밤이 되면 잠이 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인데도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성을 탐구하려는 시도는 거부된다. 마치 성(城)과 같은 두터운 벽이 성(性)에 관한 논의를 막고 감추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공공연하게 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 속에서 성장해 성인이 된다. 과연 성은 은밀히 감추어야 하는 부끄러운 것일까? 성에 대해 솔직해지는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인가?

새로운 성문화를 접하고 놀란 신동엽. 넷플릭스 '성+인물: 일본편(2023)' 갈무리
새로운 성문화를 접하고 놀란 신동엽. 넷플릭스 '성+인물: 일본편(2023)' 갈무리

대한민국 미디어 속 성(性)

미디어가 성을 다루는 방식은 그 사회의 성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한국의 방송통신심위위원회는 오랫동안 방송 내용에 성행위를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경우는 물론, 성에 대한 표현조차도 제재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우리 사회의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다. 리스크와 제약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제작자에게 성은 까다로운 소재이며, 성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은 좀처럼 시도되지 않았다. 2013년, 예외적으로 성을 소재로 한 연애 상담 프로그램이 대중들에게 공개되었다. <JTBC>의 마녀사냥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기존의 어느 프로그램보다 성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여 많은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프로그램의 흥행과는 별개로 지나치게 외설적이라는 비판은 해당 프로그램에 꼬리표처럼 따라왔다. 마녀사냥이 종영되자, 성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은 한동안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2020년도에 들어서면서부터 미디어 환경이 변화했다. 시청자들은 가족들과 함께 보는 TV가 아닌 개인적으로 시청을 하는 스마트폰을 통해 콘텐츠를 소비하게 되었다. 또한 글로벌 플랫폼의 등장으로 전 세계에서 생산된 콘텐츠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성에 대한 우리만의 닫힌 태도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성을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그렇게 성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바로 '넷플릭스'의 예능 프로그램 '성+인물'이다.

AV 남배우 대표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AV 배우 시미켄. 넷플릭스 '성+인물: 일본편(2023)' 갈무리
AV 남배우 대표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AV 배우 시미켄. 넷플릭스 '성+인물: 일본편(2023)' 갈무리

성 산업 탐방에 그친 일본 편

AV를 연상케 하는 프로그램의 제목, 그리고 MC 신동엽이 흐림처리 된 성인 기구를 잡은 일본 편의 포스터가 공개되었을 당시, 많은 시청자들은 '성+인물'을 그저 외설스럽고 자극적인 예능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본 '성+인물'은 외설스러운 프로그램과는 거리가 멀었다. '성+인물'은 마녀사냥의 MC로 활약했던 신동엽, 성시경이 다양한 국가의 성 산업 종사자와 전문가를 만나보고, 성문화를 체험해 보는 프로그램이다.

첫 방문지인 일본에서는 AV, 성인 용품, 호스트바를 다뤘다. 우리에게는 아직 내놓고 이야기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소재지만 '성+인물'은 해당 성 산업 종사자들의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성에 대한 가치관까지 과감하게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본의 성 산업 종사자들은 자신의 일에 당당했으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감추고 싶어 하고 부끄러워할 것이라는 한국적 사고와 편견은 일본 사회에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 편은 하나의 특유한 하위문화로서 일본의 성을 탐구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AV 배우, 성인 용품 제작자, 호스트 등 상품화된 성을 넘어 일본 특유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조망하는 일본 사회의 성 담론은 과도한 기대였던 걸까?

타이베이의 LGBT 거리 '시먼딩'에서 만난 성 소수자 커플. 넷플릭스 '성+인물: 대만편(2023)' 갈무리
타이베이의 LGBT 거리 '시먼딩'에서 만난 성 소수자 커플. 넷플릭스 '성+인물: 대만편(2023)' 갈무리

아시아에서 가장 개방적인 성 인식 - 대만

그러한 아쉬움은 시즌 2인 대만 편부터 해소되었다. 일본 편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해당 국가의 다양한 성문화와 일반인들의 인식까지. 다루는 범주가 넓어진 것이다. 대만 편에서는 성인 엑스포 TAE를 소개했다. 참가자들은 여자친구, 남자친구와 함께 방문하여 각자 좋아하는 AV 배우와 만나고, 부스에서 직접 그들의 상대 배우가 되어 역할극을 하며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해소했다. 엑스포에 참가한 한 윤리교사는 자신은 성에 대한 관심을 숨기지 않으며, 학생들과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을 밝혔다. 같은 동아시아 국가이지만 성에 대한 인식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시사한다.

대만의 LGBT 문화 또한 인상적이었다. LGBT란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의 앞 글자를 딴 단어로 성 소수자를 일컫는 말이다. 대만은 2019년 아시아에서 최초로 동성 결혼을 법제화했다. 현재 대만에서 결혼하는 커플의 100쌍 중 1쌍은 동성혼이라고 한다. LGBT 문화에 있어서는 아시아에서 가장 열려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화면에 담긴 동성 커플들이 서로를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은 자연스레 그들의 사랑을 응원하게끔 만들었다. 성에 대한 지향은 틀린 것이 있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BDSM 스튜디오에서 체험을 진행하는 MC 신동엽. 넷플릭스 '성+인물: 네덜란드, 독일편(2023)' 갈무리
BDSM 스튜디오에서 체험을 진행하는 MC 신동엽. 넷플릭스 '성+인물: 네덜란드, 독일편(2023)' 갈무리

독일, 네덜란드, 개방을 넘어 일상 속의 자유로

성에 대한 다양성 탐구는 시즌 3인 네덜란드와 독일 편에서부터 본격화된다. 서양이 성에 대해 개방된 사고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와 구체적으로 무엇이 다른지는 잘 알지 못한다. 독일 사우나에서는 시설 사용에 있어 남녀 구분이 없다. 탈의실은 물론 욕탕에도 함께 들어간다. 대한민국이었다면 경찰이 출동했을 법한 상황이지만 그들에게 그러한 상황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욕탕뿐만 아니라 시설 내의 매점, 테라스 또한 벗은 채 이용한다. 애인이 아닌 ‘남자 사람 친구’, ‘여자 사람 친구’와 함께 목욕을 즐기는 것 또한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사우나는 우리도 흔히 이용하는 매우 친숙한 시설이다. 설비 또한 독일과 한국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성문화에 따라 한 나라에서의 금기가 다른 나라에서는 일상이라는 사실이 놀랍고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3화에서 다뤘던 BDSM 또한 인상적이다. BDSM은 BD(Bondage, Discipline), DS(Dominance, Submission), SM(Sadism, Masochism)의 세 가지 성적 지향을 일컫는 말로, 주인과 노예 등 상하관계의 상황극을 통한 판타지를 즐기는 성적 유희다. 2018년까지 의학계에서 정신질환으로 분류되어왔을 만큼 서구에서조차 퇴폐적인 취급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모럴센스’등 BDSM을 소재로 한 드라마, 영화가 속속 등장하며 대중들에게 점차 익숙해졌다.

‘성+인물‘에서는 BDSM 스튜디오를 신동엽과 성시경의 체험을 통해 보여준다. 두 MC는 눈을 가리고 ‘주인’(서비스 제공자)의 인솔에 따라 각기 다른 컨셉의 방에 들어가 주어진 상황극을 수행했다. ‘주인’은 명령하고 ‘노예’는 주인의 명령을 따른다. ‘주인’은 채찍 등으로 ‘노예’에게 가학 행위를 하고 ‘노예’는 이를 통해 성적 욕구를 충족시킨다. 물론 규칙은 있다. 불쾌감을 느낄 시 신호를 통해 플레이를 중지시킬 수 있고, 스튜디오 내 성행위는 금지다. 미리 손님의 취향과 원하는 상황극 스토리를 전달받아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 또한 일반적인 성매매 업소와 다른 점이다. 물론 거부감이 들 수 있고, 정서상 받아들이기 힘든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다양한 성적 취향의 하나로 이해하면 될 일이지 않을까?

‘베를린 클럽 퀸’에 방문한 MC  신동엽. 넷플릭스 '성+인물: 네덜란드, 독일편(2023)' 갈무리
‘베를린 클럽 퀸’에 방문한 MC 신동엽. 넷플릭스 '성+인물: 네덜란드, 독일편(2023)' 갈무리

성+인물의 부주의한 해석

시즌 3 네덜란드 독일 편은 성에 대한 인식이 문화에 따라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시청자들로 하여금 왜곡된 해석을 불러일으킬 만한 장면이 있었다 4화 ‘베를린 클럽 퀸’에서의 체험이다. 해당 방송은 베를린의 2030클러버들과 파티 문화, 섹스 문화에 대해서 다뤘다. ‘베를린 클럽 퀸’에서는 참가자의 행동에 어떠한 규제도 없다. 클럽 내 섹스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 정도다. 방송은 그곳을 자신의 욕구를 무제한으로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긍정적인 곳으로 그렸다. 그에 따른 부작용은 언급하지 않은 채 말이다.

방송이 찬양한 무제한의 자유와 무규제는 원치 않는 성적 접촉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최소한의 보호막이 없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한국의 클럽에서도 성추행, 성폭행 사례는 너무나 빈번히 발생한다. 베를린의 클럽이라고 해서 그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을까? 이러한 문제의식 없이 그곳을 자유와 쾌락만이 가득한 천국처럼 묘사하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자칫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갖게 한다.

'넷플릭스' 성+인물: 대만편(2023) 예고편 갈무리
넷플릭스 '성+인물: 대만편(2023)' 예고편 갈무리

열린 성 담론의 세상을 생각한다

대한민국에서 성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오랜 기간 입에 올리는 것을 쉬쉬해왔을뿐더러, 수용자에 따라 받아들이는 방식이 매우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은 다루면 안 되는 금기된 것이 아니다. 몸을 탐구하는 것은 죄악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 사회의 성숙도에 맞추어 이제는 음습한 방식으로 유통되던 성 이야기를 양지로 끌어내 담론으로 승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것이 건강한 성문화를 만들어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에 대중이 친숙함을 느끼는 예능 프로그램이 유쾌하지만 진지한 태도로 앞장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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