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한국 언론의 노동보도 실태와 노동 담론의 정치’ 토론회

‘노란봉투법’ 등 노동 문제를 다룬 언론 보도가 갈등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복잡한 맥락을 담지 않은 기사가 특정 시기에만 집중적으로 쏟아지면서 갈등 해결이 요원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보도 관행의 배경으로는 정치에 집중한 정쟁 보도와 다양한 입장을 담지 않은 단순 보도 등이 지목됐다.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와 전국언론노조는 지난 1월 2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토론회를 열고, 지난 한 해 동안 신문과 방송이 보도한 ‘노란봉투법’ 기사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토론회는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와 전국언론노조가 진행한 ‘한국의 노동 보도 모니터링 사업’의 중간보고 격으로 진행됐다.

정쟁 발생해야 기사 쓰는 냄비보도와 무보도

곽영신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연구원은 “지난해 노란봉투법 관련 보도의 양상을 보면, 냄비보도와 무보도를 오갔다”고 지적했다. 주요한 사건이 일어나면 기사가 쏟아졌지만, 사건과 사건 사이에는 보도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흔히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쟁은 지난해 내내 지속됐다. 그런데 보도는 2월, 6월, 11월에만 집중됐다. 지난 2월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고, 6월 직회부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됐으며, 11월에는 본회의를 통과해, 대통령이 거부했다. 일련의 보도가 집중된 시기는 이들 세 사건과 일치한다.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발생 사안만 단순 전달하여 사안의 표피만 알려주는 기사가 대부분인데 그조차 특정 시기에 집중됐다. 이런 기사만 봐서는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결할지 독자가 갈피를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2023년 2, 6, 11월에 신문과 방송 모두에서 노동조합법 개정 보도량이 증가한 것이 보인다. 꼭짓점에 커서를 대면 각각의 보도량을 볼 수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보고서 표 재구성.
2023년 2, 6, 11월에 신문과 방송 모두에서 노동조합법 개정 보도량이 증가한 것이 보인다. 꼭짓점에 커서를 대면 각각의 보도량을 볼 수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보고서 표 재구성.

국내 언론이 기사를 내놓지 않은 ‘무보도’의 시기가 오히려 관련 보도가 가장 절실했던 때라고 연구진은 평가했다. 특히 여야가 국회 본회의 표결을 잠시 미루기로 합의했던 8~10월이 결정적 시기였다고 봤다. 최종 결정을 앞두고 시간을 벌었으니, 사안의 중요성과 배경을 깊이 보도해 사회 전체의 논의를 북돋기에 적절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언론은 이 시기에 관련 기사를 거의 보도하지 않다가, 본회의에서 법안이 처리되고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무렵에 다시 사건 중심으로 집중 보도했다.

정쟁 상황을 따라가다 보니 보도의 주제도 여야 정쟁에 집중됐다. 연구진은 노조법 개정안을 다룬 보도를 주제에 따라 ①사용자를 비판하는 기사, ②노동자를 비판하는 기사, ③여야 정쟁을 주로 다루는 기사, ④법률 개정안의 내용에 집중하는 기사, ⑤이슈의 배경인 노동 현실을 다루는 기사 등으로 나눴다. 분석 결과, 여야 또는 정부의 발언이나 행동을 다룬 정쟁 기사가 신문 기사의 38%, 방송 기사의 57%를 차지했다. 반면 왜 이런 법안이 제출됐는지를 드러내는 노동 현실 기사는 전체 기사를 통틀어 2개에 불과했다.

2023년 노동조합법 개정을 다룬 국내 언론 보도 가운데 여야 정쟁을 다룬 기사가 20% 이상을 차지했다. 각 색깔 바에 커서를 올리면 여야 정쟁 이외에도 사용자 비판, 노동자 비판, 법안 정보, 노동 현실 등 여러 주제의 기사가 차지하는 비율을 볼 수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보고서  표 재구성.
2023년 노동조합법 개정을 다룬 국내 언론 보도 가운데 여야 정쟁을 다룬 기사가 20% 이상을 차지했다. 각 색깔 바에 커서를 올리면 여야 정쟁 이외에도 사용자 비판, 노동자 비판, 법안 정보, 노동 현실 등 여러 주제의 기사가 차지하는 비율을 볼 수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보고서 표 재구성.

기사에 등장하는 취재원 가운데 정치인의 비중도 매우 높았다. 이 사안으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사용자와 노동자 대신, 정쟁을 벌이는 정부와 여야를 주로 취재한 것이다. 관련 기사에 등장한 취재원을 분석한 결과, 정부와 여야 등 정치 취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신문 40%, 방송 60%로 나타났다. 신문은 사용자와 노동자보다 23%포인트 더 많은 비중으로 정치 취재원을 인용했고, 방송은 48%포인트 더 많은 취재원을 정부와 여야에서 찾았다.

정쟁을 중심으로 보도하면, 독자가 노동 문제를 종합적으로 볼 수 없게 된다고 안 교수는 지적했다. 따라서, “노동 문제가 국회 논의와 연관된 경우라 해도, 정쟁 프레임 대신 정책 프레임으로 접근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정치권의 일을 중계하는 하향식 보도가 아니라, 노동 현실을 정치적 논의로 연결하는 상향식 보도에 집중해야 한다”고 안 교수는 말했다.

친기업·친노동 편향 딛고 ‘악마’의 말도 보도해야

보수 언론은 사용자, 진보 언론은 노동자 편을 든다는 통념도 데이터로 확인됐다. 기사에 등장한 취재원 가운데 사용자와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분석한 결과, 언론에 따라 크게 12배에 달하는 차이가 났다. <한국경제>의 경우, 노동자는 전체 취재원의 2%에 불과했지만, 사용자는 24%를 차지했다. 반면, <한겨레> 기사에서는 사용자가 2%, 노동자가 18% 등장해 노동자 취재원이 9배 많았다.

정부와 여야 취재원까지 종합해 분석하자 편향이 더 드러났다. 연구진은 기사에 등장한 모든 취재원의 의견을 일별하여 친노동 취재원, 친기업 취재원, 전문가 등으로 구분했다. 분석 결과, <조선일보>의 친기업 취재원 비중은 65%, <매일경제>의 친기업 취재원은 67%에 이르렀다. 이는 두 신문의 친노동 취재원보다 40%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다. 정도는 덜했지만 반대 경우도 확인됐다. <경향신문>의 친노동 취재원 비중이 50%로 친사용 취재원보다 16%포인트 많았고, <한겨레>의 친노동 취재원 비중은 45%로 친사용 취재원보다 7%포인트 많았다.

각 언론사의 노동조합법 개정 기사 1건당 평균 취재원을 유형별로 나눠 비율을 나타낸 표. 진한 색은 정부·여야, 연한 색은 사용자와 노동자다. 파란 계열의 색은 사용자에, 녹색 계열의 색은 노동자에 친화적인 취재원이다.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보고서  표 재구성.
각 언론사의 노동조합법 개정 기사 1건당 평균 취재원을 유형별로 나눠 비율을 나타낸 표. 연한 색은 정부·여야, 진한 색은 사용자와 노동자다. 파란 계열의 색은 사용자에, 녹색 계열의 색은 노동자에 친화적인 취재원이다. 각 색깔 바에 커서를 올리면 해당 비율을 볼 수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보고서 표 재구성.

연구진은 편향된 취재원 인용으로 인해 수용자가 전달받을 수 있는 관점까지 제한된다고 지적했다. 단순 정보를 무미건조하게 전달하는 사건 중심 기사는 ‘기계적 중립’의 논조를 띠는 경우가 많은데, 노조법 개정안 보도 중에는 “단순 정보를 전달하면서도 오직 하나의 관점만 담은” 기사가 많았다. <한국경제>의 경우 보도된 기사 70%에 일방의 관점만 담았다. <매일경제>와 <조선일보>, <경향신문>과 <한겨레>도 약 40~50%의 기사에서 다른 의견을 전혀 담지 않은 단일 관점으로 보도했다.

기간·대상 아쉽지만…정책 못 담은 보도 문제 짚어내

‘한국 언론의 노동보도 실태와 노동 담론의 정치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한동오 언론노조 YTN지부 공정방송추진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언론노조 제공
‘한국 언론의 노동보도 실태와 노동 담론의 정치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한동오 언론노조 YTN지부 공정방송추진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언론노조 제공

이어진 토론에서 최지향 이화여대 교수는 “노동 보도에 있어 국내 언론이 프레임 대결 구도를 벗어나야 한다는 보고서의 분석에 크게 공감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기사를 예로 들었다. 보수 언론이 ‘빵집 주인도 예비 전과자’라는 프레임을 내놓자, 진보 언론은 ‘왜 빵집 주인이 겁먹을 필요가 없는지’ 설명하는 기사를 보도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더 중요한 건, 빵집 주인이라 해도 노동자가 다치고 사망하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인데, 서로 프레임 경쟁을 벌이다가 이 법안이 필요한 이유를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혜원 <시사인> 기자도 “일정한 진영 또는 입장 논리에 치중하는 국내 언론의 보도 경향을 인상 비평이 아니라 데이터로 입증했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의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런 지적에서 진보 성향의 언론도 예외가 아니라고 전 기자는 지적했다. 예를 들어, 노조법 개정안이 민법 제750조와 충돌하고, 비슷한 법이 프랑스에서 위헌결정을 받았다는 점을 진지하게 다룬 것은 경향신문 뿐이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노란봉투법에 관한 성찰적 견해가 공론장에 온전히 소개되지 못했다”고 전 기자는 말했다.

이번 연구를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동오 전국언론노동조합 YTN 지부 공정방송추진위원장은 “진보와 보수를 망라하여 노동 기사의 특성을 데이터로 비교할 수 있어 유의미한 연구”라고 평가했다. “특히 방송에서 정부와 여당의 정책을 단순 전달한 경우가 매우 많다는 점도 반박하기 어렵다”고 했다. 다만 이번 연구가 분석한 방송 보도는 저녁 메인 뉴스만 대상으로 했는데, 나머지 시간대의 기사까지 추가하여 종합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공성식 공공운수노조 정책부실장은 분석 대상 기간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연구는 2023년 1월부터 12월까지 보도된 기사를 대상으로 했는데, 그 이전인 2022년 9월 노조법 개정 운동본부가 출범했을 때부터 관련 보도가 많이 나왔다는 것이다. “분석 기간을 더 늘려 법안에 관한 진지한 논의를 처음부터 톺아볼 필요가 있다”고 공 부실장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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