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넷플릭스 ‘경성크리처’

‘경성크리처’는 광복이 반년도 남지 않은 1945년 3월의 경성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경성은 조선 부녀자들이 연쇄적으로 실종되며 술렁이고 있었다. 경무국(조선총독부 경찰 및 수사, 보안 등 치안 사무 관장하는 기관)의 경무관 이시카와(김도현)의 애첩인 조선 기생 명자(지우)도 실종자 중 한 명이었다.

주인공 장태상(박서준)은 자신의 안위가 최우선인 전당포 금옥당의 대주다. 경성에서 돈과 정보는 태상을 통한다고 소문났다. 그는 실종된 기생 명자(지우)를 찾아오라는 이시카와의 협박을 받았다. 벚꽃이 지기 전까지 명자를 찾지 못하면 전 재산을 몰수당할 위기에 놓였다. 장태상은 죽은 사람도 찾아낸다고 소문난 토두꾼(사람을 추적하는 일을 하는 사람)인 윤채옥(한소희)에게 명자를 찾는 일을 부탁하게 된다. 채옥은 아버지와 함께 십 년째 실종된 어머니를 찾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습득한 기술로 토두꾼 일을 하는 중이었다.

장태상이 경무국에 끌려와 고문받고 있다. 출처 넷플릭스 경성크리처 스틸컷.
장태상이 경무국에 끌려와 고문받고 있다. 출처 넷플릭스 경성크리처 스틸컷.

채옥은 몇 년 전 어머니의 초상을 그린 사치모토(우지현)를 찾고 있었다. 사치모토는 옹성병원에서 화가로 일하고 있었다. 또 명자를 마지막으로 만난 인력거꾼은 옹성병원으로 명자를 데려다줬다고 증언했다. 실종 사건의 단서는 모두 옹성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태상과 채옥은 옹성병원으로 갔다.

그들이 들어간 옹성병원에선 조선인을 대상으로 참혹한 생체실험이 이뤄지고 있었다. 드라마는 먼저 생체실험 중 사망한 사람들의 신체가 부위별로 보관돼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곳에선 사람이 마취 없이 수술대에서 발버둥 치기도 하고, 주사기로 균을 주입받아 시들시들 죽어가기도 한다.

카메라는 시청자들을 이끌어 ‘크리처’를 만나게 한다. 등에 여러 개의 촉수를 가진 끔찍한 외관, 생체실험으로 만들어진 세이싱이란 이름의 괴물이다. 세이싱은 신체적으로 엄청난 회복 능력과 살인 능력을 갖췄다. 총에 맞아도 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등에 뻗어 나온 촉수로 순식간에 수백 명을 죽인다. 이처럼 경성크리처는 생체실험이라는 역사적 요소와 크리처라는 상상적 요소를 결합한 작품이다.

경성크리처 포스터. 출처 넷플릭스.
경성크리처 포스터. 출처 넷플릭스.

잔혹했던 생체실험, 껍질 벗긴 통나무 ‘마루타’

이 드라마는 일본의 생체실험에 의해 잔인하게 희생된 조선인의 역사를 재현한다. 2차세계대전 당시 만주에 주둔하던 일본의 731부대는 조선의 독립운동가와 중국 전쟁포로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하던 악명높은 집단이다. 일본은 생체실험의 대상을 ‘마루타’라고 불렀다. 마루타는 일본어로 ‘껍질 벗긴 통나무’라는 뜻이다.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731부대에선 사람을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두고 총기를 난사하여 총기의 힘을 측정하거나, 마취하지 않는 상태로 생살을 벗기고 해부하는 등의 생체실험을 했다. 그중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가져온 것은 인체에 세균을 주입하는 실험이었다. 이를 통해 얻은 결과는 일본군의 세균전에 이용됐다. 2011년 공개된 731부대 극비문서에 따르면, 1940~1942년 사이 페스트균 등을 살포하는 세균전을 벌여 2만 5,900여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까지 일제의 생체실험을 다루는 드라마와 영화는 많지 않았다. 나치 시대 독일의 생체실험이 주목받았던 것에 비하면 일본의 생체실험은 국제사회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했었다. 국내의 소수 역사학자와 연구자들만이 관심이 있던 일제 731부대의 만행이 외국에도 드라마를 통해 전달되고 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자연스럽게 외국인들에게까지 알려진 셈이다.

731부대에서 임산부에게 매독균을 주사하고 산모와 아기를 해부하고 있다. 출처 1992년 4월 15일 보도.
731부대에서 임산부에게 매독균을 주사하고 산모와 아기를 해부하고 있다. 출처 1992년 4월 15일 보도.

일제강점기 주체적인 여성 주인공의 등장

이 드라마는 주체적인 여성을 앞세운다는 점에서 다른 시대극과 차이점을 보인다. 드라마의 여주인공 채옥이 대표적이다. 채옥은 인체실험으로 인해 괴물이 된 엄마를 위해 옹성병원의 원장인 이치로를 사살하고 감옥에 갇힌다.

그동안 일제강점기 시대극은 대의를 추구하는 남성과 그와 사랑에 빠진 여성들의 이야기가 보편적인 서사였다. 남성은 독립운동가로, 여성은 피지배자이자 희생자로 재현됐다. <덕혜옹주>, <귀향> 등이 대표적이다. 이 영화들에서 여성은 일제의 폭력에 희생되는 수동적이고 나약한 존재로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1930년대 여성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점차 일제강점기 시대극에서 여성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 <파친코>와 <미스터션샤인>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주체적인 여성을 다뤘다. 이와 마찬가지로 경성크리처는 역사적 대의를 실현하고자 투쟁하는 주체를 여성으로 두고, 그와 사랑에 빠진 방관자 남성이 대의를 추구하는 존재로 바꿔 가는 상황을 전개한다.

여성 독립운동가는 그동안 기록되지도, 주목받지도 못했었다.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독립유공자는 1만 4,329명이다. 이 가운데 여성은 전체의 1.9%인 272명에 불과하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임시정부의 살림을 도맡고, 독립군의 군복을 만들고, 군수품을 운반하는 등의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일을 주로 맡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일을 수행했지만, 지원 역할이라는 이유로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원 역할을 넘어 최전선에서 일제에 맞섰던 여성 독립운동가들도 적지 않았다. 영화 <암살>에 등장한 남자현은 실제 여성 독립운동가로 3·1운동 후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과 여성운동을 이끌었다. 그는 만주국 전권대사 무토 노부요시를 사살하려다 붙잡혀 순국했다. 또 윤희순은 최초의 여성 의병장으로 활약했고, 안경신은 임신 7개월의 몸으로 평남도청과 평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여성으로서는 처음 사형선고를 받았다. 경성크리처는 이처럼 주목받지 못한 여성 독립운동가의 존재를 드러내고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상기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대극의 변화를 반영한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윤채옥이 토두꾼(사람 찾는 일) 복장을 입고 있다. 출처 넷플릭스 경성크리처 스틸컷.
윤채옥이 토두꾼(사람 찾는 일) 복장을 입고 있다. 출처 넷플릭스 경성크리처 스틸컷.

일제에 맞서는 어머니들

드라마가 표방한 주체적 여성의 모습은 주인공 채옥이 아닌 다른 여성들에 대한 묘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사실 크리처가 된 세이싱은 윤채옥의 어머니인 최성심이다. 그는 인체실험 대상자로 10년간 갇혀있다가 나진과 탄저균을 주입받고 크리처가 된다. 그는 크리처가 된 이후에도 자신의 딸 채옥을 구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일제에 맞서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태상의 어머니는 독립운동하다가 일제에 의해 살해당한다.

옹성병원에 갇혔던 명자도 임신 상태에서 크리처가 된다. 크리처 명자는 외관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의 뇌를 파먹는 연쇄살인을 한다. 살인 혐의로 자신을 체포하려는 연인 이자카와를 죽인다.

이들은 모두 누군가의 어머니이거나 누군가의 여인이었지만 수동적으로 순종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하거나 크리처가 되어 자신만의 복수를 해나가는 주체적 인간들이었다.

채옥이 크리처 ‘세이싱’을 만났다. 출처 넷플릭스 경성크리처 스틸컷.
채옥이 크리처 ‘세이싱’을 만났다. 출처 넷플릭스 경성크리처 스틸컷.

악마의 잘못으로 치부된 생체실험

경성크리처가 공개된 이후, 드라마가 일제의 731부대를 다루는 방식이 비판받고 있다. 드라마는 일본군 실험 책임자 가토 중좌와 돈과 권력을 가진 마에다 유키코라는 두 악마를 등장시킨다.

그런데 드라마는 생체실험이라는 일제의 악행을 소수의 잘못된 탐욕으로 표상한다. 세이싱이라는 끔찍한 크리처를 탄생시킨 인체실험은 악마 두 명의 잘못인 것으로 스토리를 전개하는 것이다. 특히 일본 가토중좌가 크리처의 외관과 능력을 보고 감탄하는 장면은 그를 일본제국의 일원이 아닌 개별적이고 일탈적인 ‘악’으로 묘사했다는 걸 보여준다. 개인을 악마화하는 스토리 전개보다 제국주의에 대한 깊이 있는 비판이 녹아있었다면 좋았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옹성병원의 생체실험 책임자인 가토중좌가 크리처를 보고 있다. 경성크리처 스틸컷 출처 넷플릿스.
옹성병원의 생체실험 책임자인 가토중좌가 크리처를 보고 있다. 경성크리처 스틸컷 출처 넷플릿스.

흩어진 가해자

경성크리처는 지난해 12월 22일 넷플릭스에 파트1이 공개됐다. 경성크리처는 파트1이 공개 3일 만에 글로벌 상위 10 비영어 부문 3위에 올랐다. 드라마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일제의 생체실험을 주된 소재로 다뤘다. 해외 시청자들에게 일제 생체실험의 역사를 알렸다.

올해 1월 5일 파트2가 공개됐으며, 곧 시즌2가 공개될 예정이다. 경성크리처는 일제강점기의 생체실험이라는 끔찍하지만 외면하거나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역사를 보여준다.

일본의 패전 후, 생체실험을 했던 가해자인 731부대원들은 빠르게 잊혔다. 일제의 생체실험은 의학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묵인되었으며 전범재판에서도 731부대원들은 처벌되지 않았다. 흩어진 가해자들은 전쟁 후 일본 학계, 병원, 제약회사에 취업했다고 알려졌다.

지난해 7월, 731부대 명단이 담긴 공식 문서가 최초 발견됐다. 이 문서에는 731부대 이시이 시로 부대장을 비롯해 모두 97명의 이름과 계급이 적혀있다. 731부대 가해자는 여전히 흩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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