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아이유 ‘Love wins all’

2015년 6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결혼을 이성 간의 결합으로 한정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동성혼이 합법인 주에서 결혼한 부부는 다른 지역에서도 동일한 권리 요구가 가능해졌고 이로써 미국은 세계에서 18번째로 동성혼을 완전히 승인한 국가가 되었다. 여러 언론은 ‘Love Has Won(사랑이 승소했다)’이라는 제목으로 소식을 알렸고 사람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LoveWon’, ‘#LoveWins’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대법원의 결정에 대한 환영을 표현했다. 해시태그 운동에는 오바마 전 대통령을 포함해 수많은 유명인이 동참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16년 6월 12일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있는 나이트클럽 펄스(Pulse)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자정이 넘은 시간에 클럽에 들어가 30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에게 총기를 난사했고 인질극을 벌였다. 이 사건은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테러였으며 ‘가장 추악한 범행’이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해당 나이트클럽이 성소수자 전용 클럽이었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에는 다시 ‘#LoveWins’ 해시태그가 달린 글이 쏟아졌다. 희생자를 추모하고 또 다른 혐오범죄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가수 Sia는 올랜도 총기 난사 사건으로 희생된 이들에게 추모를, 상처 입은 이들에게는 위로를 전한다며 같은 해 10월 ‘The Greatest’라는 노래를 냈다.

2015년 6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의 결정에 많은 이들이 #LoveWins 문구를 사용해 환영을 표했다. 출처 트위터 갈무리
2015년 6월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의 결정에 많은 이들이 #LoveWins 문구를 사용해 환영을 표했다. 출처 트위터 갈무리

2024년 1월 16일 가수 아이유가 2년 만에 새 앨범 발매를 예고하며 선공개곡(본격적 앨범 활동 전에 음원만 공개하는 곡) ‘Love wins’를 발표했다. 해당 곡의 홍보 포스터에는 ‘LOVE WINS’라고 적힌 문구와 아이유와 방탄소년단 멤버 뷔가 같은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있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팬들은 아이유의 새 앨범에 대한 기대로 설렌다는 반응이었지만 포스터를 보고 의아함을 느낀 사람들도 있었다. 아이유는 직접 작성한 앨범 소개글에 ‘Love wins’는 팬에게 바치는 노래이며 ‘대혐오의 시대’에도 자신을 변함없이 사랑해 준 팬의 마음이 언제나 ‘승리’한다는 사실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문화 전유’에 앞장선 대중가수

몇 시간 뒤 포스터와 소개글을 접한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거센 반발이 일었다. 특정 문화 속에서 상징성을 지니는 문구를, 해당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 아이유가 가져다 썼다는 점을 비판했다. 이는 전형적인 ‘문화 전유(혹은 문화적 도용, cultural appropriation)’라고 지적했다. 문화 전유란, 다른 인종이나 집단의 문화 혹은 정체성 요소를 도용하는 행위를 뜻한다. 문화 전유가 비판받는 이유는 해당 문화 요소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제거한 채 상품으로만 소비하여 본래의 의미를 모욕하거나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유의 신곡에서 ‘#LoveWins’의 본래 의미는 흐릿해졌다. ‘Wins’는 아이유가 말하듯 온갖 나쁜 것들과의 싸움에서 이긴다는 뜻이 아니라, 미국의 성소수자들이 대법원판결에서 ‘승리’했음을 축하하기 위해 사용한 구호다. 이제껏 아이유가 노래한 이성애, 유성애적 사랑은 성소수자들이 겪는 차별을 경험한 적이 없다. 결과적으로 아이유의 ‘Love wins’는 해당 구호의 본래 의미를 모호하고 뭉툭하게 만들어버렸다.

아이유처럼 인기 있는 대중가수가 본인의 영향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망을 나타내는 성소수자 팬들도 많았다. 논란이 심해지자 아이유의 소속사는 3일 만에 곡명을 ‘Love wins all’로 변경한다고 알렸다. ‘중요한 메시지가 흐려질 것을 우려하는 의견을 수용하고 (중략) 누구에게도 상처 되지 않고 이 곡의 의미가 전달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라며 입장을 표했다.

선공개곡의 제목을 공개하고 3일 뒤 아이유와 소속사 측은 'Love wins all'로 곡명을 변경해 논란을 잠재웠다. 출처 이담엔터테인먼트
선공개곡의 제목을 공개하고 3일 뒤 아이유와 소속사 측은 'Love wins all'로 곡명을 변경해 논란을 잠재웠다. 출처 이담엔터테인먼트

곡명 변경으로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반발은 잠잠해졌지만, 해당 노래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자 대중의 반응은 다시 엇갈렸다. 뮤직비디오 속 배경은 디스토피아, 혹은 아포칼립스의 이미지를 띤다. 아이유와 뷔 말고는 다른 생존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은 얼굴과 몸에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정육면체 물체로부터 전력을 다해 도망치고 있다. 아이유는 영상에서 10초 정도 수어로 짐작되는 손짓을 보여준다. 아이유에게 청각장애 혹은 언어장애가 있음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뷔는 한쪽 눈에만 흰색 컬러렌즈를 착용한 모습인 시각장애인으로 등장한다.

뮤직비디오의 내용은 단순하다. 전쟁, 혹은 재난 같은 시련으로부터 연인들이 서로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내용이다. 노래 제목처럼 아무리 험난한 환경이 우리를 괴롭게 만들어도 결국 사랑하는 마음은 끝까지 남는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문의 정육면체로부터 달아나지 못한 아이유와 뷔는 쇠막대 하나를 들고 물체를 부수려 하지만 실패하고, 두 사람은 공중으로 떠오르며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엔 두 사람이 입고 있던 옷이 떨어진다. 화면이 전환되고 옷이 산처럼 쌓여 있는 모습이 나온다. 흡사 홀로코스트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다.

뮤직비디오 속 두 주인공은 사라지고 그들이 입고 있던 옷만 남는다. 앞서 죽은 다른 이들의 옷이 바닥에 쌓여있다. 출처 뮤직비디오 갈무리
뮤직비디오 속 두 주인공은 사라지고 그들이 입고 있던 옷만 남는다. 앞서 죽은 다른 이들의 옷이 바닥에 쌓여있다. 출처 뮤직비디오 갈무리

인기 많은 대중가수가 뮤직비디오에 장애인을 등장시키다니, 팬들은 감동이다, 뭉클하다는 내용으로 댓글을 달고 응원을 보냈다. 문제는 영상 속에서 장애가 해석되는 방식이었다. 정육면체로부터 도망 다니던 아이유는 우연히 낡은 캠코더를 발견한다. 캠코더의 뷰파인더를 통해 본 뷔는 시각장애가 없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캠코더는 폐허가 아니라, 우아한 레스토랑과 고급 음식이 가득한 식탁을 보여준다. 캠코더를 치우면 상대는 초라한 몰골에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뷰파인더를 통해 다시 들여다보면 상처가 다 나은 얼굴로 행복한 미소를 띤다. 장애 역시 두 사람에게 닥친 시련 중 하나로 묘사된다. 캠코더로 보여주는 아름다운 세상에 장애는 존재하지 않는다.

해당 뮤직비디오의 연출을 맡은 엄태화 감독은 영상 속 상징에 관해 “캠코더는 ‘사랑의 필터’로, 인물들이 내적 혹은 외적인 모습을 뛰어넘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중요한 장치로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두 사람의 장애에 대해서는 “(아이유의 언어장애는) 세상과 온전히 소통하기에 어려움이 있음을 뜻한다. 뷔 역시 한눈에 보기에도 세상의 난관을 헤쳐 가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략) 서로를 더욱 의지할 수밖에 없으며, 각자 상처를 입고 지친 상황에서도 끝까지 이겨내고자 한다”. 아이유와 뷔가 낡은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주워 입고 포토부스에서 사진을 찍는 장면에 대해서는, “일상에서 하기 어려웠던 일들을 함께하며 잠시나마 행복을 누린다.”라고 부연했다.

뮤직비디오 속 아이유는 언어장애를 암시하는 입술 피어싱을, 뷔는 시각장애를 보여주는 컬러렌즈를 착용한 모습이다. 출처 뮤직비디오 갈무리
뮤직비디오 속 아이유는 언어장애를 암시하는 입술 피어싱을, 뷔는 시각장애를 보여주는 컬러렌즈를 착용한 모습이다. 출처 뮤직비디오 갈무리

뮤직비디오 속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은 ‘정상인’들의 편견과 오만을 그대로 보여준다. 언어장애가 있다고 세상과 온전한 소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소통의 방식은 다양하고 언어의 종류 또한 무수히 많다. 문자 언어를 사용하기도, 손을 활용해 수어로 소통하기도 한다. 음성 언어가 지닌 한계를 수어가 보완하기도 한다. 영상 속에서 전통적 결혼식의 모습으로 대표되는 ‘일상적인 것’ 역시 장애인도 누릴 줄 알고 누리고 있는 것들이다. 장애인은 평범한 행복을 모르고 오로지 ‘정상인’이 되기를 희망한다는 생각이야말로 노래 가사에 나오는 ‘가난한 상상력’의 결과다.

장애는 불편하다. 하지만 반드시 불행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장애가 불편한 이유는 사회적 환경이 비장애인에만 맞춤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안경을 발명하기 전까지 시력이 좋지 못하면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야 했지만, 안경 착용이 보편화된 지금은 낮은 시력을 불행한 장애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마을버스가 모두 저상형으로 교체된다면 휠체어 사용자는 대중교통 이용에 불편을 느낄 일이 없다.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점자블록을 제거하고 안내견의 식당 출입을 막으면 시각장애인은 당연히 불편을 겪는다. 캠코더를 통해 본 세상은 장애인이 비장애인으로 바뀌면 되는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일상에서 불편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어야 한다.

지난달 28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아이유의 뮤직비디오 관련 만평을 공개했다.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누리집
지난달 28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아이유의 뮤직비디오 관련 만평을 공개했다.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누리집

선량한 차별과 미세공격

아이유의 ‘Love wins all’ 때문에 직접적인 상처를 받은 사람은 성소수자, 장애인 당사자다. 창작물에 대한 비판을 아이유를 향한 공격으로 받아들인 일부 팬들은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의 반발이 ‘피곤하다’라고 표현했다. 장애인을 아름답게 그려냈는데 무엇이 문제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전형적인 ‘선량한 차별(혹은 우호적 차별, benevolent discrimination)’ 행위다. 선량한 차별이란 물리적 폭력처럼 악한 의도가 분명한 차별 행위와 구분되는 개념으로, 사회적 약자를 동등한 구성원으로 대하지 않고 타자화, 대상화 혹은 지나치게 낭만화하는 행위를 뜻한다. 소수자들에 대한 선량한 차별은 본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 언어적, 환경적 모욕을 의미하는 ‘미세공격(Micro-aggression)’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가수 Sia의 'The Greatest' 대표사진 (좌), '선량한 차별주의자' 표지 이미지 (우) 출처 창비
가수 Sia의 'The Greatest' 대표사진 (좌), '선량한 차별주의자' 표지 이미지 (우) 출처 창비

창작물에 사회적 소수자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일은 신중함이 필요한 어려운 작업이다. 그래서 많은 아티스트들이 당사자성이 있거나 해당 분야에 깊은 이해를 지니고 있지 않은 이상 소수자를 소재로써 잘 사용하지 않는다. 아이유가 선보인 이번 표현 방식은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긴다. 애초에 앨범 소개글에 적은 ‘대혐오’라는 말에는 사회적 약자를 향한 오랜 차별은 포함되지 않았다. 아이유를 이유 없이 미워하는 대중을 겨냥한 말에 불과했다. 그런 대중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준 팬의 사랑이 이겼다고 말하고자 ‘#LoveWins’를 전유한 것이다. 또한 팬에게 바치는 노래라면 장애라는 설정 없이 아이유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등장했어도 충분하다. 사회적 맥락을 무시하고 장애인의 겉모습만을 취하는 바람에 그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얄팍해졌다.

장애인이 대중문화 콘텐츠에 등장조차 하지 않던 과거와 비교하면 우리 사회는 계속해서 진일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불쾌함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 덕분이다. 아이유의 신곡과 관련된 여러 가지 논란에 대해 하나의 표현 방식일 뿐이라 주장하는 일부 언론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디 아이유가 다음 앨범을 발표할 때는 지금과 같은 비판을 반복해서 듣지 않길, 대중이 더 수준 높은 논쟁을 활발히 펼치도록 만드는 창작물을 선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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