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프로퍼블리카 ‘발병의 근원’(Roots of an Outbreak)

저널리즘에 과학이 더해지면 새로운 취재의 길이 열린다. 과학적 저널리즘은 세상의 이슈를 과학의 방법으로 분석해 보도한다. 다만, 아무리 유능한 기자여도 과학적 전문성을 갖추기는 쉽지 않다. 이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열쇠는 과학자와의 협업이다.

미국의 비영리매체 <프로퍼블리카>(Propublica)가 2023년 보도한 ‘발병의 근원’(Roots of an Outbreak)은 과학자와 협업하여 과학적 저널리즘을 성취한 좋은 예다. 기자들은 역학 모델과 머신 러닝과 같은 과학적 취재법을 사용해, 삼림 벌채 탓에 아프리카의 전염병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사실을 밝혀냈다. 기자들은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참고하고, 자문을 구하고, 취재를 함께하며 과학의 높은 문턱을 넘었다.

프로퍼블리카의 기사 ‘발병의 근원’(Roots of an Outbreak)의 대문 이미지. 프로퍼블리카 홈페이지 갈무리
프로퍼블리카의 기사 ‘발병의 근원’(Roots of an Outbreak)의 대문 이미지. 프로퍼블리카 홈페이지 갈무리

원래 전염병 발생지는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전 세계가 전염병 발생 이후의 여파에 대응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해 온 까닭이다. 프로퍼블리카의 ‘발병의 근원’은 이러한 기존 관념을 뒤엎었다. 기자들은 전염병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예측했고, 정부와 전 세계 보건 기구들이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제안했다. ‘발병의 근원’은 2023년 ‘온라인저널리즘어워즈’의 ‘3M 과학의 진실’(3M Truth in Science) 부문을 수상했다.

삼림 벌채가 촉발한 에볼라 전염병

2013년 에볼라 전염병이 아프리카를 휩쓸었다. 전염병은 기니의 작은 마을 멜리안두에서 시작하여 서아프리카 10개국까지 전파됐다. 2016년까지 약 2만8600명이 감염됐고, 그중 1만13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에볼라 바이러스로 인한 피해 중 역대 최대 규모였다.

전 세계 많은 과학자가 발병의 원인으로 삼림 벌채를 지목했다. 새로운 전염병은 박쥐와 같은 야생동물에서 시작된다. 삼림 벌채로 인해 야생동물과 인간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야생동물에 있던 병원균이 가축을 통해 인간으로 옮겨온다. 이렇게 바이러스가 서로 다른 종 사이를 이동하는 것을 ‘스필오버’(Spillover)라 한다. 과학자 헤수스 올리베로(Jesús Olivero)와 크리스티나 파우스트(Christina Faust)는 삼림 벌채의 규모와 스필오버 발생 가능성 사이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역학 모델을 발표했다.

프로퍼블리카 기자들은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전염병의 발생 경로를 보여주었다. 프로퍼블리카 홈페이지 갈무리
프로퍼블리카 기자들은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전염병의 발생 경로를 보여주었다. 프로퍼블리카 홈페이지 갈무리

기자들은 멜리안두 마을에서 스필오버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2001년부터 2021년까지 촬영된 멜리안두의 위성 이미지를 과학자들의 역학 모델에 적용했다. 분석 결과 2013년 이후에도 삼림 벌채가 지속됐고, 2021년 스필오버의 발생 가능성이 2013년보다 더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기자들은 과거 에볼라가 발병했던 아프리카의 6개 지역에 대한 위성 이미지도 분석했다. 그 결과 콩고민주공화국과 우간다 등 4개 지역에서도 삼림 벌채로 인한 스필오버의 발생 가능성이 전보다 더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머신러닝으로 예측한 미래 발병지

취재팀은 앞으로 전염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예측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기자들은 과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이전에 에볼라가 발병했던 지역의 환경적 조건과 유사한 다른 지역을 선별하는 머신러닝 모델을 개발했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데이터를 통해 미래 사건을 예측하는 것이 머신러닝이다. 기자들은 머신러닝 기술 중 ‘랜덤포레스트’(Random Forest)라는 분석법을 사용했다. 랜덤포레스트는 질문을 차례로 던져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스무고개식 문답법인 ‘의사결정나무’ 수백 개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의사결정나무로부터 나온 답변 가운데 가장 높은 확률로 나온 답을 예측 결과로 내놓는다.

프로퍼블리카 기자들은 기사 본문에 머신러닝 기술 ‘랜덤포레스트’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상세히 설명해두었다. 프로퍼블리카 홈페이지 갈무리
프로퍼블리카 기자들은 기사 본문에 머신러닝 기술 ‘랜덤포레스트’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상세히 설명해두었다. 프로퍼블리카 홈페이지 갈무리

기자들은 과거에 에볼라가 발생했던 7곳의 위성 이미지와 인구 수 등의 데이터를 적용해 몇 달 동안 머신러닝 모델을 학습시켰다. 그 후 아프리카 17개국 중 과거 에볼라 발병 지역과 인구 규모가 비슷한 마을 1000곳을 골라 머신러닝 모델로 분석했다. 그 결과 1000곳 중 51곳의 마을이 과거 에볼라 발병지와 매우 유사한 환경적 조건을 갖춘 곳으로 식별됐다.

식별된 지역 중 절반 이상인 27곳은 에볼라 발병 이력이 없는 나이지리아에 집중되어 있었다. 추가 취재를 해보니, 나이지리아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삼림 벌채가 지속되어 왔고, 2017년부터는 그 속도가 매우 가팔라져 매년 축구장 약 17만 개 규모의 삼림이 사라지고 있었다. 몇몇 과학자들이 나이지리아의 에볼라 발병 가능성을 경고하는 논문을 발표한 사실도 확인됐다.

​아프리카 1000개 지역(연한 주황색)을 머신러닝을 통해 분석한 결과, 나이지리아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집중적으로 에볼라 발병 가능성이 높게 나타났다(짙은 주황색). 프로퍼블리카 홈페이지 갈무리
​아프리카 1000개 지역(연한 주황색)을 머신러닝을 통해 분석한 결과, 나이지리아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집중적으로 에볼라 발병 가능성이 높게 나타났다(짙은 주황색). 프로퍼블리카 홈페이지 갈무리

전염병과의 사투, 희망은 있다

과학적 저널리즘은 전염병 예방을 위해 삼림 벌채를 멈춰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2022년 프로퍼블리카 기자들이 찾은 멜리안두 마을에서는 광범위한 삼림 벌채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다. 문제는 가난이었다. 주민들은 농지를 넓히기 위해 숲을 개간하고, 숯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었다.

기자들은 두 번째 기사에서 삼림 벌채를 줄이는 데 성공한 마다가스카르의 사례를 소개했다. 마다가스카르 남동부의 ‘마놈보’ 마을 주민들은 오랫동안 삼림 벌채로 생계를 이어왔다. 미국의 비영리단체 ‘헬스 인 하모니’(Health in Harmony)는 2019년부터 마다가스카르 주민들에게 저렴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생산성 높은 농업 기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삼림 보호를 잘할수록 주민들은 더 많은 도움을 받았다. 주민들은 스스로 벌목을 중단하고, 벌목꾼으로부터 숲을 보호하고,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마놈보 마을의 주민 조셀린은 벌목으로 생계를 이어온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이제 조셀린은 ‘헬스 인 하모니’에서 ‘숲 보호자’로 일하며 벌목꾼과 사냥꾼의 활동을 저지한다. “숲과 인간, 동물은 상호의존적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숲이 아프면 동물도 아프고, 동물은 다시 인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발병의 근원’을 보도한 프로퍼블리카는 ‘돈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표방하는 비영리 매체다. <월스트리트저널> 편집장을 지낸 폴 스타이거와 <뉴욕타임스> 탐사보도 기자였던 스티븐 엔젤버그 등이 샌들러 재단으로부터 전액 후원을 받아 2007년 창립했다. 프로퍼블리카는 몇 년에 걸쳐 취재하고, 중편소설에 가까운 분량으로 보도하며, 모든 기사를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뉴스룸 내부에서 적용하는 성공 지표는 웹사이트 유입이나 판매 수익이 아니라, 사회에 미친 영향력의 규모에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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