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제393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 수상작 – 한국일보 '무법지대 코인리포트'

비트코인, 이더리움, 도지코인은 이제 우리에게 친숙하다. 이들은 가상화폐라고 불린다. 가상화폐는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비우량주택담보대출) 이후, 기존 금융 시스템에 반기를 들며 등장했다. 모기지 사태의 원인으로 미국 정부의 안일한 통화정책과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가 지목됐다. 이에 금융거래를 중앙은행이 아닌, 개인 간 기록으로 전환해 탈중앙화한 가상화폐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국내에 가상자산 거래소가 설립된 이후 10여 년간 코인 시장은 무법지대였다. 법이 없는 곳에서 사기 가해자는 사라지고, 돈을 잃은 피해자만 남았다.

<한국일보> 사회부 탐사팀 이성원, 조소진 기자는 코인의 실체를 밝히고자 했다.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 문제점을 선명히 드러내는 방법을 찾아 나섰다. 취재팀은 사라진 코인을 전수조사하는 방법을 택했다. 2017년 4월부터 2023년 5월까지 6년여간 국내 5대 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된 코인을 전수조사했다. 취재팀은 315개의 상장 폐지된 코인을 누가, 왜 만들었고, 현재는 어떤 상태인지 따져봤다. 각 거래소 공지를 살피고, 발행업체의 트위터와 텔레그램, 소스 코드 수정 여부 등을 일일이 확인했다.

한국일보 취재팀은 상장 폐지된 315개 코인을 아카이브로 정리했다. '무법지대 코인리포트' 인터렉티브 페이지 갈무리
한국일보 취재팀은 상장 폐지된 315개 코인을 아카이브로 정리했다. '무법지대 코인리포트' 인터렉티브 페이지 갈무리

또 취재팀은 최근 2년간 선고된 코인 사기 사건 판결문 180개를 분석했다. 취재팀은 경기 고양시 법원도서관에서 일일이 판결문을 검색하고 인쇄했다. 피고인 수, 혐의, 형량, 코인 사기 유형, 코인 실제 존재 여부, 거래소 상장 여부, 코인 가치에 대한 법원 판단 등을 분류 기준으로 삼아 분석했다.

그 결과를 지난 5월 15일부터 5월 20일까지 ‘무법지대 코인리포트’라는 제목으로 연속 보도했다. 글 기사는 4편에 걸쳐 지면에 보도했다. 상장 폐지된 코인을 전수조사한 결과를 아카이브로 기록한 인터렉티브도 함께 나왔다. 이 기사는 제393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된 코인 315개를 전수 조사해 한국계 코인(일명 ‘김치코인’)이 손쉽게 상장된 후 거래 중지된다는 점을 집중 조명했다”고 평가했다.

‘무법지대 코인리포트’ 기획보도 첫 편이 실린 한국일보의 지난 5월 15일 지면. 한국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무법지대 코인리포트’ 기획보도 첫 편이 실린 한국일보의 지난 5월 15일 지면. 한국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전수조사가 일궈낸 치밀하고 입체적인 보도

‘무법지대 코인리포트’ 1편에서는 코인 제작부터 상장, 그리고 폐지의 단계마다 이뤄지는 사기 과정을 심층 보도했다. 기술력과 사업성이 없는 코인이 뒷돈을 내고 거래소에 상장된 후 사기에 악용되고 이후 폐지된다는 점을 밝혔다. 취재팀은 코인을 쉽게 상장할 수 있는 블록체인 마케팅업체에 문의했다. 블록체인 마케팅업체를 취재한 결과, 코인 상장을 위해 1억 원부터 15억 원까지 ‘뒷돈’이 오간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취재팀은 특히 한국계 코인(일명 ‘김치코인’)이 손쉽게 상장된 후 거래 중지된다는 점을 조명했다. 뒷돈을 내고 상장된 국내 코인 가운데 상당수가 처음부터 사기 범죄를 목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한국일보 취재팀은 코인 사기 구조를 시각화하여 보도했다. '무법지대 코인리포트' 기사 갈무리
한국일보 취재팀은 코인 사기 구조를 시각화하여 보도했다. '무법지대 코인리포트' 기사 갈무리

2편에서는 최근 2년간 선고된 코인 사기 사건 판결문 180개를 분석했다. 코인 관련 사기는 상장 예정 사기, 코인 개발업체 사기, 대리투자 사기, 다단계식 코인 판매 등으로 다양했다. 코인 사기와 관련한 판결의 유형은 무죄(8.9%), 집행유예(25.6%), 징역 2년 이하(24.4%), 4년 이하 (16.7%), 4년 초과(16.7%), 벌금형 (7.8%) 등으로 구분됐다. 벌금형과 집행유예, 징역 2년 이하 등 낮은 형량의 판결이 절반을 넘는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사기죄는 피해금액을 명확히 특정해야 하고, 속임과 손해가 연관돼야 처벌이 가능하다. 그런데 코인 사기 피해자들로선 손실을 입은 코인 가치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았다. 코인 시장의 독특한 현실을 반영하여 규율할 관련 법률도 미비한 상태였다.

3편에서는 현재 재판 중인 코인 사기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취재팀은 서울 강남 일대에서 ‘코인 대통령’이라고 불리던 코인 사기꾼 심아무개 씨의 사건을 보도했다. 심 씨에게 피해를 당한 28명을 심층 설문조사했고, 심 씨에게 2번 사기를 당한 김 씨와는 심층 인터뷰했다. 취재팀은 검찰 고위 간부 출신 전관 변호사와 판사 출신 전관 변호사가 심 씨의 코인 발행 업체에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파악했다. 심 씨가 대표를 맡은 코인 발행 업체가 조세회피처로 알려진 세이셸에 거래소를 세워 다단계 프로그램도 운영한다는 점도 보도했다.

마지막 편에서는 3명의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가상자산 규제에 관해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건전한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과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과도한 규제는 기술 창의성과 가상자산 업계의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았다.

180개 판결문을 분석 결과를 인터렉티브에 실었다. '무법지대 코인리포트' 기사 갈무리
180개 판결문을 분석 결과를 인터렉티브에 실었다. '무법지대 코인리포트' 기사 갈무리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 제정을 이끌다

<한국일보>가 ‘무법지대 코인리포트’를 보도한 이후,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지난 6월 30일 국회에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이 제정했다. 이 법은 이용자 보호에 초점을 맞췄다. 가상자산사업자에게 고객 예치금의 예치나 보관, 준비금 적립 등을 의무화했다. 또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 시세조종, 부당거래 등을 위반하면 형사 처벌뿐 아니라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도록 했다.

한국기자협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이달의 기자상 후기에서 이성원 <한국일보> 기자는 “이제 코인업계는 무법지대가 아니다. 그러나 코인 사기는 법의 빈틈과 인간의 탐욕에 기생해 또 다른 형태로 존재할 것이다.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감시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취재팀은 상장 폐지된 코인을 전수조사한 결과를 한데 모아 지면에 소개했다. '무법지대 코인리포트' 기사 갈무리
한국일보 취재팀은 상장 폐지된 코인을 전수조사한 결과를 한데 모아 지면에 소개했다. '무법지대 코인리포트' 기사 갈무리

*기사 원문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인터랙티브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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