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23년 퓰리처상 삽화 보도·논평 부문 수상작 - 뉴욕타임스 ‘제프 베이조스의 부를 상상해볼 수 있는 9가지 방법’.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59)가 소유한 재산은 2021년 4월 약 2023억 달러(225조 463억 원)다. 그는 현재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재산이 많은 사람이다. 아마존 지분 약 10%, 그리고 2000년 설립한 우주개발기업 블루 오리진 자금을 위해 매각한 아마존 지분 100억 달러 이상이 그의 주요 재산이다. 이 액수가 실제 얼마만큼 가치가 있는 돈인지, 이 금액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려낸 기사

데이터 저널리스트 모나 찰라비(Mona Chalabi, 36)는 이 거대한 숫자를 잘게 쪼개 손에 잡히는 단위로 재구성했다. ‘제프 베이조스의 부를 상상해 볼 수 있는 9가지 방법’(9 ways to imagine Jeff Bezos' wealth)은 베이조스의 재산 규모를 9가지 방법으로 시각화한 기사다. 저널리스트이면서 일러스트레이터인 찰라비는 재치 가득한 그림을 활용해 거대한 데이터를 해체하고 조립했다.

이 기사는 2023년 퓰리처 ‘삽화 보도 및 논평 부문’(Illustrated Reporting and Commentary)에서 수상했다. 삽화 보도 및 논평 부문은 공익적 가치가 있는 시사만화나 애니메이션, 일러스트레이션 등에 시상하는 상이다. 1922년 만들어진 ‘만평 부문(Editorial Cartoon)’이 2022년 ‘삽화 보도 및 논평 부문’으로 확대됐다. 개편 이후 시상 첫해인 2022년에는 중국 정부의 위구르 탄압에 대한 이야기를 만화로 풀어낸 <인사이더>의 4인 팀이 상을 받았다.

2023년 퓰리처 ‘삽화 보도 및 논평 부문’(Illustrated Reporting and Commentary) 상을 받은 ‘제프 베이조스의 부를 상상해 볼 수 있는 9가지 방법’.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갈무리
2023년 퓰리처 ‘삽화 보도 및 논평 부문’(Illustrated Reporting and Commentary) 상을 받은 ‘제프 베이조스의 부를 상상해 볼 수 있는 9가지 방법’.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갈무리

‘제프 베이조스의 부를 상상해 볼 수 있는 9가지 방법’을 그린 모나 찰라비는 영국 출신 데이터 저널리스트다. 이란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찰라비는 영국 런던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 시절에는 에딘버러 대학에서 국제 정치를 전공한 뒤, 파리정치대학에서 국제 안보를 전공해 석사 학위를 받았다. 요르단 대학에서 아랍어를 공부하기도 했다. 찰라비는 국제정치 공부를 위해 유엔(UN)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 시절 정치와 관련된 데이터를 분석하며 사람들이 특정 목적을 위한 의제 설정을 위해 얼마나 쉽게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지 알게 됐다. 그때부터 찰라비는 최대한 많은 시민이 올바른 정보와 데이터를 접하고, 그에 입각해 선택을 내리도록 돕는 것을 작업의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게 됐다. 특히 찰라비는 정치인들이 허위 주장을 하는 것을 막는데 데이터 저널리즘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후 찰라비는 <이코노미스트> <알자지라> 등 세계 유수 언론사와 국제기구, 은행, 비영리 단체, 사기업 등에서 데이터 분석가로 일했다. 주로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데이터가 그녀의 주 관심사였다. 최근 10여 년간은 경찰 폭력, 바이러스의 전염 그리고 죽음의 비용 등 사회적·경제적 정의와 관련된 분야들을 연구해 왔다. 2015년부터 <가디언 US>에서 데이터 에디터로 일하면서, 미국 뉴욕을 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자신의 모습을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직접 그린 모나 찰라비의 프로필. 모나 찰라비 홈페이지 갈무리
자신의 모습을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직접 그린 모나 찰라비의 프로필. 모나 찰라비 홈페이지 갈무리

찰라비는 저널리스트이면서 일러스트레이터, 애니메이터, 작가, 다큐멘터리 제작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뉴욕타임스> <더 뉴요커> <가디언>등 언론사에 그림과 글을 기고하고, <BBC> <내셔널지오그래픽> <넷플릭스> 등에 다큐멘터리를 보내 방송했다. 지난 몇 년간 테이트 미술관, 브루클린 박물관 그리고 디자인 박물관 등에 그림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찰라비는 성과 여성의 몸을 주제로 한 시리즈 기사로 2017년 에미상의 ‘뉴스&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2020년에는 뛰어난 디지털, 소셜 미디어 콘텐츠에 시상하는 ‘쇼티 상’에서 ‘소셜 미디어 부문 최고의 저널리스트 상’을 수상했다.

모나 찰라비가 지난 5월 가디언에 기고한 기사에 실은 그림. 향후 10년 동안 가장 많이 줄어들 미국의 직업군을 다뤘다. 출처 가디언
모나 찰라비가 지난 5월 가디언에 기고한 기사에 실은 그림. 향후 10년 동안 가장 많이 줄어들 미국의 직업군을 다뤘다. 출처 가디언

딱딱한 데이터가 그림을 만나면

이러한 재능과 통찰을 찰라비는 베이조스의 막대한 부를 분석하는 작업에 적용했다. 막대한 부를 소유한 억만장자들은 갈수록 많아지고, 그들의 재산 또한 사회적 통제를 벗어나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블룸버그>의 ‘억만장자 지수’ 집계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세계 500대 부자들의 자산이 총 8520억 달러(약 1077조 4500억 원) 늘어났다. 평균으로 환산하면 이들 억만장자는 6개월 동안 매일 1400만 달러(약 182억 8400만 원)를 벌어들인 셈이다. 제프 베이조스의 자산은 그 기간 동안 476억 달러(약 62조 9000억 원) 늘어났다.

이런 사실이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부자들의 막대한 재산 규모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으로부터 ‘제프 베이조스의 부를 상상해 볼 수 있는 9가지 방법’이 시작됐다.

베이조스를 비롯한 억만장자들이 얼마큼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유무형의 재산이 여기저기에 흩어져있어 데이터를 수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찰라비는 베이조스의 재산 규모를 최대한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블룸버그, 포브스, 아마존 등에 공식적으로 공개되어 있는 수치들을 참고했다.

찰라비가 수집한 데이터에 따르면 베이조스의 자산 중 현금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베이조스의 재산을 유형화하면 현금이 1560억 달러(약 201조 원), 베이조스가 2000년 설립한 우주개발업체 ‘블루 오리진’을 포함한 사적 재산이 91.5억 달러(약 11조 7000억 원), 아마존 주식 등 공개 거래된 자산이 1472.5억 달러(약 189조 8000억 원)였다.

모나 찰라비는 제프 베이조스의 재산을 종류별로 시각화해 그림으로 나타났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갈무리
모나 찰라비는 제프 베이조스의 재산을 종류별로 시각화해 그림으로 나타났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갈무리

베이조스의 케이크 조각으로 할 수 있는 일

베이조스가 가진 돈은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 좀처럼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찰라비는 베이조스가 그의 막대한 재산 중 1.2%(21억 달러)만을 사회와 나누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만약 베이조스가 자신이 가진 것을 더 많이 나누었다면 우리는 그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찰라비는 베이조스의 재산을 달콤한 케이크에 비유한다. 베이조스가 만약 자신의 재산 0.7%를 사회와 나눈다면 아마존에 근무하는 모든 직원에게 각 1000달러를 줄 수 있다.  0.1%를 더한 0.8%로는 응급 보수가 필요한 미국의 모든 도로와 다리를 수리할 수 있다. 8.7%로는 미국의 당뇨병 환자들에게 1년 치 인슐린을 공급할 수 있고, 11.4%로는 식량 부족으로 굶고 있는 미국의 모든 가정에게 한 달 동안 음식을 나누어줄 수 있다.

케이크에 비유한 제프 베이조스의 재산 규모.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갈무리
케이크에 비유한 제프 베이조스의 재산 규모.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갈무리

평범한 시민들이 베이조스가 축적한 부만큼을 벌어들이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소요될까? 아마존의 상근직 직원들은 2020년 평균 3만 7930달러를 벌어들였다. 찰라비는 아마존 직원들이 베이조스가 소유한 만큼의 돈을 모으려면 플라이오세(Pliocene Epoch)부터 일하기 시작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플라이오세는 약 450만 년 전의 지질시대로, 인류의 조상이 막 두 발로 일어서기 시작했을 시기다.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오랫 동안 일을 해야만 현재 59세인 베이조스가 가진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아마존 평직원들이 제프 베이조스가 소유한 만큼의 부를 모으려면 450만 년에 걸쳐 일해야 한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갈무리
아마존 평직원들이 제프 베이조스가 소유한 만큼의 부를 모으려면 450만 년에 걸쳐 일해야 한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갈무리

찰라비는 베이조스의 재산 규모를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크기, 무게 등의 단위를 이용했다. 2022년 미국 정부의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미국의 중위 소득 가정은 11만 8200달러의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땅콩 하나의 무게로 가정하면, 베이조스의 재산은 땅콩버터로 꽉 찬 1톤(t) 트럭 한 대의 무게에 해당한다. 또 중위 소득 가정의 재산이 백혈구 하나의 크기라면, 베이조스의 재산은 고래의 크기에 해당한다.

모나 찰라비는 다양한 비유를 활용해 제프 베이조스의 거대한 재산 규모를 강조한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갈무리
모나 찰라비는 다양한 비유를 활용해 제프 베이조스의 거대한 재산 규모를 강조한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갈무리

많은 사람이 통계나 숫자를 지루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여긴다. 하지만 찰라비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 정보들이 접근 가능하고 공감 가능한 방식으로 많은 이들에게 전달돼야 한다고 믿는다. 그가 그림, 영상, 오디오와 서면 작업 등 다양한 방식을 이용해 자신이 발견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 이유다.

찰라비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내 역할이 번역가와 같다고 생각한다. 이해하기 힘들거나 도달하기 어려운 정보들을 취합해 더 많은 청중에게 전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뒤이어 그는 “베이조스와 같은 부자들이 얼마나 부유한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제프 베이조스의 부를 상상해 볼 수 있는 9가지 방법’을 창작할때도 그 불명확성을 드러내려고 의도했다. 그것이 지적인 정직함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의 ‘제프 베이조스의 부를 상상해볼 수 있는 9가지 방법’ 기사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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