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2023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 컨퍼런스

“데이터라는 건 처음에는 그냥 추상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데, 생생한 취재와 사진을 거치면 사람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미디어로 재탄생합니다. 그래서 데이터를 가지고 그림을 그릴 때 어떤 표현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 안에) 조금 더 구체적인 현실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난 2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열린 ‘2023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에서 데이터 시각화 전문기업 브이더블유엘(VWL)의 김승범 소장은 ‘화물차를 쉬게 하라’ 사례 발표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시사인(IN)에 실린 이 기사에서 데이터 분석으로 끌어낸 이야기를 시각화하는 작업 등에 기여했다. 이 기사는 설득력 있는 시각화, 생동감 있는 현장 취재가 잘 어우러졌다는 평가와 함께 제25회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2022년 12월 민주언론시민연합 이달의 좋은 보도상, 제387회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등을 받았다. 이날 행사는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대표 권혜진)와 건국대 디지털커뮤니케이션연구센터(센터장 황용석)가 공동 주최했으며, 언론인과 정보기술(IT) 개발자, 학자 등 각계 인사가 행사 현장 또는 화상회의를 통해 참여했다.

디지털 운행기록장치가 증언한 화물운송 기사의 노동 현실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 컨퍼런스에서 김승범 VWL 소장과 변진경 시사IN 기자가 ‘화물차를 쉬게 하라’ 기사의 데이터 분석과 시각화 방법론 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창용 기자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 컨퍼런스에서 김승범 VWL 소장과 변진경 시사IN 기자가 ‘화물차를 쉬게 하라’ 기사의 데이터 분석과 시각화 방법론 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창용 기자

김 소장은 화물차 기사의 과로 문제를 기존 언론과는 다르게 보여주기 위해 4.4테라바이트(TB)에 달하는 ‘디지털 운행기록장치’(Digital Tacho Graph) 데이터를 분석했다고 말했다. 또 ‘효과적으로 설득하기’를 위해 한 달 240시간 이상 운행하는 노동자들을 추려 ‘사람이 이렇게까지 일을 할 수 있나’하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로 나온 기사는 사업용 화물차 5만 9296대의 운행 데이터를 바탕으로 화물차 기사들의 초장기 노동 시간과 초장거리 동선을 실감 나게 보여주었다. 김 소장은 “데이터라는 도구를 삶에 밀착해서 바라보고, 사진을 찍듯이 한 장의 그림으로 삶을 나타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변진경 시사IN 사회팀장은 이에 앞선 발표에서 “데이터를 통해 화물차 기사들의 공간과 시간을 보려고 했다”며 “화물차 기사들의 노동 환경이 (졸음운전 등을 통해)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기도 하기에, 꼭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 기사를) 보도했던 시기가 화물연대 파업이 시작되고 노정 갈등이 극심해지던 시기였다”며 “당시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기사들이 주로 나왔었는데, 마침 이 기사를 보도할 수 있어서 하나의 균형추 역할을 하지 않았나 하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숫자만으로 쓰던 기사에 ‘이게 최선인가’ 고민

‘올해의 주목할 만한 데이터 저널리스트’로 뽑힌 <오마이뉴스> 이종호 기자는 ‘쓰리디(3D) 모델링’을 사용한 ‘43년 전 오늘 광주 송암동, 참혹했던 그날의 재구성’과 ‘후쿠시마 오염수 태평양 침공’ 등의 기사를 소개했다. 3D 모델링이란 3차원의 가상공간에서 현실의 물체를 묘사하는 등의 기술이다. 이 기자는 “데이터 기사를 쓰다 보면 숫자로만 기사를 쓰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이럴 수밖에 없나’ ‘이게 최선인가’라는 걱정이 많다”며 발표를 시작했다.

이종호 오마이뉴스 데이터저널리즘 담당 기자가 ‘3D 모델링, 인터랙티브, 데이터저널리즘’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김창용 기자
이종호 오마이뉴스 데이터저널리즘 담당 기자가 ‘3D 모델링, 인터랙티브, 데이터저널리즘’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김창용 기자

그는 “숫자가 중심인 기사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많은 데이터 저널리스트가 다양한 데이터 시각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 역시 (숫자 등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독자들이 점점 이해하고 싶은 대로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며 “그렇지 않게,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같은 메시지를 받아 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됐고, 그걸 실현할 방법 가운데 하나가 3D 모델링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기자는 3D 모델링을 활용한 보도 중 대표작으로 윤석열 대통령 관저를 시각화한 ‘제한보호구역, 서울 한남동 726-491번지’ 기사를 들었다. 그는 “정부가 ‘제한보호구역’으로 지정하면 국내 모든 지도 서비스가 해당 지역을 숲으로 바꾸는데, 구글 맵 같은 외국 서비스에 들어가면 다 볼 수 있다”며 “과거의 법(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때문에 시대착오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블렌더(Blender)를 활용해 3D 지형을 구현하고, 현재 유일하게 대통령실을 찍을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진 남산과 이슬람 사원에 있는 창문 두 개에서 (오마이뉴스) 사진팀이 찍은 사진을 받고, 과거 사진 자료 등을 모았다”고 제작 과정을 설명했다.

이종호 오마이뉴스 기자가 지난해 11월 보도한 ‘제한보호구역, 서울 한남동 726-491번지’ 기사의 일부. 이 기자는 “제한보호구역이 되면 촬영, 측량, 묘사가 다 금지돼서 관련된 뉴스가 나올 때마다 디테일을 하나 둘씩 첨가했다”고 설명했다. 출처 오마이뉴스
이종호 오마이뉴스 기자가 지난해 11월 보도한 ‘제한보호구역, 서울 한남동 726-491번지’ 기사의 일부. 이 기자는 “제한보호구역이 되면 촬영, 측량, 묘사가 다 금지돼서 관련된 뉴스가 나올 때마다 디테일을 하나 둘씩 첨가했다”고 설명했다. 출처 오마이뉴스

‘단독’보다 ‘협업’에 진심인 데이터 전문 기자들

<뉴스타파> 등 6개 언론과 ‘세금도둑잡아라’ 등 3개 시민단체가 함께 구성한 ‘검찰 예산 검증 공동취재단’도 이날 발표에 나섰다. 연다혜 뉴스타파 기자, 전기환 뉴스타파 개발자, 홍봄 <뉴스하다> 기자는 ‘검찰 예산 검증 프로젝트 <검찰의 금고를 열다>’ 발표에서 ‘종이 데이터저널리즘’ 이라는 독특한 키워드를 제시하며 협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연 기자는 “데이터저널리즘이라고 하면 기술과 혁신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종이’ 데이터저널리즘이라고 하니 생소하실 것 같다”며 전국의 검찰청에서 유인물 자료를 받아 분석한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3년 5개월에 걸친 소송에서 승리해 받은 자료라 현재에 더 가까운 데이터가 필요했다”며 “소송에서 승리한 김에 전국 단위 검찰청의 특활비를 공개하라고 청구했고, 결국 최근 자료를 전국 검찰청 67곳을 돌면서 받았다”고 말했다. 승합차에 종이를 싣고 다니면서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고 한다. 세금도둑잡아라의 하승수 공동대표는 2019년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을 상대로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 지출 내역 공개를 청구했다가 공개 거부를 통보받자 소송을 냈고, 지난 4월 대법원에서 ‘특수활동비 집행 내용과 수령인의 이름을 제외한 정보를 제공하라’는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연 기자는 “기성 매체에서 어떤 기사를 쓸 때 다른 언론사랑 협업한다는 것 자체를 생각하지 못했다”며 “아이템은 보도 시점까지 반드시 비밀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단독 욕심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함께해 준 지역 언론사 기자들이 함께 수령도 해주고, 분석도 해주면서 특활비 사용 패턴뿐만 아니라 다양한 포인트에서 분석해 보도할 수 있었다”며 “무언가를 여러 매체가 함께 진행하니 많이 배울 수 있었고, 노하우도 공유할 수 있었던 힘 덕분에 이 보도가 가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연다혜 뉴스타파 기자, 전기환 뉴스타파 개발자, 홍봄 뉴스하다 기자(왼쪽부터)가 ‘검찰 예산 검증 프로젝트, 검찰의 금고를 열다’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배경에 보이는 인물 사진은 프로젝트를 함께한 경남도민일보, 뉴스민, 부산MBC, 충청리뷰의 기자들과 세금도둑잡아라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이다. 김창용 기자
연다혜 뉴스타파 기자, 전기환 뉴스타파 개발자, 홍봄 뉴스하다 기자(왼쪽부터)가 ‘검찰 예산 검증 프로젝트, ’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배경에 보이는 인물 사진은 프로젝트를 함께한 경남도민일보, 뉴스민, 부산MBC, 충청리뷰의 기자들과 세금도둑잡아라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이다. 김창용 기자

빼놓을 수 없는 개발자와 디자이너의 역할

<한국일보> 엑설런스랩 강윤주 팀장은 치매 노인 실종을 다룬 보도 ‘미씽, 사라진 당신을 찾아서’를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어느 언론사든 기획 취재를 전담으로 하는 조직이 있을 것”이라며 “이름이 계속 바뀌면서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지만, 정체성과 목표는 계속 ‘협업’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도 구성을 보면 취재기자는 3명이지만 새로운 시도를 위해 사진기자를 한 명 전담으로 두고, 영상 PD 2명과 작가, 디자이너, 개발자 등이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해준 덕분에 기사는 기사대로, 영상은 영상대로의 가치를 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선출직 공직자를 감시하는 데이터 공개 프로젝트 ‘오픈와치’의 장승훈 개발자, ‘지피티포(GPT-4) 기반 정치인 이슈 요약 <폴리스코어>’를 주제로 발표한 에스비에스(SBS) 디지털뉴스제작부 배여운 기자, 전국 6500여 작은 도서관의 존폐 위기를 다룬 서울대학교 ‘작은도서관을 살려라’ 팀의 발표가 이어졌다.

행사의 마지막 순서는 제6회 데이터저널리즘어워드 시상식이었다. 올해 수상작으로는 ▲데이터 기반 탐사보도상 ‘검찰 예산 검증 프로젝트 <검찰의 금고를 열다>’(뉴스타파, 경남도민일보, 뉴스민, 뉴스하다, 부산MBC, 충청리뷰, 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시민행동) ▲데이터저널리즘 혁신상 ‘GPT-4 기반 정치인 이슈 요약 서비스 <폴리스코어>’ (SBS 디지털뉴스제작부, 언더스코어) ▲오픈 데이터상 ‘오픈와치 프로젝트’ (정보공개센터) ▲데이터 시각화상에 ‘미씽, 사라진 당신을 찾아서’ (한국일보 엑설런스랩, 디지털미디어부, 기획영상부, 멀티미디어부), ‘화물차를 쉬게 하라’ (시사IN, 브이더블유엘) ▲주목할만한 데이터 저널리스트 상 오마이뉴스 이종호 ▲올해의 영 데이터 저널리스트상 ‘작은도서관을 아시나요’(서울대학교 작은도서관이 살아난다 팀) 등이 선정됐다.

컨퍼런스에 이어 진행된 제6회 데이터저널리즘어워드 시상식에서 영광의 수상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김창용 기자
컨퍼런스에 이어 진행된 제6회 데이터저널리즘어워드 시상식에서 영광의 수상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김창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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