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집 재밌는 곳] 충북 제천시 하소동 카페 ‘지구대’

충북 제천시 하소교 앞 용두대로17길 어귀에는 흰색 외벽의 2층짜리 건물 하나가 있다. 얼핏 보아선 경찰 파출소나 지구대로 착각할 수 있다. 대부분의 파출소나 지구대가 그렇듯 외관은 자그마한 정육면체 모양을 지닌 데다, 옥상엔 태극기가 걸릴 법한 깃대도 세 개나 서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입구에는 실제로 ‘지구대’라고 적힌 나무 간판까지 걸려 있다. 그러나 건물 입구 오른쪽을 보면 외벽에 ‘coffee’와 ‘dessert’라는 영어 문구가 적힌 것을 볼 수 있다. 그제야 건물 쓰임새를 알아차린다. 경찰 지구대가 아니라, 카페 ‘지구대’다.

건물 입구에서 본 카페 지구대. 양혁규 기자
건물 입구에서 본 카페 지구대. 양혁규 기자

카페 안은 더욱 경찰 관서를 떠올리게 한다. 1층 벽에 폴리스라인 테이프가 붙어 있고, 2층 한쪽 모퉁이엔 마치 누군가를 조사할 때 쓰였을 법한 책걸상과 램프가 있다. 메뉴판에도 특이한 음료가 하나 눈에 띈다. 이름은 율무라떼. 천성우(38) 지구대 대표가 ‘파출소 자판기 율무차’에서 착안해 만들었다. 주문을 마치면 손님에게 진동벨 대신 무전기를 건넨다.

커피가 담긴 유리잔엔 ‘zigude, from the early 1980s’라고 쓰여 있다. 얼핏 보면 마치 이 카페 지구대가 1980년대 초에 생긴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에 카페 지구대가 들어선 건 이제 3년째다. ‘1980년대 초부터’라는 글귀의 뜻은 무엇일까. 왜 천 대표는 카페를 파출소처럼 꾸며 놨을까. 천 대표로부터 카페 지구대에 담긴 이야기를 들었다.

커피잔에 ‘from the early 1980s’라고 쓰여 있다. 양혁규 기자
커피잔에 ‘from the early 1980s’라고 쓰여 있다. 양혁규 기자

쓸모없는 건물의 ‘쓸모’

2020년 천성우 대표는 카페를 창업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전까지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커피 만드는 법을 배웠고, 사설 기관에서 바리스타 자격증도 땄다. 그러나 카페를 차릴 자금은 넉넉지 않았다. 큰 건물을 지을 수도, 목 좋은 점포를 빌릴 수도 없었다.

천 대표는 버려진 건물을 찾아 나섰다. 쓰임을 다한 건물이 오히려 쓸모 있게 느껴졌다. 그는 “남들과 다른 특별함이 있어야 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공간이 과거에 카페와 다르게 쓰였다면, 손님에게 이야깃거리와 재미 요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천 대표는 ‘온비드’(OnBid)를 뒤졌다. 온비드란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운영하는 온라인 공매 플랫폼이다. 웹과 모바일 앱에서 정부 소유 부동산을 사거나 빌릴 수 있다. 대개 낡은 관공서나 관사가 매물로 나온다. 대부분은 시세보다 저렴하고, 거래도 투명하게 할 수 있다.

온비드를 한참 뒤적이다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충북 제천에 있는 용두파출소였다.

용두파출소 건물은 경찰 관서로 오래 쓰인 곳이었다. 1981년부터 2010년 4월까지 용두치안센터로, 그다음 달부터 2019년 8월 중순까지 용두파출소로 쓰였다. 38년 동안 이곳에서 수많은 경찰관이 용두·하소동 일대 치안을 책임져 온 셈이다. 2019년을 끝으로 경찰들은 새로 지은 큰 건물로 이사를 했다. 관내에 여러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치안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옛 용두파출소는 건물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정부는 건물 임차권을 공매에 넘겼다.

카페 지구대가 들어서기 전 옛 용두파출소 건물. 천성우 씨 제공
카페 지구대가 들어서기 전 옛 용두파출소 건물. 천성우 씨 제공

천 대표는 버려진 용두파출소에 카페를 차리기로 했다. 그는 용두파출소에 카페를 차리면 손님에게는 재미를, 이웃에게는 추억을 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파출소 건물과 부지 곳곳에 남은 경찰이 머물렀던 흔적과 지역 주민들의 기억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해 7월, 그는 임차권을 낙찰받았다.

버려진 파출소를 ‘새 활용’해 만든 카페

천 대표는 용두파출소를 ‘새 활용’했다. 새 활용이란 버려진 물건을 새 용도로 고쳐 쓰는 활동을 말하는 신조어다.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단순 재활용과 다르다. ‘업그레이드’(향상)와 ‘리사이클링’(재활용)을 합쳐 ‘업사이클링’이라고도 부른다. 천 대표는 “카페 지구대가 갖춘 모습 가운데 기존 파출소를 그대로 새 활용한 비중이 70%”라고 했다. 나머지는 인테리어 소품이나 식기구들이었다.

건물 안엔 인조석 바닥을 그대로 뒀다. 이제는 시공이 금지돼 오래된 건물에서만 볼 수 있다. 화장실의 스테인리스 문도 남겼다. 무기고에 있던 철문은 1층 계단 입구에 달았다. 카페를 오픈한 지 2년째 되는 날엔 2층을 새 활용했다. 2층 파출소장실과 숙직실 두 곳을 손님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굳이 세 곳 사이에 벽을 허물지도 않았다. 천 대표는 “손님들이 파출소장이 쓰던 방, 경찰이 숙직하던 방을 상상할 수 있도록 벽을 남겨 놨다”고 했다.

카페 지구대 2층에 있는 과거 숙직실과 파출소장실(오른쪽)의 새 활용 전 모습. 양혁규 기자
카페 지구대 2층에 있는 과거 숙직실과 파출소장실(오른쪽)의 새 활용 전 모습. 양혁규 기자

건물 밖 뒤편 식당엔 빵 굽는 기계를 들였다. 마당의 커다란 단풍나무 앞에는 테이블과 의자를 뒀다. 이 단풍나무는 처음 이 자리에 지구대를 만들 때 인근 주민이 묘목을 심은 것이다.

현관 위 처마에 있는 빛바랜 나무 타일도 건물의 나이를 말해준다. 천 대표는 그곳을 가장 아꼈다. 그는 “(나무 타일이) 산화돼 색깔이 바뀐 건 요즘 기술로 만들 수 없다”며 “시간이 주는 느낌은 새 걸로 나타낼 수 없다”고 했다. 이어서 “옛날 흔적을 건물에 잘 녹여내면, 새것으로 바꾸는 것보다 더 멋있다”고 덧붙였다.

현관 위의 나무 타일 색깔이 건물의 나이를 보여준다. 양혁규 기자
현관 위의 나무 타일 색깔이 건물의 나이를 보여준다. 양혁규 기자

2021년 1월 12일, 천 대표는 카페를 열었다. 개업일은 경찰 전화번호 112에 맞췄다. 이름은 ‘지구대’였다.

손님에겐 재미를, 이웃에겐 추억을

손님들 반응은 좋았다. 사람들은 철문이 어디에 쓰던 것인지 궁금해했고, 천 대표가 건네는 무전기를 재미있어했다. 혹시 카페가 파출소와 관련이 있는지 먼저 묻는 이도 있었다. 천 대표가 카페 건물이 원래 파출소로 쓰였다는 사실을 전해주면, 손님들은 이곳저곳 살피며 과거를 상상했다. 천 대표는 “손님들이 신기해하시면 좋았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신기한 감각과 재밌는 경험을 주려고 했던 것이 카페를 시작한 이유였기 때문”이다.

천성우 대표가 주문이 끝난 손님에게 진동벨 대신 건네는 무전기. 음료를 준비하면 무전으로 알린다. 양혁규 기자
천성우 대표가 주문이 끝난 손님에게 진동벨 대신 건네는 무전기. 음료를 준비하면 무전으로 알린다. 양혁규 기자

기자가 취재를 간 날 카페를 찾은 충북 제천시 하소동 주민 김유진(47) 씨는 “이곳이 파출소였던 때를 기억한다”며 “카페 이름이 지구대인 게 굉장히 친근했다”고 했다. 역시 하소동 주민인 조유리(34) 씨도 “주변에 사시는 분들은 이 건물을 알고 계셨을 텐데, 파출소가 떠난 뒤 누군가 이곳을 부수거나 새로 지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주민들에게 익숙한 건물이 이렇게 활용되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동네 어르신 몇 분은 카페 지구대를 여전히 파출소로 오해하셨다. 지갑을 잃어버리거나 보이스피싱을 당한 어르신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때마다 천 대표는 어르신들을 새 용두파출소로 모셔다드렸다. 약주에 취해 물을 달라는 할아버지, 아들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할머니도 계셨다. 난처한 일들이었지만, 천 대표는 옛 용두파출소가 이웃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알 수 있었다.

파출소에서 근무했던 경찰들도 찾아왔다. 파출소장과 경찰관들이 추억에 잠기다 가곤 했다. 이곳에서 복무했던 의경 출신 손님도 찾아왔다. 그는 천 대표에게 “이곳에 추억이 있다”고 했다. 천 대표는 그에게 “파출소였으면 더 좋지 않았겠느냐”고 물었다. 그가 가진 추억을 해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돼서였다. 의경 출신 손님은 “오히려 예쁘게 바꿔줘서 고맙다”며 “만약 파출소였다면 오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카페 지구대는 이제 천 대표의 생각대로 손님에겐 재미를, 이웃에겐 추억을 전하는 곳이 되었다.

카페 지구대에서 손님을 맞으며 웃고 있는 천성우 대표. 양혁규 기자
카페 지구대에서 손님을 맞으며 웃고 있는 천성우 대표. 양혁규 기자

무명작가와 이웃을 잇는 ‘사진전’

지난 2021년에는 지구대에서 사진전도 열었다. 손님 가운데 무명 사진작가 둘이 있었다. 미국에서 유학한 한정우 작가와 제천에서 활동하는 김홍 작가다. 천 대표가 사진전을 함께 열자고 제안했고, 두 작가는 받아들였다. 그들에게도 처음 여는 전시였다.

한정우 작가는 미국 서부의 풍경 사진을 전시하기로 했다. 작품 안엔 환경을 향한 고민이 담겼다. 미 서부의 산이 매년 기후 변화로 인해 불에 타 사라지는 가운데, 그는 소중한 자연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 사진전을 준비하는 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버려진 건물에서 폐목재를 가져다 액자로 만들었다. 김홍 작가는 ‘낙조’를 전시 주제로 정했다. 전국 곳곳의 해 질 녘을 사진에 담아 내보이기로 했다. 두 작가는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사진전을 꾸렸다. 그들은 손수 사진을 골랐고, 액자에 넣어 벽에 걸었다.

천 대표가 사진전을 열었던 이유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명 작가들에겐 작품을 알릴 기회였고, 제천 주민에겐 문화를 누릴 기회였다. 그는 “사진작가 가운데 유명하지 않으면, 작품을 알릴 기회가 없다”고 했다. 이어서 “(주민들도) 제천에서 사진 작품을 볼만한 곳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사진전을 계속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해 가을, 지구대에서 사진전이 잇달아 열렸다. 9월엔 한정우 작가의 전시가, 두 달 뒤엔 김홍 작가의 전시가 시작됐다. 두 작가는 손님들에게 직접 사진을 설명했다.

2021년 11월 카페 지구대에서 열린 김홍 작가의 사진전. 지구대 인스타그램 갈무리
2021년 11월 카페 지구대에서 열린 김홍 작가의 사진전. 지구대 인스타그램 갈무리

전시회에 대한 관심은 상당했다. 전시를 찾는 이들의 연령대도 다양했다. 한정우 작가 사진전에선 작품으로 엽서 200장을 만들어 모두 팔았다. 전시 기간을 늘려달라고 요청하는 손님도 있었다. 천 대표는 “(손님들에게) 사진전 기간을 설명해 드리니까 조금 더 오래 보면 좋을 것 같다는 분들이 계셨다”고 했다. ‘커피와 함께 전시를 즐기는 경험이 꽤 좋았다’는 반응도 있었다. 한정우 작가는 관람객 요청대로 사진전 기간을 늘렸다. 이듬해 설 연휴, 김홍 작가도 한 번 더 전시를 열었다.

사진전은 두 작가에게 좋은 기회였다. 천 대표는 “두 작가는 사진전을 연다는 생각을 못 했다고 말했다”며 “한정우 작가가 미국에 나가 전시를 준비하는데, 지구대에서의 경험이 도움이 됐다고 전해왔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는 “작가들이 가족들에게 뭔가 보여줄 수 있어 뿌듯해했다”고 덧붙였다. 사진전이 끝난 뒤, 지구대에서 연극을 해보고 싶다며 찾아온 이도 있었다. 천 대표는 “연기를 전공하는 학생이 1인극을 해볼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고 했다. 이어 “(1인극이) 참신하다고 생각돼 (공연이) 가능하다고 답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연락이 끊겼지만, 그는 여전히 그 학생을 기다렸다.

천 대표는 앞으로도 다양한 행사를 준비할 생각이다. 청소년들의 공연부터 어르신들의 작품 활동까지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는 “여기 오시는 분들에게 소소하지만, 재밌는 행복을 줄 수 있으면 족하다”고 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흐르는 곳

지구대에서 손님들은 건물이 파출소로 쓰인 38여 년을 상상한다. 파출소를 찾던 주민과 이들을 도왔던 경찰도 그때를 추억한다. 이어서 커피를 마시고, 홀로 또는 마주한 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무명 사진작가들은 지구대에서 사진전을 열었고, 이름을 알렸다. 덕분에 이들은 사진을 포기하지 않았고, 또 한 번 꿈을 그렸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곳” 천 대표는 지구대를 그렇게 정의했다.

38여 년 동안 용두파출소로 쓰인 건물에 현재 카페 지구대(오른쪽)가 들어서 있다. 좌측 한국학중앙연구원, 우측 양혁규 기자
38여 년 동안 용두파출소로 쓰인 건물에 현재 카페 지구대(오른쪽)가 들어서 있다. 좌측 한국학중앙연구원, 우측 양혁규 기자

천 대표도 지구대에서 미래를 꿈꾼다. 그는 앞으로도 쓸모없는 건물에 쓸모를 더할 생각이다. 그는 “버려진 건물에 원두 로스팅 공장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건물 크기나 목보다, 빛바랜 건물에 깃든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 이야기가 있는 한 그에게 쓸모없는 건물은 없다. 버려진 용두파출소가 그랬던 것처럼.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