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안전한 산은 없다] ③ 산사태 위험 평가 부실한 산지 개발 성행

흔히 산사태는 험준한 산악 지역이나 산골 마을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지역만 산사태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전원주택 붐을 타고 산지를 깎아 주택을 짓는 곳이 많아졌다. 특히 이런 산지 개발이 성행하는 수도권이 새로운 산사태 위험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원주택 건설 위해 늘어나는 산지 개발

들꽃마을은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용문산 아래에 있는 전원주택 마을이다. 마을 입구 표지판을 지나 낮은 언덕을 오르면 저마다 넓은 잔디마당과 울타리가 있는 주택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취재팀과 만난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사업을 하거나 수도권에 있는 직장으로 출퇴근했다.

1995년에 들꽃마을에 입주한 고은자(67) 씨는 마을의 세 번째 입주자다. 벌써 28년째 이곳에 살고 있다. 그가 기억하기론 마을에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였다. 들꽃마을은 이제 30여 가구가 사는 마을이 되었다.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옥천리 들꽃마을 전경. 마을 뒷산에 주택단지가 새로 들어섰다. 새로 들어선 주택단지 아래로 산사태가 발생해 무너져 내린 경사면이 보인다. 드론 촬영 정호원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옥천리 들꽃마을 전경. 마을 뒷산에 주택단지가 새로 들어섰다. 새로 들어선 주택단지 아래로 산사태가 발생해 무너져 내린 경사면이 보인다. 드론 촬영 정호원

지난해 8월 들꽃마을엔 폭우로 토사가 유출되는 큰 산사태가 났다. 고 씨는 많이 내렸던 비 탓도 있지만 5년여 전부터 개발되기 시작한 산 위쪽의 주택 공사 영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산사태가 난 곳 위쪽에는 지난해 9가구를 수용할 수 있는 주택단지가 완공되었다. 토지소유자와 건설업자의 분쟁으로 입주가 미뤄지는 사이, 주택단지 쪽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5년 전에 들꽃마을로 이주했다는 김모 씨(60)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산림을 훼손하면서 산사태가 난 것 같다"며 "1년째 제대로 (산사태) 복구도 안 되고 있다"고 푸념했다. 지난해 김 씨 집의 울타리는 산사태로 무너졌다. 김 씨는 수천만 원의 개인 비용을 들여 무너진 집 일부를 수리하는 등의 피해복구를 했다. 그는 지금도 산사태로 인한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현재 산사태가 발생한 경사면에는 임시방편으로 낙석방지보호망만 설치돼 있다. 들꽃마을 주민들은 양평군청에서 언제 후속 조치를 할지, 사방시설은 어떻게 설치할 계획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취재팀과의 통화에서 양평군 산지전용허가팀의 한 사무관은 "양평군청이 아니라 개발 허가를 받은 이가 산사태 피해를 복구할 의무가 있다"며 "현재로서는 개발자에게 복구명령을 내리는 것 외에 추가적인 복구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로 신축 주택 옆 비탈면에 토사가 유출됐지만 양평군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임시로 낙석방지보호망만 설치해 놓았다. 양평군 담당자는 앞으로 추가 복구 계획은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사진 정호원
지난해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로 신축 주택 옆 비탈면에 토사가 유출됐지만 양평군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임시로 낙석방지보호망만 설치해 놓았다. 양평군 담당자는 앞으로 추가 복구 계획은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사진 정호원

늘어나는 산지전용 면적, 늘어나는 산사태 위험지역

들꽃마을 산사태는 산지전용 허가를 받은 곳 인근에서 발생했다. 산지전용은 산지를 다른 용도로 쓰기 위해 형질을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경기도는 전국에서 산지전용을 가장 많이 하는 곳이다.

2021년 전국 산지전용 면적은 6천 754헥타르, 경기도는 2천 317헥타르로 경기도가 전체의 약 34%를 차지했다. 산지전용 면적은 최근 매년 6000-9000헥타르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2015년부터 택지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산지전용이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픽 이선재
2021년 전국 산지전용 면적은 6천 754헥타르, 경기도는 2천 317헥타르로 경기도가 전체의 약 34%를 차지했다. 산지전용 면적은 최근 매년 6000-9000헥타르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2015년부터 택지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산지전용이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픽 이선재

산을 인위적으로 훼손하면 산사태 위험은 커진다. 산림청도 산지전용 허가 면적을 산사태 대책의 사각지대로 인식하고 있다. 산림청이 올해 3월에 발표한 "2023 전국 산사태예방 종합대책"이라는 문건에도 산림청은 "산지개발로 발생한 재해위험지 관리 체계 미비로 재해피해 사각지대 발생"이라고 명시했다.

국가지표체계 해설에 따르면 한국은 국토 면적의 64%가 산지여서 국토의 가용면적이 매우 작아 산지전용에 대한 수요가 많다. 최근 지방자치단체의 개발 수요가 증가하면서 산지전용 수요도 늘고 있다.

택지는 주택과 공공시설을 건설하는 부지를 뜻한다. 산림청이 관리하는 택지의 목적은 택지·도시개발, 농가주택, 일반주택, 그 밖의 주택으로 나뉘어 있다. 2021년 전체 택지 산지전용 면적은 1752헥타르였다. 이중 일반주택의 산지전용 면적은 993헥타르로 56%를 차지했다. 그래픽 이선재
택지는 주택과 공공시설을 건설하는 부지를 뜻한다. 산림청이 관리하는 택지의 목적은 택지·도시개발, 농가주택, 일반주택, 그 밖의 주택으로 나뉘어 있다. 2021년 전체 택지 산지전용 면적은 1752헥타르였다. 이중 일반주택의 산지전용 면적은 993헥타르로 56%를 차지했다. 그래픽 이선재

꾸준히 커지고 있는 산지전용 누적 면적은 새로운 산사태 발생 위험요소가 되고 있다. 산지전용 면적 중 특히 주택 건설용으로 쓰이는 택지의 면적은 해마다 1천 헥타르(ha) 이상씩 넓어지고 있다. 취재팀이 산림청에 정보공개 청구해 받은 자료를 보면, 최근 7년간 택지로 산지전용을 한 면적의 50% 이상을 일반주택이 차지했다.

재해 예방 못 하는 ‘재해위험성 검토’

지자체로부터 산지전용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재해위험성 검토의견서’를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재해위험성 검토의견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한 규정은 2015년에 만들어졌다. 산지 개발을 하면 산사태나 토석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는데, 그 피해를 예측하고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재해위험성 검토제는 2015년에 만들어진 뒤 점점 기준이 강화되었다. 일반 주택들이 포함되는 현행 660제곱미터 이상 기준은 시행한 지 3년째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픽 이선재
재해위험성 검토제는 2015년에 만들어진 뒤 점점 기준이 강화되었다. 일반 주택들이 포함되는 현행 660제곱미터 이상 기준은 시행한 지 3년째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픽 이선재

‘산지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660제곱미터(㎡) (약 200평) 이상 5000제곱미터(약 1500평) 미만 면적의 산지를 개발하는 경우 재해위험성 검토의견서 제출 대상이 된다. 5000제곱미터 이상이면 아예 자연재해대책법에 따른 재해영향평가를 받는다. 일반주택이 주로 해당하는 660제곱미터까지 검토 대상이 확대된 것은 불과 2년 전이다. 그 이전에는 주택을 짓기 위한 산지전용 과정에서는 사실상 재해위험성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

100페이지 이상 되는 재해위험검토의견서의 일부. 산림기술자가 보호시설이나 집이 있는지 등을 기준으로 위험도를 평가한다. ‘토석류 발생 우려’. ‘산사태 발생 우려’ 항목이 60점 미만이면 기초조사만 진행한다. 취재팀이 입수한 검토의견서 117건은 모두 60점 미만이었다. 그래픽 이선재
100페이지 이상 되는 재해위험검토의견서의 일부. 산림기술자가 보호시설이나 집이 있는지 등을 기준으로 위험도를 평가한다. ‘토석류 발생 우려’. ‘산사태 발생 우려’ 항목이 60점 미만이면 기초조사만 진행한다. 취재팀이 입수한 검토의견서 117건은 모두 60점 미만이었다. 그래픽 이선재

과연 현장에서 이 재해위험성 검토 제도가 실효성 있게 운영되고 있을까. 취재팀이 만난 복수의 산림 기술자들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재해위험성 검토는 점수제로 이뤄진다. 개발 예정지를 기초조사 한 뒤, 토석류와 산사태 가운데 한 항목이라도 위험도가 60점 이상인 곳은 실태조사를 거치게 된다. 반대로 두 지표 다 60점 미만이면 문제없이 개발 허가가 나온다. 현장에서 판단한 점수만으로 통과가 되는 것이다.

취재팀은 양평군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지난해와 올해 제출된 117건의 단독주택 재해위험성 검토의견서를 확보했다. 117건 모두 60점 이하로 실태조사 없이 기초조사만으로 개발 허가가 나갔다. 이 117곳 중 90곳의 재해위험성 검토의견서를 작성한 산림기술자에게 문의한 결과, "양평은 소규모 개발이 대부분이다. (경험상) 실태조사까지 받게 된 지역은 한 번도 없었다"고 답했다.

검토 주체인 산림기술자, ‘허가 압박’과 ‘가격경쟁’에 시달려

재해위험성 검토의견서는 산림기술자가 개발하려는 산지를 현장 조사한 후 작성한다. 산림기술자는 일정한 시험을 통과해 국가에서 자격증을 발급받아 산림 설계와 복구 등을 하는 사람이다. 재해위험성 검토의견서는 6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산림기사나 9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산림산업기사가 작성한다. 산지를 개발하고자 하는 사람은 건축·토목 사무소를 통해서 산림기술자에게 재해위험성 검토의견서 작성을 의뢰한다.

이때 고질적인 기술용역 하도급 문제가 발생한다. 산림기술자의 대부분은 건축·토목 사무소와 계약을 맺을 때 "개발행위허가 완료 시" 잔금을 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다. 산림기술자 경력이 얼마 없는 기술자는 잔금의 비율이 높은 계약서에 서명하기도 한다. 허가가 나지 않으면 그만큼 손해가 커진다.

잔금을 받으려면 허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장에서 점수를 조작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20년 경력의 A 산림기술자는 "어떤 사람들은 허가가 나는 쪽으로 재해검토의견서를 작성하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현장을 평가해 보면 60점 이상의 위험지이지만 허가 압박 등으로 인해 60점 이하로 평가하기도 한다는 뜻이다.

용역업체 간 가격경쟁도 평가 주체의 전문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용역업체는 계약을 성사하기 위해 가격을 낮춘다. 개발업자가 저렴한 비용의 산림기술자를 찾기 때문이다. A 산림기술자는 "가격이 낮아지면 인건비는 줄어들고 기술자 한 명이 담당해야 하는 검토 면적이 늘어나 평가 신뢰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15년 경력의 B 산림기술자도 취재팀에게 "(가격이) 고무줄"이라며 "살기 위해 낮추는 것"이라고 답했다.

산림청, 인력 부족으로 산림기술자 불법행위 관리·감독 허술

산림기술자의 재해위험성 검토가 잘 이뤄지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산림 기술 분야의 고질적인 불법행위도 발생하고 있다. A 산림기술자와 익명을 요청한 15년 경력의 C 산림기술사 모두 "산림기술자 자격 대여는 업계에서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림청은 이에 대한 단속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 홍문표 의원실이 산림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산림기술자의 자격증 대여로 인한 행정처분은 총 28건에 그쳤다. 그나마 2018년에 25건을 적발했을 뿐 2019년 이후로는 지금까지 3건을 적발하는 데 그쳤다.

국민의힘 홍문표 의원실이 산림청에서 제출받은 자료 재구성. 2020년, 2021년, 올해는 자격증 대여로 인한 행정처분이 없었다. 산림청은 홍문표 의원실에 제공한 문건에 "관계기관과 합동 조사를 지속 추진하겠음"이라고 밝혔다. 그래픽 이선재
국민의힘 홍문표 의원실이 산림청에서 제출받은 자료 재구성. 2020년, 2021년, 올해는 자격증 대여로 인한 행정처분이 없었다. 산림청은 홍문표 의원실에 제공한 문건에 "관계기관과 합동 조사를 지속 추진하겠음"이라고 밝혔다. 그래픽 이선재

같은 사실이 2019년 감사원의 산림청 기관운영감사에서도 밝혀진 적이 있다. 감사원이 작성한 기관운영감사 공개문서를 보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이중으로 취업하거나 자격증 대여를 한 산림기술자가 45명이었다. 감사원은 해당 문서에서 "산림기술자의 불법 취업행위에 대한 관리·감독 업무가 효과적으로 추진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산림청은 인력이 부족하다고 호소한다. 산림안전보건일자리팀 이호중 사무관에 따르면, 산림기술자 감사는 1년에 2번 진행된다. 전국을 다 하지도 못한다. 한 지역을 선정해 산림청 인력 2~3명이 파견된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일주일 단위로 감사 지역에 나가 지자체 공무원과 직접 업체를 방문하는 식으로 합동 조사를 한다.

이 사무관은 취재팀과의 전화에서 “하루에 5개 업체를 둘러보기도 빠듯하다”며 “물리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다”고 시인했다. 특히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며 산림기술자의 불법행위 감시 방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는 전문가인 산림기술자를 믿을 수밖에

산지전용 허가 주체인 지자체 공무원 한 명당 처리하는 산지전용 허가 업무가 많아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지자체의 담당 공무원은 위험성 판단 기준인 60점을 넘지 않으면 별다른 실태조사 없이 바로 개발 허가를 내준다. C 산림기술사는 "공무원들이 산지전용 허가를 내주는 과정에서는 법적인 하자만 없으면 허가 안 할 이유가 없다"면서 "비전문가인 공무원 입장에서 (허가를 거부하는 건)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산지전용 허가 신청이 들어오면 지자체 공무원도 직접 현장 조사를 나간다. 지자체마다 이 조사에 들이는 시간의 편차가 크다. 4~5분에서 30분 정도만 현장을 둘러보는 공무원이 있는가 하면, 이틀 정도 현장을 둘러보는 공무원도 있다. 상대적으로 인력이 많거나 산지전용 허가가 적게 들어오는 곳은 꼼꼼히 현장을 둘러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현실적으로 더 정밀한 조사를 기대하기는 무리다.

경기도 내 기초지자체들도 서로 달랐다. 지난해 기준으로 남양주시는 산지전용 담당 공무원이 1인당 평균 100여 건을 허가한 반면, 양평군에서는 1인당 평균 330여 건을, 가평군에서는 1인당 1천 건의 허가 업무를 처리했다. 허가 업무를 꼼꼼하게 처리할 수 있는 물리적 여건이 아닌 셈이다.

지자체별 산지전용팀 공무원에게 개발업자의 ‘셀프평가’로 이루어지는 재해위험 검토 의견을 신뢰할 수 있느냐고 묻자, 대부분의 담당 공무원이 "전문가를 믿을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그래픽 이선재
지자체별 산지전용팀 공무원에게 개발업자의 ‘셀프평가’로 이루어지는 재해위험 검토 의견을 신뢰할 수 있느냐고 묻자, 대부분의 담당 공무원이 "전문가를 믿을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그래픽 이선재

‘재해위험성 검토’ 실효성 있으려면 평가 기준 달라져야

현장에서 일하는 산림 전문가들은 재해위험성 검토가 실효성이 있으려면 평가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재해위험성 검토의견서에는 개발로 산지가 받을 영향을 평가하는 항목이 없다. 개발하기 전에 산이 얼마나 위험한지만 따지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 C 산림기술사는 "재해위험성 검토가 있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라고 말했다. 산을 개발하면 산이 바뀐다. 물의 흐름이 달라지고, 산지가 스트레스를 받아 붕괴할 위험이 커진다.

A 산림기술자도 비슷한 의견이다. 추가로 그는 5000제곱미터 이상 개발을 할 때 진행하는 "재해영향평가"를 참고해 볼 만하다고 했다. 재해영향평가는 "자연재해대책법" 적용을 받는다. 재해영향평가서 외에도 조사를 진행한 기술자의 사업자 등록증과 개발자와의 계약서까지 첨부한다. 터무니없이 비용이 낮게 책정된 계약은 한 번 더 걸러질 수 있는 구조다.

영세한 산림기술자와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공무원 사이에서 산지 개발은 산사태 예방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업무 과중에 시달리는 지자체 공무원은 산림기술자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 허가 압박을 느끼는 산림기술자는 재해위험성 평가를 제대로 내리지 못한다. 산림기술자의 불법행위 감시는 산림청의 인력 부족으로 잘 이뤄지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정작 산사태가 발생하면 개발자와 지자체는 서로 복구 책임을 미룬다. 그사이 피해는 오롯이 주민이 감당해야 한다.

2011년에 일어난 서울 우면산 산사태 피해는 산사태가 절대로 험한 산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전원생활을 누리기 위해 산으로 들어가는 도시인이 점점 증가하는 가운데, 무분별한 산지전용이 무더기 산사태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보다 엄격한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올해 여름 산사태로 난 인명 피해는 총 18건이다. 13명이 숨지거나 실종·매몰됐고 5명이 다쳤다. 산사태는 매년 인명피해를 일으키진 않지만, 한 번 발생하면 큰 피해를 준다. 2020년에는 9명이 숨졌는데, 한 펜션에서 삼대가 매몰되는 끔찍한 사고까지 있었다.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의 산사태 발생 원인은 주로 집중호우다. 최근 들어 집중호우는 '극한 호우'로 바뀌어 가고 있다. 기후위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르면 이러한 극한 호우의 발생 횟수는 앞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기후위기로 인한 이전과는 다른 극한 호우 상황에서 한국은 산사태 피해를 예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취재팀은 산사태 취약지역 제도부터, 수도권 인근의 산지 난개발 현장까지 커지는 산사태 위험에 우리 사회가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지 점검했다. (편집자주)

<기사 차례>

① 관리 미흡한 산사태취약지역 제도

② 작은 마을이 사각지대에 놓였다…위험해도 방치

➂ 난도질 된 수도권 산, 산사태에 무방비 노출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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